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자택 기념관 조성·통영국제음악제 등 음악적 업적 재조명 활발

"나는 고통이 있고 부당함이 있는 곳에 음악을 통해 더불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예술관 때문에 그는 이데올로기적 논란에 휩싸였는지도 모른다. 2006년 1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윤이상에 대한 정치적 이슈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윤이상'이라는 이름 세 글자에는 여전히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독일의 음악학 박사인 크리스티안 마틴 슈미트는 50년대 말 유럽에 등장한 한국태생 윤이상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겼다. '그의 작품에는 고향에 뿌리를 둔 음악과 20세기 유럽 음악에서 취득한 음악이 서로 뒤엉켜 하나의 독특한 양식으로 빚어졌다. 오늘날 윤이상은 아방가르드 음악계에서 서양문화권 태생이 아닌 작곡가 중 가장 중요한 인물로 간주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차츰 허물을 벗은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적 업적에 초점을 맞추는 혹은 맞추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을 창작했던 베를린 자택의 기념관 조성, 지난해 국고지원사업 평가결과에서 음악 분야 1위를 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구 경남국제음악콩쿠르, 더불어 콩쿠르 명칭도 올해부터 변경되었다), 곧 개막을 앞둔 통영국제음악제는 물론이고 국제적인 성장을 위한 리브라이히의 음악감독 영입까지. 음악가 윤이상과의 만남을 위한 분주한 움직임을 살펴봤다.

탄생 100주년 페스티벌은 한국 연주자들의 향연을..

78년 생애 동안 예술혼을 사르며 써낸 작품은 150여 편. 그 중 초기 20편을 제외한 130여 편은 1971년부터 1995년 타계하기까지 머물던 베를린 자택에서 지어졌다.

예술의 자궁과도 같았던 그의 자택이 오는 5월 베를린윤이상기념관(ISANG YUN HAUS)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후원을 받아 3월 중순에 완공되어 막바지 손질이 한창이다. 그의 자필 악보의 문화재 등록에 관해 문화재청과도 협의 중이다. 서재와 작업실은 원형 보존하고 남은 공간은 연구센터로 운영된다.

이를 기념해 각각 베를린윤이상앙상블의 작은 음악회가 기념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과 클라리네티스트 계희정, 파리누벨제네라시옹앙상블(지휘: 박지용)의 연주회는 파리 앵발리드에서 열린다.

독일과 북한은 한국에 앞서 윤이상의 음악적 업적을 조명해왔다. 독일의 베를린국제윤이상협회와 베를린윤이상앙상블, 평양의 윤이상음악연구소와 윤이상관현악단으로, 연구단체와 연주단체가 짝을 이루어 조직되었다. 서울에서는 뒤늦게 2005년 발족한 윤이상 평화재단과 윤이상의 작품을 전문적 연주를 위해 2007년 창단한 서울윤이상앙상블이 같은 역할을 해오고 있다.

윤이상 평화재단은 윤이상의 탄생일인 9월 17일에서 타계 일인 11월 3일 사이를 공식적인 윤이상 페스티벌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베를린, 평양에서 이루어지는 음악제와 동시에 진행되는 페스티벌은 평화재단의 시작과 더불어 태동했다. 탄생 90주년을 맞은 2007년에는 제법 규모가 컸다. 2007년에는 윤이상 작곡상을 제정했고 지난해부터는 학술자료 발굴과 정리에도 힘쓰고 있다.

앞으로 8년. 윤이상 탄생 100주년 페스티벌을 위해 윤이상 평화재단은 차근차근 의미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 윤이상 교향곡 전곡 5곡, 오페라 4곡, 협주곡 10곡 등을 한국인 연주자들로만 구성된 연주회를 마련하는 것.

서양의 음악을 기반으로 동양의 철학과 사상을 녹여낸 윤이상의 음악은 국악의 음악적 기법을 적극적으로 들여왔다. 외국인 연주자들이 윤이상의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 국악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궁극적으로는 윤이상의 작품에 대한 해석이 한국 사람에게 이루어진다면 이전과는 다른 음악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윤이상 평화재단의 속마음이다.

그 가능성의 정점을 보여준 이는 지난해 10월, 유일한 한국인으로 평양의 윤이상음악회에서 협연한 첼리스트 고봉인이다. "국악의 뿌리가 깊은 전주에서 태어난 첼리스트다.

