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미국 상류층 자제들의 패션… 오피스 룩으로도 활용

번쩍이는 금장 단추,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 깐깐한 체크 무늬, 엄격한 네이비 컬러. 상류 계층이라는 자부심으로 으쓱대면서도 온실 속 화초 같이 심약한 프레피들. 그들의 옷, 프레피 룩의 영원한 매력에 대하여.

국회의원 홍정욱 씨가 자신의 유학 시절 이야기를 쓴 책 '7막7장'을 보면 프레피(preppy)라는 말이 등장한다. 케네디가 나왔던 명문사립고등학교 초우트에 입학한 그는 미국 최상류층 집안의 자제들, 그것도 백인으로만 구성된 그 배타적 집단에 속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친구들과 놀러 가는 날, 흰 폴로 셔츠에 버튼 다운 셔츠, 카키색 바지를 입고 녹색 스웨터를 질끈 졸라 맨 그를 보고 친구들 중 한 명이 비아냥거린다.

"왜, 좀 더 프레피답게 차려 입지 그랬니?"

그가 그토록 속하기 원했던 미국 상류 계층 자제들의 스타일, 그것이 바로 프레피 룩이다.

프레피(preppy)라는 말은 미국 동부에 몰려 있는 명문 사립고등학교 preparatory school에서 따온 말이다. 캠브리지 사전에는 좀 더 노골적으로 설명돼 있다.

-학비가 비싼 학교에 다니고, 비싸며 말쑥한 옷을 입는 부자 가족을 둔 젊은이-

더하고 뺄 것 없는 이 표현대로 프레피 룩은 부잣집 자제들의 교복에서 유래한 패션이다. 때문에 그들의 옷에는 상류 계층의 격식과 그들만의 자부심이 묻어 난다.

짙푸른 네이비 재킷에는 금장 단추를 달고 학교의 문장을 박아 위엄을 드러냈다. 타이는 꼭 매고 니트 베스트 속으로 단정하게 집어 넣는다. 고풍스러운 체크 무늬는 바지나 스웨터, 양말 등 어디에나 사용해 가문과 학교의 유구한 전통을 뽐낸다.

그러나 어른이 채 되지 않은 학생들은 부모의 긍지를 걸쳐 입고 있지만 아직은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어 놀기를 좋아하는 해맑은 청춘들이다. 때로는 부모가 정해진 길을 따르지 않고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완고한 부모를 거슬러서 작은 혁명을 시도하는 프레피들이 등장한다. 연극 배우가 되고 싶었던 닐의 꿈은 자살로 끝이 나지만 그들의 불안하고 생기 어린 눈동자는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 남았다. 품격과 젊음, 프레피 룩을 이루는 것은 이 두 가지 상반된 매력의 충돌이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인기 때문에 한국은 새삼 프레피 룩 열풍이다. 하지만 사실 유행 주기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패션은 아니다. 랄프 로렌이나 타미 힐피거에서는 꾸준하게 아메리칸 프레피 스타일을 선보여 왔고, 그 럭셔리한 매력 때문에 최근에는 발렌시아가나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 등이 변형된 프레피 룩으로 컬렉션을 진행해 대 히트를 치기도 했다.

교복에서 유래한 패션이지만 그 교복 역시 영국 귀족들의 옷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것이기 때문에 30~40대라고 해서 못 입을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상당히 클래식한 아이템들이 많아 굳이 수트를 입지 않더라도 갖춰 입은 느낌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오피스 룩이다.



나이 불문하고 멋지게 프레피 룩을 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네가 구준표라도 되니?" 라는 빈축을 사지 않으려면 이렇게 입어라.


머스트 해브(must have) 네이비 재킷

네이비 재킷은 이유를 불문하고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남자는 골반을 덮는 클래식한 길이로, 여자는 약간 짧은 길이가 귀여워 보인다. "나 유행하는 프레피 룩 입었어"라고 대놓고 선전하고 싶지 않다면 라펠에 파이핑 장식은 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금장 단추나 와펜만으로도 충분히 스타일리시하다.

보우 타이를 할까 말까?

모 아니면 도. 최고의 스타일링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평소에 꾸준히 착용하지 않았다면 소화하기 힘든 것이 보우 타이다. 꼭 시도해 보고 싶다면 배우 이정재가 했던 것처럼 같은 색깔의 행커 치프를 매치해보자. 타이가 어색하게 따로 노는 느낌이 줄어든다. 무난하게 가고 싶으면 일반적인 타이를 하는데 요즘 유행하는 폭이 좁은 타이가 아닌 와이드한 것으로 고른다. 초록색과 흰색, 약간 톤 다운된 빨간색이 프레피들의 컬러다.

니트 카디건과 니트 베스트

고등 학생들의 활기찬 이미지는 프레피 룩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이것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카디건과 베스트. 니트 베스트는 재킷 안에 입으면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고 보온 효과도 있다.

단색 말고 깅엄 체크나 아가일 체크 무늬를 고른다. 여자는 재킷 대신 카디건을 입으면 훨씬 유연하고 어려 보인다. 미국 드라마 '가십걸'의 블레이크 라이블리처럼 흰 셔츠에 체크 무늬 타이를 매고 그 위에 카디건을 오픈해서 걸쳐 보자.

치노 팬츠라고 다 같지 않다

프레피 룩에는 치노 팬츠(면 바지)를 빼놓을 수 없다. 단, 통이 중요한데 허리 부근에 턱(주름)을 잡아 엉덩이 부분을 넉넉하게 만든 것은 절대 금물. 다리를 따라 흐르는 일자형 팬츠가 아니면 안 된다. 바지 길이가 너무 길어도 프레피가 아닌 그냥 직장인처럼 보인다. 끌리지 않도록 길이를 조절한다.

여자들도 플리츠 스커트 대신 치노 팬츠를 입을 수 있다. 넉넉한 팬츠의 밑단을 두 번 정도 접어 발목을 드러내거나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배기 팬츠에 하이힐을 매치하면 매니시하면서도 섹시하다. 컬러는 베이지와 카키, 화이트가 기본이다.

뿔테 안경을 잊지 말라

군더더기 없는 것이 프레피 룩의 매력이지만 뿔테 안경만큼은 최고의 단짝 친구다. 테의 모양과 색깔에 따라 다니엘 헤니처럼 이지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고 은지원처럼 무심한 장난꾸러기로 보일 수도 있다.



도움말: 패션 칼럼니스트 피현정 브레인파이 대표, 디자이너 고태용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