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파워갤러리] (5) 동산방 화랑2002 '완당과 완당바람 전' 40여 년 쌓아온 내공 힘 보여줘박우홍 대표 "한 작가의 걸작부터 태작까지 가릴 줄 알아야 진정한 아트딜러"

東山 박주환(81) 전 동산방 화랑 대표는 화랑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1976년 창립한 한국화랑협회의 초대 이사진이자 두 차례의 회장직 역임,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이 미술 컬렉션을 시작한 계기가 된 일화라던가, 문화예술계에 공헌한 이들에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여하는 옥관문화훈장을 화상으로서 처음 수상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이를 통해 화랑의 위상을 높이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화랑계의 존경심은 묵묵하고 한결같은 헌신에서 비롯된다.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극도로 꺼리는 그이지만 ‘화랑의 소임은 좋은 화가의 좋은 작품을 애호가에게 선보이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종종 지인들의 글을 통해 전해진다. 아버지를 이어 2대째 동산방 화랑을 이끌어 가는 박우홍(57) 대표가 인터뷰를 적잖이 망설인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없지 않은 듯했다. 집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의 언행은 당당하면서도 시종일관 조심스러웠던 까닭이다.

1967년 표구사로 문을 연 동산방은 1974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동산방 화랑이 되었다. 개관이후 줄곧 이어온 고서화와 한국화 기획전시는 동산방 화랑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1976년 초에 있었던 ‘동양화 중견작가 21인 초대전’이나 이듬해 있던 ‘한국 동양화가 30인 초대전’ 등은 당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얻었던 전시였다. 민경갑, 이종상, 송수남 등 당시 30~40대 초반의 작가들은 이젠 70대의 거장이 되어 있다. 이들 전시는 모두 아버지인 박주환 전 대표의 기획이었다.

바통을 이어 받은 아들은 2002년 학고재와 함께 ‘완당과 완당바람 전-추사 김정희와 그의 친구들’을 4개월에 걸쳐 서울, 광주, 대구, 제주에서 순회 전시를 열었다. 2005년에는 한국적 색채가 짙게 밴 ‘한국민화전’을, 2006년에는 임전 조정규, 그의 손자 소림 조석진, 소림의 외손자 소정 변관식으로 이어지는 ‘전통회화 명문가 3인 전’도 기억할 만한 전시였다.

특히, ‘완당과 완당바람 전’은 동산방 화랑이 40여년을 차곡차곡 쌓아온 세월 속에서 빛을 발한 전시였다. 박우홍 대표는 아버지의 실력으로 연 전시라고 표현했다. 그의 미술인생이 아버지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버님께 인간적인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버지에 대해 많은 분들이 ‘바른 사람’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이 길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그 덕에 지금껏 제가 그 후광을 입는 것 같네요.” 그 덕에 동시에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한단다.

경영학을 전공한 박 대표가 미술계에 몸을 담기로 한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군 제대 후인 77년 초부터 화랑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그에겐 호된 훈련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미술계 어른들과의 교류와 조언이 양분이 되어주었다.

“초창기 화랑협회는 회장 집을 사무실로 이용했어요. 덕분에 저희 집은 화랑계 어른들의 또 하나의 일터이자 사랑방이었습니다. 명동화랑의 고 김문호 사장님이나 시인이자 화가인 이재하 선생님을 자주 뵈었죠. 그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서울에서 하는 전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일 년만 보면 나랑 얘기할 수 있을 거다’라구요. 서서히 눈이 떠지더군요.”

많이 보는 동시에 의식적으로 작품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는 한 작가의 작품을 이야기 할 때 걸작부터 태작까지 급수를 따질 수 있어야 진정한 아트딜러라고 말한다. 현재 3세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아들(홍익대 예술학과 대학원)에게 그가 강조하는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 아무리 이론으로 무장해도 결국 ‘그림을 많이 본 사람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

미술판에서 30년 넘는 세월을 치열하게 담금질한 덕에 그는 2003년부터 감정연구소 감정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지속된 위작시비로 미술계 소식이 가십성으로 채워지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는 그는 이를 위해 화랑이 ‘정도(正道)’를 걸을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또한 작가의 발굴에 앞서 작가의 예술세계를 소개하고 재조명하는 것이 화랑의 몫이라는 그는 진득하게 한 작가의 시대별 작품을 소장함으로써 단단한 미술계 유통의 지반을 다져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에게 지나가듯 좋아하는 작품을 물었다. 어릴 때부터 귀한 고서화를 자연스럽게 접해온 그는 겸재 정선의 ‘실경’을 꼽았다. 전시회 도록을 펼치더니 손끝으로 따라가며 말을 잇는다. “여기가 북악산이고 여기가 홍지문이에요. 대홍수로 소실된 후에 이 작품이 복원할 때 참고가 되기도 했습니다. 북악산 자락, 여기 세검정으로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사를 왔거든요. 내가 살던 곳이 시간을 뛰어넘어 이 그림 속에 담겨 있지요.” 모처럼 그의 얼굴이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

동산방 화랑


2대째 운영되고 있는 유서 깊은 화랑으로 1974년 종로구 견지동에 개관했다. 인사동의 터줏대감으로 줄곧 한국적인 미감을 담은 그림을 기획 전시해오며 고서화를 비롯해 근현대 미술과 중국미술까지도 포용하고 있다.

시대의 주요 작가는 물론 역량 있는 젊은 작가의 작업을 알려왔다. '한국화 전문화랑'이라는 독자적인 색깔을 꾸준히 유지해오는 보기 드문 화랑이기도 하다.

박우홍 대표는 1977년부터 전시 기획에 참여해오다 2000년 동산방 화랑의 대표가 되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