김덕수 씨의 장고 연주에서나 느껴질 법한 국악의 역동성을 그는 첼로의 현 위에서 실현했다"고 말하는 윤이상 평화재단의 홍석주 음악사업부장은 "외국인은 할 수 없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해석의 가능성이 열릴 거라"고 덧붙였다.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 (왼쪽)
2011년부터 통영 국제음악제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는 알렉산더 리브라이히(오른쪽)

통영국제음악제, 세계적인 현대음악제로 발돋움

올해로 8회를 맞은 통영국제음악제는 태생부터 윤이상의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점차 그를 토대로 한 현대음악페스티벌로 성장해가고 있다.

2004년부터 도입된 시즌제로, 봄에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고 가을에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가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부문이 번갈아가며 열린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3월 27일 개막해 일주일 동안 계속되며,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11월 14일부터 11월 22일까지 첼로부문으로 이루어진다.

올해도 세계 곳곳의 연주단체들이 꽉 찬 프로그램을 선보이지만 무엇보다 '초심 찾기'에 중점을 두었다. "2~3년 전 대중적인 요소를 가미하면서 관객이 늘었지만 초심을 잃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현대음악제'라는 본연으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으로 짜였다." 이용민 통영국제음악제 사무국장의 말이다.

축제의 시작은 2011년부터 통영국제음악제 음악감독 직을 수행하는 알렉산더 리브라이히가 그가 이끄는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알린다.

올해 마흔 살의 촉망받는 젊은 지휘자는 '현대음악에 대한 해석이 탁월하고 한국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적인 현대음악제로 발돋움해가는 통영국제음악제와 함께 성장해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고전시대와 컨템포러리 레퍼토리에 두루 능한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개막공연을 비롯한 이틀간의 연주회에서도 시대별로 고른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이 중 윤이상이 남긴 두 곡의 체임버 심포니 중 1번을 연주한다. 복합적인 음악적 요소로 지휘자 없이 연주할 수 없다는 24분의 대작이다.

개막작 외에 페스티벌 기간에 눈길을 끄는 공연이 있다. 집시 바이올린의 대가 로비 라카토시의 '집시 바이올린'. 전통적 집시 음악에 재즈의 자유로움을 얹어낸 그는 지극히 애절하면서도 광기에 휩싸인 연주를 들려준다. 반세기 넘는 역사를 지닌 영국의 노던 신포니아는 브리튼의 콘체르토의 국내 초연과 크셰넥의 교향악 등의 레퍼토리가 정제된 오케스트라의 선율 속에서 피어난다.

모든 축제의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인 폐막 연주회는 TIMF앙상블(지휘: 게르하르트 뮐러-혼바흐)의 구스타브 말러의 '대지의 노래'.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에 비견되는 작품으로, 쇤베르크가 편곡했다.

이들 외에 밤 10시에 열리는 콘서트로 '나이트 스튜디오' 시리즈와 폴란드 라디오 방송 합창단, 부산시립교향악단 등의 공연도 기대를 모은다.

정기프로그램 외에 프린지가 통영시 곳곳에서 열리며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돋워준다. 또한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2년에 한 번씩 아시아 각 도시를 돌면서 열리는 '아시아 태평양 현대음악제'를 흡수해 10여 곡의 국내 초연 곡을 만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은…


생전에 이미 세계 5대 작곡가로 꼽혔다. 서양음악의 어법에 동양적 철학과 국악의 음향을 흡수한 150여 곡을 남겼다. 1956년부터 파리와 베를린에서 유학했으며 유럽에서 작곡가로서 명성이 자자하던 1960년대, 동베를린 사건으로 납치되어 무기징역 선고까지 받았다.

동베를린 사건은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으로, 프랑스와 독일로 유학 혹은 이민 간 194명을 간첩으로 지목했다. 작곡가 윤이상 외에 화가 이응로, 천상병 시인도 연루되었다.

세계적 예술가들의 구명운동으로 석방된 윤이상은 이후 베를린에서 거주했다. 1977년부터 10년간 베를린 예술대학 작곡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0년 남북통일 음악제를 주관하며 음악으로 남북의 화합에 힘썼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