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발상-초고와 육필 원고'전展故 박경리·이청준 등 주요 문인들 난산의 생생한 흔적

1-박범신 '나 마스떼' 원고
2-김상옥 '작가의 방'
3-조정래‘오, 하느님’취재수첩, 초고, 원고
4-이균영‘바람과 도시’초고
5-김동리‘작가의 방’
1-박범신 '나 마스떼' 원고
2-김상옥 '작가의 방'
3-조정래'오, 하느님'취재수첩, 초고, 원고
4-이균영'바람과 도시'초고
5-김동리'작가의 방'

“모든 상이란 모범생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번 수상소식이 고맙고도 뜻밖이라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나는 문단에서 소위 말하는 모범생으로 일컬어지는 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처럼 수많은 문학상 후보에 올라 있다가 떨어진 사람도 없을 텐데 그래서 은근히 문학상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적의를 갖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후략).”

기껏 상 받아놓고 하는 소리다. 악동 기질이 다분하다. 하지만 껄껄하지는 않다. 글씨 덕이 크다. 어떤 규격도 괘념치 않는 듯 자유롭고 천진하게 헤죽거리는 듯한 모양이다. 그 앞에서 정색하면 우스워진다. 그저 이 리드미컬한 냉소를 흥얼흥얼 읊어본다. 소설가 최인호의 1982년 이상문학상 수상소감이다.

또 한켠에는 붓글씨가 적혀 있다. “순수한 것은 향기롭게 빨리 썩는다.” 굵기와 뭉친 정도, 빠르기가 획마다 제각각이다. ‘향’에서는 붓이 질퍽하게 머물렀으리라. ‘빨리’에서는 붓도 스윽 내달렸으리라. 모과가 썩은 것을 보고 시인 정진규가 쓴 것이다.

지난 17일부터 5월31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열리는 ‘창조의 발상-초고와 육필 원고전’의 모습이다. 최근 작고한 박경리, 이청준에서부터 박완서, 이문열, 조정래, 고은, 정현종, 김승희에 이르기까지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중요한 문인들의 초고, 육필원고를 모았다. 80평 전시실이 난산의 생생한 흔적으로 가득하다. 정말, 몸으로 낳은 단어고 문장이고 언어이며 세계다. 거기 배어 있는 문인의 체취와 성정, 웅성거리는 고뇌와 갈등을 맡고 겪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전시 제목대로 ‘발상’에서부터 ‘초고’ 탄생의 과정까지를 드러내고자 기획했다. 예를 들면, 조정래의 소설 ‘오, 하느님’(2007)의 경우 취재수첩, 초고, 원고를 망라했다. 원고 작성 전 취재가 철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포로수용소가 그려져 있고, 구분된 공간마다 용도나 수용인원에 대한 메모가 적혔다. 소설의 모티프인 노르망디 상륙작전 관련 내용도 있다.

초고는 종종 완벽을 향한 문인들의 집념의 ‘풍경’이다. 소설가 이균영이 깨알 같은 글씨로 쓴 ‘바람과 도시’(1977) 초고에는 행간이 없다. 그만큼 다닥다닥한 글이다. 윗부분에 “격정을 그리는 것 이외에는 없다”는 메모가 남았다. 쓰인지 30년이 지나도록 후끈한 저 격정이 다만 소설 주인공만의 것이었을까.

극작가 이강백의 ‘수전노, 변함없는’의 초고에는 지워진 부분이 더 많다. 제목도 원래 ‘수전노, 불멸의 존재’였다. 문장을 그은 선들이 가차 없다. 위대한 문학작품은 이렇게 숱하고 치열한 자기부정을 거듭한 후라야 탄생할 수 있음을 증명하듯이.

그런가 하면 박범신의 소설 ‘나마스테’(2005)의 원고에는 고친 티가 하나 없다. 단숨에 써내려갔다는 것일까. 아니, 박범신은 틀리면 아예 원고를 버리고 다시 쓴다. 더 이상 고고할 수 없다. 글 쓰는 품성이 2008년 만해문학상 수상 소감에도 드러난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임은 침묵하지 않았다. 만해 한용운 선생을 나는 지금 감히 ‘임’이라 부른다. 일제에 의한 강압적 재갈이 만백성에게 물려 있었기 때문에 승려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은 홀로 산야에 묻혀 은인거사로 살 수 없었던 것이다.(중략) 임은 평생 이 땅의 민초들이 자주적으로 살기를 주장했고, 불교의 민중화 자주화를 위해서 준열한 자아비판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문학작품 역시 어두운 현실과 드높은 이상 사이의 균열을 깨치는 데 바쳐졌다.”

힘찬 필체가 이를 뒷받침한다.

각종 문학상 수상 소감이 많아 비교해 읽는 것도 큰 재미다. 아무리 이름 높은 문인이라도 기쁘고 놀랍고 고맙고 무거운, 평범한 마음을 누르지 못한다. “‘엄마의 말뚝 2’에서 상을 주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왜 하필 그 작품을? 하고 흠칫 놀라면서 부끄러웠고, 피하고 싶었고, 숨어버리고도 싶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의 1981년 이상문학상 수상소감), “소식을 들은 어제 하루는 마치 복권 당첨이 된 듯 처음엔 무조건 기뻤다. 그런데만 하루가 지난 지금, 수상소감을 쓰려니 머릿속이 하얗게 바랜 듯 멍하다.”(소설가 권지예의 2002년 이상문학상 수상소감) 같은 고백들을 보자.

