정이현 '사랑의 역사' 염승숙 '분홍색 흐느낌' 박상 '롤리타'등 밸런타인데이 강추

1-정이현 작가
2-염승숙 작가
3-박상 작가
4-고예나 작가


이번 주말은 손을 꼭 잡은 연인들이 젊음의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날이다. 연인들의 명절, 밸런타인데이가 돌아왔다.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이 날과 잘 어울리는 문학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20~30대 젊은 작가들에게 기억에 남는 사랑 시와 연애 소설을 추천받았다. '하드코어' 소설 <롤리타>부터 신기섭 시인의 시집 <분홍색 흐느낌>까지 다양한 작품이 밸런타인데이에 읽어볼 만한 작품으로 추천됐다. 지적인 그대, 초콜릿 바구니 속에 문학 작품집 한 권 넣어보는 센스를 보여주면 어떨까?

정이현 작가, <사랑의 역사>

<낭만적 사회와 사랑> <달콤한 나의 도시> 등 20~30대 여성들의 감수성을 드러낸 소설로 사랑받는 정이현 작가는 요즘 인터넷 교보문고에 소설 '너는 모른다'를 연재하고 있다.

"연재가 한두 달 사이 다 마무리되는데, 끝나면 다듬어서 단행본을 낼 계획이에요."

정 작가가 추천한 책은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제 또래 젊은 미국 작가가 쓴 소설로 사랑이 빨리 변하는 시대에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고 소개했다.

2006년 국내에 소개된 이 작품은 문학소녀이자 탐정인 알마가 자신과 동명이인의 소설 속 주인공을 찾아 떠나는 미스터리 구조의 연애소설이다. 저자인 니콜 크라우스는 남편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함께 대표적인 미국 문단의 기대주로 꼽힌다. 20대에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2005년 이 작품을 발표하며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첫사랑 알마를 찾아 낯선 도시 뉴욕에서 살아가는 폴란드 출신의 레오. 그는 첫사랑 알마를 주인공으로 쓴 서사시 '사랑의 역사' 원고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사랑의 역사'는 어느새 남의 이름으로 칠레에서 출간되고, 이 소설에 반한 한 남자는 딸에게 알마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죽는다. 10대 소녀 알마는 자기 이름과 똑같은 '사랑의 역사'의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10대 소녀 알마와 노인이 된 레오가 만나는 지점이 좋아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랑의 의미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도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염승숙 작가, <분홍색 흐느낌>

최근 단편집 <채플린, 채플린>을 낸 염승숙 작가는 신기섭 시인의 시집 <분홍색 흐느낌>을 꼽았다.

"이 시집의 시가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아닌데, 다 읽고 나면 참으로 간절한 생의 울림이 처절하게 느껴지거든요. 한 번, 두 번, 곱씹어 읽어볼 때마다, 그 느낌은 사랑이라고밖엔 표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도 그냥 사랑이 아니라, 아주 고약한 연애의 느낌 말이죠."

시집 <분홍색 흐느낌>은 신기섭 시인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다. 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무도마'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 시인은 같은 해 겨울 요절했다. 시집에는 그의 등단작을 비롯해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과 미발표 원고를 모은 53편의 시가 실렸다.

염승숙 작가는 신 시인의 '읍내사거리'를 인용하며 "사랑 혹은 연애는 우리들 몸에 질기게 따라붙는 냄새이자, 세상 모든 마침표 속에 숨어 드는 말줄임표일 수 있겠다"고 찬사를 보냈다.

"재작년 가방에 넣어두고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생의 가장 온전하고도 아름다운 떨림이, 이 시집엔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시인은 비록,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지만요."

박상 작가, <롤리타>

스포츠서울에 야구소설 '말이 되냐'를 연재 중인 박상 작가의 추천작은 러시아계 미국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쓴 <롤리타>. '롤리타 신드롬(미성숙한 소녀에 대해 정서적 동경이나 성적 집착을 가지는 현상)'의 어원이 된 이 소설은 1955년 프랑스에서 발간되었다가 판매가 금지되고, 1958년 미국에서 재발간돼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다.

재치 넘치고 발랄한 문체만큼이나 기발한(?) 추천을 해준 박 작가는 "작년 러시아로 신혼여행을 가면서 러시아 작가의 책을 읽고 싶어서 들고 갔다"고 읽게 된 계기를 말했다.

"공항에서 대기 시간이 몹시 길었거든요. 사랑에 관한 문학작품으로 추천하기엔 대단히 과격한 내용이지만 사랑 그 자체의 죽도록 순수한 감정만은 매우 잘 그렸기 때문에 읽어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하숙집을 찾던 중 험버트의 눈을 사로잡은 소녀 롤리타, 험버트는 롤리타의 의붓아버지가 되고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롤리타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연인이 된다. 하지만 롤리타는 극작가 퀼티를 따라가고 퀼티의 아이를 낳다가 죽는다. 롤리타의 죽음을 전해 듣고 험버트는 퀼티를 살해한다.

소설 같은 사랑을 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박 작가는 "이 작품과 같은 연애를 하면 당장 잡혀갈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다만 이 소설에서처럼 전부를 거는 사랑만은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 조만간 나올 소설집 원고를 쓰느라 책상 앞에만 앉아 있습니다. 연애소설은 자주 썼으니까 그만 쓰고 이제 아내와 현실에서 연애할래요."

고예나 작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마이 짝퉁라이프>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고예나 작가는 김소월의 시 '먼 후일'과 박민규 작가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를 추천했다.

"김소월의 먼 후일은 고등학생 때, 박민규 작가의 소설은 대학생 때 처음 읽었어요. 김소월의 먼 후일은 너무 좋아서 외우고 다녔지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로 시작하는 김소월의 시 '먼 후일'은 1925년에 간행된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된 그의 대표작. 잊을 수 없는 사람을 애써 잊으려는 안타까움이 서린 애달픈 심정을 노래한 시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원작이 된 소설이다. 82년 창단돼 85년 청보그룹에 매각될 때까지 만년 꼴찌를 맴돌던 야구단 삼미슈퍼스타즈와 이들의 팬인 '나'와 '조성훈'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 작가는 밸런타인데이 추천 소설로 이 작품을 꼽은 이유에 대해 "주인공 나는 중매를 봐서 결혼한 아내와 생활고 때문에 합의 하에 이혼을 하고 그 후 재혼을 하게 된다. 그 여자가 전 아내다. 이제 진짜 사랑이 시작된 거다. 그 부분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꼭 연애소설이 아니더라도 책을 통해 연애할 수 있어요. 허영만 작가의 <사랑해> 만화책이 친구 집에 있어서 읽었는데, 책 부분 부분에 편지 형식의 글귀가 있었거든요. 친구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연애시절 이 만화책으로 마음을 전했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사랑해> 1권은 좋은 구절이 많았어요."

"현재 연애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밝힌 고 작가는 조만간 퇴고 후 출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제까지 20~30대 여성들의 연애소설을 주로 써왔는데, 이 외에도 공상소설, 가족소설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쓰고 싶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