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부터 시작되었던 작가의 ‘곡식’ 작업은 이후에 ‘팥’으로 응축되고 나서 더욱 확장된 모양새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00년 개인전 이후 9년 만에 선보이는 ‘붉은 팥’ 작품 시리즈. 여성성을 근간으로 하는 작가의 일관된 의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매일을 한 알씩 작은 씨앗들을 차곡차곡 쌓아 그린 ‘팥’ 작업은 십여 년간 작가에게 일상과 다름없이 반복되어 온 작업. 일상의 공간과 사물을 숙주로 해 기이한 상상력과 그로테스크함을 불러일으켰던 작가의 ‘팥’ 작업은 근작에서 일상적 경계로부터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펼쳐지며 변형된 모습을 보인다.

구체적인 형상으로 고정되지 않은 채 쌓이고, 터져 나오며, 흐르는 팥들의 군집은 일상 속 이미지들을 은유적으로 접근하게 하며 상상의 여지를 남겨놓는다.

현실과 환상, 일상과 여행, 안과 밖, 여성과 남성, 생과 사 등 가부장제의 이분법적인 경계를 무너뜨리듯 쏟아져 나오던 팥들이 이제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양새로부터 경계선을 지나 어디서나 흐르며 삶의 다양한 이야기들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생명체로서의 씨앗인 ‘붉은 팥’을 통해 작가는 수많은 경계를 가로지르며 고착될 수 없는 욕망을 유동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갤러리스케이프에서 5월 2일까지. 02)747-4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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