6-김남조의 원고들
7-박경리의 소장품

그 중에는 문학의 시대적 소명을 결연하게 밝히는 것도, 작가 자신의 문학적 원천을 내보이는 것도 있다.

“안부를 묻는다는 게 점점 더 실감나는 시대입니다.(중략) 그리하여 시 쓰기는 사람세상과 세상사람의 안부를 묻는 행위이며 시는 필경 안부를 묻는 말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공동체의 건강과 개인들의 항상 모자라는 평화와 기쁨을 위해 말을 건네는 것이지요.”(시인 정현종의 2001년 미당문학상 수상소감)

“2003년 겨울에, 또 조금만 더 쓰기로 작정을 하고 연필과 미숫가루를 챙겨서 일본 교또 서쪽의 깊은 산 속으로 들어왔읍니다. 맑은 강이 흐르고 대숲이 서걱이는 마을에서 원양을 건너온 겨울 철새들이 날개를 퍼덕거렸읍니다. 제 몸에 달린 날개를 흔들어서 날아가는 그것들의 목숨은 쓰라리고 또 감미로와 보였읍니다. 키 크고 목 긴 새들이 한 쪽 다리로 서서 부리를 죽지 밑에 틀어넣고 한나절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읍니다. 그 새들의 자태는 혼자서 세상을 감당하는 자의 엄격함이었읍니다. 살아있는 것들은 기어이 스스로 아름다운 운명을 완성한다는 것을 새를 들여다 보면서 알았읍니다.”(소설가 김훈의 2004년 이상문학상 수상소감)

몇몇 작가들의 애장품도 함께 전시된다. 시인 김남조에게는 초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원고 옆에 놓인 미려한 색감과 추상적인 문양의 초들은 세심하게 제련된 김남조의 사랑의 언어와 닮아 보인다. 박완서의 원고 옆에는 당신이 생전 쓰시던 호미, 시댁에서 대물림한 목판이며 영수증함 등이 그득하다. 그 물건들의 인상과 사연이 곧 무엇보다 땅과 가깝고, 역사 속에서 세대의 소멸과 도래를 넘는 자연적 순리에 일깨워낸 작가의 문학관인 듯하다.

소설가 김동리, 시인 김상옥은 아예 전시장 귀퉁이에 살림을 차렸다. 유족들이 기증한 소장품으로 ‘작가의 방’을 꾸민 것. 김동리의 방은 정갈하고 김상옥의 방은 이국적이다. 각각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지금은 돌아간 작가의 삶을 감히 짐작이라도 해보려는데 김승옥이 도자기에 적은 ‘江山無人流水華開’라는 한문이 눈에 들어왔다. “강산에 사람은 없는데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는 뜻이라고 강인숙 관장이 일러주었다. 그는 이곳이 “작고한 문인들이 지상에 나들이 하러 올 때 머물 장소”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작가를 망각으로부터 지키고 싶어"


'창조의 발상-초고와 육필 원고전'의 기획 의도는

육필 원고에서는 작가의 개성이 드러난다. 필체를 통해 쓴 이의 품성은 물론, 문방사우의 선택 기준과 취향, 건강상태와 경제적 여건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초고에 초점을 맞추어 글이 시작되어 작품으로 결실되기까지의 과정을 음미해보려 했다. 나아가 초고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했다.

초고의 중요성에 대해 왜 아직 아무도 언급을 안 했을까

무엇보다 전쟁 때문이다. 식량이며 옷가지, 솥을 먼저 챙겨야 했으니 문화를 생각할 겨를이 있었겠나. 나만 해도 피난 갈 때 일기장 들고 간다고 했다가 혼났다.(웃음) 거리에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헐값에 나와 있는데도 아무도 사지 못하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1920년대 문인들의 자료는 거의 없다.

이번 전시에는 현대문학사의 중요한 문인들이 총망라된 느낌이다

그러는 바람에 가진 자료들을 다 못 보여준 부분도 있다. 앞으로는 이런 식의 '넓은' 전시와 한 작가에 집중하는 깊이 있는 전시를 번갈아 할 생각이다. 그렇게 하나씩 정리해가려고 한다.

육필에는 작가의 성정과 성품이 밴다고 했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난 작가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최인호의 경우, 둥글둥글하고 모난 데가 없다. 글씨를 보면 사람이 보인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작가는 아니지만 이상의 글씨는 얌전한데, 그런 면이 그 속의 파격성과 균형을 이루는 것 같다.

자료를 모으면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여러 수집가에게 도움을 받았다. 시인이자 무용평론가였던 故 김영태 선생이 기억난다. 암에 걸린 후 몇 해 사시지 않았나. 그 기간에 석 달에 한 번씩 자료를 정리해 보내오더라. 돌아갈 줄을 알고 그러는 걸 아니 마음이 아팠다.

영인문학관의 의미는

우리가 전시 때마다 펴내는 도록은 그 자체로 자료집이다. 한국문학사에 자료가 부족한데, 자료가 없어지는 것을 최대한 막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작가를 망각에서부터 지키는 역할도 하려고 한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