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클리닝 하지 않고 '샤워 세탁' 할 수 있는 울정장 속속 출시

(좌) 캠브리지 슈트 (가운데) 지오투 워셔블 슈트 (우) 로가디스 언컨 샤워 슈트

“이젠 정장 양복도 ‘물빨래’ 한다?!”

올 봄 남성 패션 트렌드에 ‘혁명’의 기운이 감돈다. 다름 아닌 이른바 ‘물 세탁’이 가능하다는 신사복 정장의 출현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양복 정장의 주 섬유 소재는 울(Wool), 즉 양털이다. 때문에 모직물, 특히 정장은 반드시 드라이 클리닝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상식. 그럼에도 올 봄 신상품으로 선보이는 양복 정장들은 기존의 상식과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제일모직의 신사복 로가디스(Rogatis)가 2009년 봄ㆍ여름 시즌을 맞아 내놓은 신제품 ‘언컨 샤워슈트(UN-CON SHOWER SUIT)’. 모직 소재로 겉보기 만으로는 여느 정장과 다를 바 없지만 세탁 방법 만은 특이하다. 욕실에 있는 샤워기로 물만 뿌려주면 세탁이 된다는 점 때문. 이른바 ‘샤워 세탁’이다.

아직 용어도 생소하게만 들리는 샤워 세탁은 단어 그대로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샤워할 때 쓰는 수도 꼭지로 샤워하듯이 물만 뿌려주면 세탁이 된다는 것. 종전에 물빨래가 가능하다는 ‘워셔블’ 양복이 선보이긴 했는데 상의 보다는 바지에 국한된 것이어서 샤워 슈트는 이 보다 더 업그레이드 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세탁 과정은 간편한 4 단계로 요약된다. 먼저 의류를 뒤집어 옷걸이에 건 뒤 온수(약 40°C)로 의류의 안감 쪽을 2~3분 정도 짧게 샤워시켜 준다. 다음은 옷을 다시 뒤집어 역시 온수(약 40°C)로 2~3분 정도 짧게 뿌려 준다. 마지막으로는 옷걸이에 걸어 (직사 광선을 피해) 건조시켜 주는 것 뿐.

신종 세탁 방식이랄 수 있는 샤워 세탁은 엄밀히 말해 빨랫감을 세탁기에 집어 넣어 돌린다거나 익숙한 물빨래 개념과는 다르다. 그냥 물을 뿌려주고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 세제가 사용되는 것도 더욱 아니어서 굳이 ‘세탁’이라는 용어가 어울리지 만도 않는다.

어쨌든 ‘발상의 대전환’을 토대로 한 ‘샤워 슈트’는 올 봄 패션가의 주목할 만한 신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제일모직이 3월 샤워 세탁이 가능한 ‘언콘 샤워슈트’를 내놓은데 이어 경쟁사인 FNC코오롱의 남성 브랜드 캠브리지와 지오투도 워셔블 슈트’를 4월부터 선보일 예정이다.

그럼 섬유 소재가 모직이고 더더욱 복장의 형태 유지가 생명인 정장인데 어떻게 ‘물 세탁’이 가능할까? 해답은 예상 외로 복잡하게도 방적과 직조, 그리고 봉제 기술까지 ‘패션의 전과정’에 숨어 있다. 한 마디로 물세탁이 가능하다면 ‘특이한 모직 천’ 때문 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예상과는 전혀 다르다.

물론 샤워 슈트는 원단을 구성하는 원자재인 실, 즉 실을 뽑는 방적 단계에서부터 고유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천을 짜는 제직 단계에서도 새로운 기술이 추가된다. 원단을 구성하는 실과 실 사이에 물의 침투가 가능하도록 울에 특수한 방적과 제직 기술을 접목해야만 하는 것.

“수용성오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샤워 세탁 시 용매역할을 하는 물이 원단에 빨리 침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원단에 기공(실과 실사이의 빈 공간, 공극)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일모직 윤형식 로가디스 상품기획과장은 “방수가 물을 튕겨내는 것이라면 샤워 슈트는 물을 흡수하지 않고 빨리 투과되거나 발수, 방출되도록 하는 것이 기술의 관건”이라고 쉽게 설명한다. 옷이 물을 머금지 않기 때문에 빨리 건조가 되고 조직 변형도 없게 된다는 것. 때문에 원단설계부터 기공이 많이 생성되도록 원사를 설계하고 실의 굵기(번수)와 꼬임수를 최적화시켜 원사를 제조했다.

이 때 실사이의 공간이 많으면 원단의 비침 현상이 발생되는 것이 문제. 이를 방지하면서도 물의 침투와 배출 등 기능발현이 잘되도록 하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또 원단 직조 단계부터 기공이 많은 품종(PORAL)으로만 제품을 구성했다.

특히 주소재인 양모는 물에 닿으면 형태 변형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 현상. 때문에 물의 접촉이 많이 있더라도 섬유의 형태변형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형태 안정 가공 기술이 적용됐다.

그럼에도 샤워 슈트의 기술은 방적과 직조 기술 만으로는 부족하다. 원단 뿐 아니라 부자재와 봉제 기술에서도 새로운 노하우가 추가돼야만 한다. 보통 정장 상의에는 모심이나 펠트, 단추 등 각종 부자재들이 들어가는데 이들 재료 또한 물 세탁에 의해 형태가 변형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들어 가 있다.

샤워 슈트에 관한 이들 원천 기술은 호주의 비영리 기구인 AWI(호주양모협회)가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부자재와 봉제 등 2차적인 기술은 일본 회사가 갖고 있는데 현재 중국 공장에서 신기술을 적용, 생산중이다.

이 제품은 AWI에 의해 기술 개발돼 일본에서 성공적인 판매를 이뤘다. 일본 경제전문지 ‘일경트렌디’ 지난 해 12월호가 2008 히트 상품 베스트 30을 발표했는데 샤워 슈트는 15위를 차지했다. AWI 김수미 실장은 “샤워하듯이 물만 뿌려주면, 다음날 새 옷처럼 입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고 소개한다.

샤워 슈트는 세탁 실험 검증에서 생활 오염의 90% 이상 세탁률을 보이고 있다. 커피, 먼지 등과 같은 수용성오염에서 특히 효과가 우수했는데 유성잉크, 기름, 고추장 등과 같은 지용성오염의 제거에서는 드라이 클리닝 보다는 제거 효과가 다소 덜한 편이다. 하지만 생활 오염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용성 오염 제거에서는 드라이클리닝 보다 우수하게 나타났다.

제일모직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 제품을 선보인 과정도 이채롭다. 당초 패션 트렌드에서 샤워 슈트가 일본에서 관심을 끄는 것을 보고 국내에서도 한 번 도입해보기로 한 것. 추적 끝에 호주가 원천기술을 가진 것을 알게 됐고 여러군데 수소문, 신상품으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코오롱은 한 발 늦었지만 그래도 경쟁사로서 맞불을 놓게 돼 시장에서의 격전이 예상된다.

이처럼 혁신적인 기술에도 불구하고 샤워 슈트가 시장에 얼마나 안착할 수 있을 지는 아직 물음표다. 최근 정장을 편하게 입으려는 활동적인 트렌드가 대세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있는 반면 아직은 낯선 기술이라는 핸디캡도 있다. 가격대는 일반 양복 수준인 40만~50만원선.

그럼에도 제일모직 경우 오늘날 로가디스 성공의 견인차로 일컬어지는 ‘언콘’ 브랜드의 연장선상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분석이다. 패션가에서는 남성복 시장을 두드려 보고 반응에 따라 학생복과 여성복으로까지 확대시킨다는 전망이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