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 진·파워 재킷… 환골탈태해 다시 온 80년대 패션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은 지겹도록 잘 들어 맞는다. 그것은 보통 한 명의 천재로부터 시작해 미디어를 거쳐 대중의 힘을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어떤 것이 유행할 지는 그 천재가 어디에 꽂혔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신기하게도 모든 유행은 저희들끼리 차례를 정해 줄이라도 서는 것 마냥 10년이라는 주기를 거의 정확하게 지키고 있다.

유행이 지나간 것들은 간사한 사람들의 눈에 의해 심하게 멸시를 당한다. 유행이 지난 1~2년 후가 가장 그 정도가 심해 매몰차게 옷장에서 추방 당하고, 5~6년이 지나면 아예 입은 적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머리 속에서 지워졌다가, 7~8년차에 접어 들면 콩트에 등장해 개그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물론 그 개그를 한 사람이나 웃은 사람이나 그 옷이 1~2년 후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서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른다.

스노우 진이 웃겨? 아직도?

스노우 진은 유난히 오랫동안 웃음 거리가 돼 왔다. ‘돌청’이라는 정겨운 애칭을 가진 이 바지는 스톤 워싱을 강하게 해 얼룩덜룩한 얼굴을 하고 80년대 글램록 스타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데이빗 보위나 마돈나는 어깨에 널판지를 넣은 것처럼 거대한 실루엣의 파워 재킷에 스노우 진을 함께 입었다.

신디 로퍼는 경박하게 부풀린 빨간 머리가 한층 경박해 보이는 헤어 밴드를 했고, 나인하프위크의 킴 베이싱어는 전기 콘센트에 젓가락을 꽂은 것처럼 꼬슬꼬슬한 머리에 레깅스와 파워 재킷을 매치했다.

유난히 하드 코어한 트렌드가 넘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더욱 다시 돌아올까 하는 의구심이 컸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템들은 받았던 사랑과 동일한 강도의 비웃음을 받게 마련이니까. 사람들은 개그맨들이 입은 스노우 진을 보며 언제 우리가 저런 걸 사랑한 적이 있었냐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해 7월 ‘무한도전’에서 가수 전진이 위 아래로 스노우 진을 입고 등장해 사람들을 웃겼으니 그것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그리고 두 달 뒤, 9월 파리 패션 위크에서는 발망이 스노우 진을 내놓았다. 전 세계가 극찬했고 이듬해 열린 춘하 컬렉션에서는 수많은 패션 하우스가 그 트렌드에 기꺼이 동참했다. 패션 미디어들은 지난해 겨울과 올해 봄 동안 어떻게 하면 이 새로운 유행을 소개할 것인가를 두고 머리를 싸맸다.

그리고 결국에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유행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조금 더디기는 했지만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 잡을 만큼 멋진 모습으로.

날렵하게 돌아온 ‘돌청’과 ‘뽕 재킷’

“이전에는 밑 위 길이가 길어서 허리를 다 덮는 하이 웨이스트(high-waist) 형태였죠. 일명 디스코 바지라고 실루엣도 넉넉했고요. 지금은 아주 모던하게 스키니 형태로 나왔어요. 워싱도 일반적인 스톤 워싱이 아니라 마치 구름이 그려진 것처럼 명암 대비가 확실한 것들이 많아요.” 스타일리스트 김성일 씨의 말이다.

스노우 진과 짝을 이루던 파워 재킷도 다시 나왔다. 당시에는 각진 패드를 넣어 자기 어깨보다 1인치 가량 더 넓게 보이는 게 보통이었다. 넓은 어깨가 만들어낸 과장된 라인은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전체적으로 풍덩한 실루엣을 연출했다. 2009년의 파워 재킷은 어깨만 톡 튀어 나오고 팔부터는 다시 좁아지는 형태로 가슴과 허리, 팔이 날렵하게 빠졌다.

1-발망의 스노우 진
2-나인식스뉴욕의 스노우 진, 재킷
3-니나리찌 09 F/W 컬렉션
4-타임의 파워 재킷

길이는 짤막해 벨트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바라 부이는 어깨를 강조한 롱 베스트를 내놓기도 했지만 몸을 따라 흐르는 날씬한 실루엣은 마찬가지다. 글래머러스한 80년대 패션이 돌아 왔지만 여전히 다이어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스키니한 스노우 진을 입을 때는 지금 한창 유행하고 있는 킬 힐을 함께 신으면 멋지다. 전문가들은 크리스털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거나 여러 개의 스트랩으로 이루어진 글래디에이터 샌들과 함께 신으라고 말한다.

파워 재킷은 내추럴한 맛이 부족한 만큼 아무때나 걸쳐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다. 하지만 수트 차림에만 활용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최대한 자주 활용하고 싶으면 안에 블라우스 대신 헐렁한 티셔츠를 받쳐 입어 단단한 느낌을 한 풀 꺾어준다.

난 그런 옷 입은 적 없다구요?

80년대는 황금의 시기로, 종종 디자이너들이 들러 영감을 얻어가는 샘이지만 이번처럼 당시 아이템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불황에 척박해진 마음이 그 시기를 향한 향수로 표현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굳이 이유를 분석할 필요가 있을까? 패션 주기의 법칙만 떠올려도 스노우 진의 등장에는 당위성이 있다. 이번에는 그의 차례였을 뿐이다.

다음에는 어떤 유행이 돌아올까? 지금 가장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패션을 떠올려 보라. 9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회색과 검은색의 투 톤 통 굽 구두? 드라마 ‘가을 동화’에서 송혜교가 입었던 체크 무늬 롱 스커트? 아니면 시폰 망사가 살짝살짝 보여 공주 치마로 불렸던 샤 스커트는 어떤가?

난 그런 옷 입은 적 없다고 발뺌하고 싶어지는 촌스러운 그 옷이 바로 머지 않은 미래의 핫 트렌드다.

* 도움말: 스타일리스트 김성일, 이미숙, 손예진, 김민희, 엄정화 등 다수 연예인 스타일링, 최근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서 김남주 스타일리스트

* 사진 출처: style.com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