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박영숙·구두제작자 이보현 "높은 굽은 여성성·자기 표현의 극치"

09 S/S 프라다 쇼에서는 두 명의 모델이 런웨이 위에서 넘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휘청거리다가 주저앉았다. 차마 넘어지지도 못할 만큼 무시무시하게 높은 힐 때문이었다. 프라다가 그녀들에게 신겼던 구두는 굽 높이 17cm 의 하이힐, 아니 사람 잡는 킬 힐이다.

킬 힐은 이름 그대로 죽일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12cm에 이르는 날카로운 뒷굽은 밤길에 바짝 뒤쫓아 오는 치한을 퇴치할 때 재빨리 벗어서 사용할 수 있다.

매일 신고 다닐 경우에는 혈액 순환을 방해하고 발가락 뼈를 뒤틀리게 해 되려 신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통상적으로 굽의 높이가 6cm가 넘어갈 때 하이힐이라고 부른다.

그보다 더 굽이 높은 킬 힐의 기준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킬 힐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보는 이로 하여금 '헉' 소리가 날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 유일한 기준이다.

하이힐의 매력에 대해 말할 때 흔히 키가 커 보이고, 종아리가 곧고 날씬해 보이며, 조금이라도 긴장되고 정돈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물론 이것들은 6~7cm의 보통 하이힐로도 가능한 일들이다.

그럼 킬 힐은 신는 여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위험한 물건에 탑승하는 것일까? 킬 힐에 미친 두 사람에게 그 매력에 대해 물었다. 한 명은 킬 힐이 너무 좋아 킬 힐을 그리는 화가고, 다른 한 명은 킬 힐이 너무 좋아 킬 힐을 직접 만드는 구두 제작자다.

1-프라다, 2-프라다
3-박영숙 '신데렐라의 꿈'
4-레노마의 '파워 스트랩'
5-슈콤마보니

박영숙 작가

언제부터 킬 힐을 그리기 시작했나 4년 됐다. 왜 킬 힐을 그리게 된 것인가 킬 힐만 그리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는 하이힐부터 기이할 정도로 높은 킬 힐까지 모두 그린다. 킬 힐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굽이 높은 구두는

현대 문화에서 여성성을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내 작품의 주 테마가 바로 여성성에 대한 연구다. 그 중에서도 킬 힐에는 하이힐의 개념을 넘어선 편집증적, 광적인 매력이 엿보인다. 킬 힐의 광적인 매력이란 무엇인가 무당복을 입거나 법복을 입으면 그 옷으로 인해 입은 사람의

정신과 심리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나. 킬 힐도 마찬가지다. 12~13cm에 이르는 높은 굽을 신게 되면 그만큼 시선이 훌쩍 올라가고 주변 사람들의 경이에 찬 시선을 받게 된다. 여기에서 심리적·정신적 상승 작용이 생기게 된다. 킬 힐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로부터

발을 괴롭히는 것은 신분 상승과 관계가 깊었다. 중국의 전족이 그렇고 신데렐라의 언니들도 발을 잘라가며 유리구두를 신으려고 했다. 여성들은 킬 힐을 자신의 신체의 일부로 여기며 하녀에서 공주로, 신분의 수직상승을 꿈꾼다. 왜 킬 힐이 트렌드의 첨단에 오르게 되었다고 생각하나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의 파워가 강해지면서 생겨난 자연스런 결과물이다. 이 심리를 읽어낸 기업들은 성공을 거두었다. 킬 힐을 그리면서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나 브랜드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예쁘다고 생각하는 브랜드가 몇 번 겹친 적은 있을 텐데 구찌나 프라다를 좋아한다.

조형성이 뛰어나 일상 생활에서 보여지는 신발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것들이 많다. 신발보다는 예술에 가깝다. 본인은 킬 힐을 신나 내가

신지는 않는다.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그렇게 높은 굽을 신을 일이 없다. 신어봐야 그 매력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사실은

신고 싶어서 산 적이 몇 번 있다. 그런데 결국엔 구두방에 가서 굽을 자르게 되더라. 너무 아파서 신을 수가 없었다.

슈콤마보니 이보현

슈어홀릭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현재 약 300켤레의 구두를 가지고 있다. 올 봄 슈콤마보니의 상품에는 킬 힐이 몇 퍼센트를 차지하나 전체의 약 80% 정도가 킬 힐이다. 너무 많지 않나 불경기에는 트렌디한 아이템들이

더 많이 팔린다. 플랫 슈즈도 있지만 워낙 킬 힐이 트렌드라 비중을 늘렸다. 6~7cm 힐은 오히려 더 줄었다. 가장 높은 굽은 몇 cm인가

13cm다. 실제로 사가는 사람이 있는가 물론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과 명동 롯데 백화점 등에서 반응이 좋다. 지방에서는 아직 이렇게

높은 슈즈를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본인은 킬 힐을 신나 그렇다. 평소 신고 다니는 구두의 높이가 10cm에서 11cm 정도다.

굽이 두꺼운 걸 즐겨 신는다. 일을 하다 보면 킬 힐을 신고 다니는 것이 힘들지 않나 습관이 되니 괜찮다. 게다가 킬 힐에는 거의

플랫폼이 있는 디자인이 많다. 플랫폼은 구두 앞쪽에 달린 굽인데 이것 때문에 11cm 짜리 킬 힐을 신어도 실제 느끼는 높이는 9cm 정도다. 불편함을 참으면서 킬 힐을 신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9cm 이상이어야 하이힐이라고 생각한다. 7~8cm 까지는 그냥 슈즈다.

9cm부터 패션의 개념이 들어간다. 그냥 시장이 제안하는 유행에 휩쓸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킬 힐이다. 킬 힐을 고집하는 이유가 또 있나 자세가 달라진다. 운동화를 신었을 때와 킬 힐을 신었을 때는 자신감, 태도,

마음가짐, 모든 것이 달라진다. 걸음걸이가 약간 팔자인데 그것도 조심하게 된다. 킬 힐을 신는 여자들의 심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높은 굽은 곧 불편함이다.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서 신발 본연의 기능을 포기하고 발이 뒤틀리는 불편을 감수할 만큼 자기 표현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조금 편하게 신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커다란 가방에 플랫 슈즈나 조리를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바꿔 신는다. 오너 드라이버들은

차 안에 5개 가량의 슈즈를 놓고 상황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킬 힐이 언제까지 유행할까 물론 유행은 계속 바뀐다. 하지만 올해 말까지는

강세를 보일 것이다. 올해 킬 힐 트렌드를 말해달라 소재는 뱀피 등의 애니멀 프린트가 많다. 두꺼운 스트랩으로 이루어진 글래디에이터

스타일의 슈즈가 각광 받을 예정이다. 플랫폼이 적극 활용될 것이고 두꺼운 굽과 가느다란 굽이 동시에 선보일 것이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