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생일 맞아 '디지털 3인3색' 등 다양한 기획, 골라보는 재미 먹는 즐거움까지

지난 4월 16일, 전국의 영화팬들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윽고 11시가 되자 한 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이 미리 작성해둔 시간표를 토대로 예매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들은 환호하는 사람들과 예매에 실패하고 좌절하는 두 무리로 나뉘어졌다.

유명가수의 콘서트 예매 현장이 아니다. 30일 열리는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위원장 민병록)의 예매 현장이다. 지난달 14일 전주국제영화제 사이트(www.jiff.or.kr)에서 개막작 ‘숏!숏!숏! 2009’이 예매 시작 2분 만에 매진된 데 이어 이날도 영화팬들이 노리는 기대작들은 순식간에 매진돼 손이 느린 사람들의 발을 구르게 만들었다.

전주영화제, 10살 생일 ‘거하게’ 치른다

어느덧 10회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역시 ‘디지털 3인3색’이다. 디지털 3인3색은 ‘대안’, ‘실험’, ‘디지털’을 화두로 삼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상징이라고 할 만하다.

디지털 3인3색은 세 명의 감독에게 전주국제영화제 프리미어 상영을 전제로 제작비를 지원하고, 디지털 카메라와 디지털 편집 장비를 이용해 각각 30분 분량의 디지털 영화를 제작하도록 하는 핵심 프로그램.

올해는 한국의 홍상수를 비롯해 일본의 가와세 나오미, 필리핀의 라브 디아즈 등 아시아 감독 3인의 작품이 선보여진다. 특히 이번 행사는 10주년을 맞아 지난 9년간 제작된 27편의 영화를 모아 DVD 박스 세트도 발매할 예정이다.

전주영화제의 또 하나의 상징인 ‘숏!숏!숏!’도 1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구성됐다. 올해의 주제는 ‘돈’. 현대인의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인 돈을 놓고 이송희일·김영남·최익환·윤성호·양해훈 등 10명의 젊은 감독이 각자의 개성이 담긴 10분 내외의 단편을 모아 한 편의 옴니버스 디지털 장편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된다.

10주년 기념 선물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전주영화제가 지나온 길을 ‘한 방’에 알 수 있는 특별한 선물 세 가지도 마련되어 있다. 아홉 해 동안 영화제에서 소개된 중견 감독의 데뷔작을 다시 보는 ‘JIFF가 발견한 감독열전’, 역대 경쟁부문 수상자들의 신작 모음인 ‘JIFF 수상자의 귀환’, 일반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선정된 ‘다시 보고 싶은 JIFF’가 그것이다.

평소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감독들의 작품을 만나고 싶은 씨네필들의 갈증은 이번에도 회고전과 특별전으로 풀어질 듯하다. 이번 영화제에선 일반 관객에겐 다소 낯선 동유럽 뉴웨이브의 거장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의 작품이 회고전으로 엮어진다.

조지훈 프로그래머는 이번 행사에 대해 “이번 회고전을 통해 영화의 장르적 규칙을 거부하고 주류와 아방가르드 사이를 오가며 예술적 가치를 위해 어떤 타협도 하지 않았던 스콜리모프스키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디지털 3인3색,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
2-시네마스케이프-장편 극영화 부문의 '멜랑콜리아'
3-개막작 ‘숏!숏!숏! 2009’의 한 에피소드에 참여한 이송희일 감독
4-홍상수 감독
5-회고전 상영작-영화감독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의 '장벽'
1-디지털 3인3색,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
2-시네마스케이프-장편 극영화 부문의 '멜랑콜리아'
3-개막작 '숏!숏!숏! 2009'의 한 에피소드에 참여한 이송희일 감독
4-홍상수 감독
5-회고전 상영작-영화감독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의 '장벽'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와 전주의 매력

10회를 기념하는 올해 전주영화제는 상영작 편수도 늘었다. 세계 42개국에서 출품된 200편의 장ㆍ단편 영화를 선보이게 됐다. 200편 가운데 프리미어 작품이 88편(44%)으로 영화제 역대 최다인 점이 눈에 띈다. 이중 장편 프리미어가 54편(월드 14편, 인터내셔널 1편, 아시안 39편), 단편은 34편(월드 12편, 인터내셔널 2편, 아시안 20편)이다.

해마다 전주를 찾으며 영화제만의 특색과 나름의 향유 노하우를 습득해온 베테랑들은 프로그래머가 내세우는 수작들을 자신있게 뽑아낸다. 하지만 영화제를 처음 찾은 초보 관객들은 선뜻 어떤 작품을 봐야 할지 판단이 안 설 수 있다. 이런 관객들은 그동안 자신이 접해보지 못했던 형식의 영화나 프로그래머가 ‘강추’하는 리스트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

정수완ㆍ유운성ㆍ조지훈 프로그래머는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을 위해 추천작 10편을 선정했다. ‘JIFF가 발견한 감독열전’ 상영작인 ‘철서구’를 비롯해, ‘킬’, ‘안나와의 나흘 밤’, ‘파르케 비아’, ‘굿바이 솔로’, ‘테라 마드레’, ‘너 없인 살 수 없어’, ‘악의 화신’, ‘비르와 자라’, ‘질주’가 그들의 선택이다.

500분 내외의 러닝타임만으로 초보 씨네필들의 기를 죽이는 작품들도 눈에 띈다. 필리핀의 오늘과 인간의 운명을 그린 480분짜리 영화 ‘멜랑콜리아’는 하루의 3분의 1을 극장에서 보내야 엔딩 타이틀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프로그래머들이 추천한 ‘철서구’는 한 술 더 떠 551분짜리 영화. 무려 9시간을 훌쩍 넘기는 러닝타임은 그 자체로 열혈 영화팬의 도전의욕을 불태우게 한다.

작년 벨라 타르 회고전에서도 러닝타임 435분의 ‘사탄 탱고’가 예상 외의 호응을 얻어 이번 두 작품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반대로 허무할 정도로 짧은 영화도 있다. 누벨 바그를 대표하는 장 뤽 고다르의 단편영화 ‘파국’은 러닝타임이 단 1분이다. 유운성 프로그래머는 “평소에 보기 어려운 작품들인 만큼, 소수의 매니아만 들어온다고 해도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전주영화제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이번 영화제를 찾는 영화 관계자들은 영화축제로서의 분위기와 맛좋은 음식이 많아서 좋다(?)는 면에서 전주영화제에 후한 점수를 줬다. 개인적으로 부산영화제를 더 선호한다는 김시무 평론가는 “전주는 부산에 비해 극장가의 집중이 잘 되어 있어 보다 아기자기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장점”이라며 전주영화제만의 특색을 설명한다.

한편 남다은 평론가는 “부산영화제는 규모가 너무 커져서 마치 산업박람회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며 전주영화제의 손을 올려줬다. 이어 그는 “전주영화제는 지역과 조화도 잘 이루어져 있고 여전히 영화축제다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좋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보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이 함께 하는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는 30일 오후 7시 전북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서 막을 열고, 5월 8일까지 그 축제를 이어간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