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휴무 시간대 등 이용한 틈새 공연 새 관객층 유혹

1-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에서 열린 아침음악나들이1 - 재즈와 대중의 만남, 열정의 디바 윤희정
2-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에서 열린 아침음악나들이
3-모닝콘서트 - 김기철 색소포니스트

공연계가 기존의 공연 양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틈새시장을 본격적으로 찾아나서고 있다. 그간 친대중적인 요소를 강화하며 콘텐츠 측면에서 변화를 꾀해왔던 공연 형태는 이제 기존의 공연시간표에서도 잠재된 관객층을 찾아내려 애쓰고 있다.

주부 관객을 위한 아침음악회 활성화

고양시의 문화 중심으로 자리매김한 고양아람누리와 고양어울림누리는 각각의 특성과 시민들의 여건에 맞는 공연들을 기획해 지역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주부층이 많고 교육에 관심이 많은 대표적인 신도시인 고양시의 특성을 고려해 두 극장은 아침시간대를 이용한 공연을 기획해 히트상품으로 만들어냈다. 특히 그동안 음악공연에 많은 관심을 보여온 고양시 관객들의 취향을 고려해 편성된 각종 음악회는 매번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사실 아침 공연은 이제 많은 공연장에서 접할 수 있는 콘셉트가 됐지만, 두 극장의 경우 참신한 레퍼토리와 감각적인 기획력으로 수도권 주민들에게 유달리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고양어울림누리의 ‘아침음악나들이’는 새로운 장르로 아침형 음악공연을 시도해왔다. 지난해 5월에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김광민의 연주회를 선보였고, 그 다음 달에는 첼리스트 송영훈과 일본의 탱고 전문그룹 쿠아토르시엔토스의 무대를 함께 마련해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환호를 받은 바 있다.

고양아람누리의 ‘마티네 콘서트’는 고양시 주부라면 한 번쯤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머스트 해브 must-have’ 공연으로 이미 자리잡았다. 지난 2월부터 10월까지 짝수 달 마지막 주 목요일 오전 11시라는 고정 시간대를 설정해놓은 마티네 콘서트는 멘델스존, 베토벤과 브람스, 슈베르트, 아바, 라흐마니노프 등 클래식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대중적인 키워드로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아침음악나들이와 마티네 콘서트는 지난해 평균 관객점유율 90%에 유료관객율 75%를 차지하는 등 서울 소재 공연장의 음악회에서도 얻기 힘든 높은 판매율을 보였다. 두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고양문화재단 측은 주부, 가족, 학생에게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저렴한 가격대(1만5천 원), 시간대와 시기를 맞춘 공연기획, 눈높이의 적절한 설정, 관객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공연내용을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런치석, 브런치 패키지로 맛과 멋을 함께

의정부 예술의 전당이 2007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모닝콘서트’는 ‘아침공연’이라는 콘셉트를 살짝 변주한 형태를 선보이고 있다. 바쁜 가사 활동으로 문화생활을 향유하기 힘든 주부들이 타깃 관객층이라는 점은 비슷하다.

모닝콘서트의 특화된 점은 ‘런치석’의 운영.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연주자들과 함께 예술의 전당 지하에 있는 이태리풍의 레스토랑에서 커피와 퓨전 메뉴가 곁들여진 식사를 하며 문화예술에 대한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소홍삼 공연기획부장은 모닝콘서트의 성공요인을 “형식적인 음악회가 아닌 음악 자체에 대한 친근감을 높인 데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감상에 그치지 않고 연주자들과 함께 삶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음악에 대한 품격있는 향유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가곡이나 오페라, 재즈, 국악 등 지난해보다 더 다양해진 장르와 꽃별, 양성원, 엄정행, 박종훈 등 유명 아티스트를 섭외해 호기심을 일으킨 것도 주효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각종 브런치 공연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최근 한 박물관에서도 새로운 브런치 공연이 시작돼 이목을 끌었다. 지난 4월 한 달간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이 메인 오디토리움에서 문화예술과 자연이 만나는 차별화된 브런치 공연을 진행한 것.

박물관 근처의 공원과 호수를 십분 활용한 산책코스를 내세운 이번 기획은 연극배우 박정자의 클래식 모놀로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첫 테이프를 끊어 가능성을 시험했다. 박정자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와 클래식 연주자들이 함께 출연해 브람스 음악과 내레이션이 어우러지는 크로스오버 공연으로 호평을 받았다.

5월부터 뒤를 이은 공연은 국립발레단의 간판 발레리나를 내세웠다. 바로 ‘김주원이 들려주는 발레이야기’가 그것이다. ‘해설이 있는 발레’와 비슷한 버전인 이 공연은 프리마돈나 김주원이 발레가 아닌 해설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공연. 세 가지 프로그램 안에 다양한 로맨틱 발레와 클래식 발레 등 다양한 작품들이 있어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장점을 갖췄다.

(좌)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의 브런치 공연-김주원이 들려주는 발레이야기

오전에도, 밤 늦게도 볼 수 있는 연극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극장 문을 여는 영화와 달리 연극은 그동안 평일 늦은 오후나 주말 시간대에 공연 일정이 집중되어 있었다. 영화에 비해 관객층의 저변이 넓지 못한 만큼 여유가 있는 시간대에 일정이 맞추어진 까닭이다.

올해 시작된 의정부 예술의 전당의 ‘모닝연극’은 배우와 관객들이 각각 새로운 시간대에서 새로운 기분으로 연극을 공유할 수 있는 공연이다.

오전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주 관객층은 당연히 직장을 다니지 않는 주부층. 의정부 예술의 전당은 지난해 관객들의 성향을 분석한 결과, 관람 태도나 공연에 대한 반응이 가장 좋고 다양한 장르의 공연관람을 원하는 계층이 주부 관객들이라고 판단해 이 같은 기획공연을 시작했다.

가족과 집안일에서 벗어나 문화생활을 누리고 싶지만 저녁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주부들에게 오전이야말로 자기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

공연기획부의 윤송이 씨는 “‘모닝연극’ 프로그램을 통해 주부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공공극장이 보다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모닝연극’은 이제까지 대부분의 아침공연이 대개 클래식 연주 음악회에 한정됐던 만큼 장르의 다양화를 위한 단초가 될 것으로도 풀이되고 있다.

한편 영화처럼 심야에도 공연하는 연극도 등장하고 있다. 상명아트홀과 코엑스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는 평일 저녁 공연 시작 시간이 8시다. 공연이 끝나면 10시가 넘어간다. 늦은 시간대에도 연극을 보고 싶은 관객이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스케줄이다.

아리랑아트홀에서 올려진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는 연극계의 휴무일인 월요일에도 공연을 올린다. 월요일은 배우들이 쉬고 싶은 날이지, 관객들이 연극을 안 보고 싶은 날은 아니라는 점에 착안했기 때문이다.

공연예술 관계자들은 이 같은 공연계의 새로운 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막연하게 기존 공연 행태를 답습하며 새로운 관객층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모습에서 탈피해 자연스럽게 전문화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현재 주 타깃층이 주부층에만 한정된 것도 현재 틈새 공략 공연들의 한계로 지적된다.

이들은 불황 타개를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결국 기회를 창출하고 있듯, 보다 다양한 관객층의 개발과 콘셉트의 연구가 수반될 때 공연계의 저변 확대가 이루어진다고 조언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