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강세 타고 대부분 쇼핑 목적… 음식·자연 테마 관광상품 늘려야

4월25일부터 5월5일까지 이어지는 일본에서 가장 긴 연휴기간인 골든위크를 맞아 국내 항공업계와 상점, 호텔 등이 일본인 손님 맞이로 분주다. 올해는 특히, 엔화 강세로 3년 만에 일본의 해외여행자 수가 대폭 증가한 데다, 연휴기간에 일본을 떠나는 해외여행객 50만 명 중 약 10만 명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럽행(7만 여명)과 오세아니아행(1만8천 여명) 여행객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로, 한국이 가장 인기 있는 해외여행지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일본 최대 여행사인 JTB가 전국 1,200명의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골든위크 여행동향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골든위크 기간 중 일본인 해외여행자 수 증가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번 황금연휴 기간 중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4%나 늘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러한 일본 관광객 급증은 환율 가치에 따른 특수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엔저가 찾아와도 일본 관광객 유치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엔저 오면 일본 관광객 특수 사라질까

서울 명동 거리와 동대문 쇼핑상가 등 쇼핑 중심가는 요즘 가는 곳마다 일본인 여행객들로 초만원을 이룬다. 길거리 상점에서부터 대형 백화점까지, 일본인이 많이 모이는 곳의 유통업체들은 일본인 관광객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다. 명동의 상점들은 문 앞에 일본어 안내 간판을 내걸고, 점원이 나와 일본 말로 호객행위를 하는 곳도 많다.

롯데백화점은 최근 일본어 가이드북을 별도로 만들어 비치해 두는가 하면,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식품매장 천장에 일본어로 안내 부착물을 붙여 놓고, 일본어 통역 요원들을 배치시켜 쇼핑 편의를 최대한 돕고 있다. 또, 일본 고객들에게 인기 있는 김치와 김, 젓갈류를 10~30% 할인해주는 행사도 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조선호텔과 그랜드하얏트서울 등 특급호텔과 제휴해 투숙객들에게 김과 김치, 화장품의 할인권을 제공한다. 연간 우리나라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 가운데 절반 가량이 다녀간다는 골든위크 기간 중 가장 활기를 띠는 것은 관광명소가 아닌 유통업계다.

롯데 JTB 일본 인바운드 여행담당 이기현 매니저는 "이 기간 중 한국을 찾는 일본인 대다수가 쇼핑을 목적으로 온다"며 "올해는 원화 가치 하락세와 맞물려 우리나라로 더 많은 여행객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관광공사의 통계자료를 보면, 엔화 가치가 하락했던 지난 95년과 2005년, 2006년과 2007년 골든위크 기간에는 국내 일본 관광객 수가 예년에 비해 크게 줄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좌) 11일 서울 명동을 찾은 관광객들이 봄냄새가 물씬 풍기는 옷을 입은 마네킹 앞에서 포즈를 흉내 내며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우) 다음달 10일까지 보름 동안 황금연휴를 맞아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들이 서울 창덕궁을 관람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일본팀 김태윤 차장은 "중국이나 다른 동남아시아의 통화가치는 우리나라처럼 폭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물건을 사는 게 이득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물건을 사면 일본에서 보다 30% 정도 싸다"며 "그런데 환율이 하락하면, 이 같은 이점이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보다 물가가 싼 중국이나 태국으로 일본 관광객을 뺏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과 명동 거리, 동대문 상가 등에서 마주친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이번 연휴 때 한국을 찾은 이유를 물었다. 직장에 다닌다는 에미코(30?여) 씨는 "명품 핸드백과 화장품을 사기 위해 왔다"고 대답했다. 대학생 마사시(22?남) 군도 "핸드폰과 옷을 살 계획으로 왔다"고 했다.

이들에게 한국에서 쇼핑하면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묻자, 이구동성 “야쓰이(싸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나라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 중 적어도 절반 이상은 쇼핑을 목적으로 방문한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에서 쇼핑을 즐기는 주된 이유는 싸기 때문이고, 엔화 가치 하락 시엔 이마저도 효과가 사라진다는 게 대다수 여행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번 골든위크 특수는 그저 한철 호황에 그칠까.

음식·자연 테마 관광상품 개발로 포스트 엔고 시대 대비

하지만 이번 일본 관광객 증가는 우리나라의 관광 콘텐츠의 우수성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어 향후 지속적인 일본 관광객 유치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얼마 전 국내 한 방송사에서는 한국 관광공사 도쿄 지사장의 인터뷰를 인용해 우리나라가 일본인에게 인기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관광 콘텐츠가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엔화 강세 현상이 주춤하고 있지만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은 더욱 늘고 있고, 여러 번 한국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는 것을 그러한 주장의 근거로 들고 있다.

체스투어즈 김경희 씨는 "2~3년 전부터 일본인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석굴암과 불국사,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등 세계자연문화유산 방문여행이 큰 호응을 얻고 있고, 서울에 집중됐던 여행객들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또, 난타와 점프 등 국내 공연문화도 일본 관광객 유치에 분명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여행 전문가들은 덧붙인다.

무엇보다 한류 바람이 일본 중년층의 한국 여행 열풍을 일으킨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한류열풍 이후 일본 고도성장의 주역으로 정신 없이 일만 하며 살아온 일본 중년층에게 한국은 이야기가 있는 나라, 그래서 메마른 젊은 날을 보상 받을 수 있는 낭만적인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게 여행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음식도 일본 관광객 유치에 한몫을 하고 있다. 여행사 HIS코리아 일본팀 관계자는 "매운 것만 제외하면 한식은 일본인들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라며 "최근 들어 비빔?Q을 먹기 위해 전주를 여행하거나, 부대찌개를 맛보기 위해 의정부로 내려가는 일본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 일본팀 김태윤 차장은 이러한 일본인 관광 추세를 참고로 환율가치와 상관 없이 일본인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일본인은 세계 최고의 미각을 자랑하는 국민이다. 이들은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어디든지 찾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음식을 매우 즐기는 편이지만 일반 한식당의 위생상태와 서비스 질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남은 반찬의 재활용이나 뜨거운 국물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기, 종업원의 불친절 같은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의 음식기행 상품도 더 많이 개발하고, 교통의 편의성도 제고해야 한다.

둘째, 국내 여행 희망도가 높은 일본의 단카이 세대(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나 현재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세대)가 한국여행의 만족 요인으로 요리(51.6%) 다음으로 자연(37.3%)을 꼽고 있다. 단카이 세대는 약 7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은퇴 후 퇴직금과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여행을 즐기는 이들을 겨냥한 여행상품 개발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본인 여행객들은 서울에 집중적으로 머무르고 있어, 자연과 연계한 관광품 개발에 더 힘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