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숙 사이 두 국수집 배경 '난타'와 '점프' 혼합된 '애니비트' 선보여

두드리고 때리고 공중곡예를 하고 발차기가 교차된다. 공연 시간 내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배우들의 힘찬 동작과, 도구와 도구가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이들이 뿜어내는 무언의 에너지들이다.

넌버벌 퍼포먼스는 이제 한국에서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됐다. 한류 상품이 된 ‘난타’와 ‘점프’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히트상품이 됐고, 실제로도 많은 관광객들이 이들 작품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넌버벌 퍼포먼스가 오랫동안 인기를 끄는 원인으로 기존의 공연이 극복할 수 없는 언어적 난점을 해결하고 외국과의 콘텐츠 교류에 적합하다는 점을 꼽는다. 공연시장에서의 시험대라고 할 수 있는 애딘버러 페스티벌에서 상업성이 인정받으면 그와 동시에 히트상품으로서의 생명력도 자동으로 얻게 된다는 공식도 여전하다.

그렇다고 진작에 공연계의 블루오션이 된 이들 넌버벌 퍼포먼스 작품들이 진화를 멈춘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소재를 얻어 부엌과 식기들로 타악 연주를 한다는 콘셉트는 ‘포스트 난타’의 무궁무진한 변주를 가능하게 한다. 무술이라는 콘셉트를 중심으로 유머와 아크로바틱을 버무린 ‘점프’ 역시 기본 드라마의 설정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명동아트센터에서는 얼마 전까지 이 두 가지 버전이 적절히 혼합된 넌버벌 퍼포먼스 공연이 이루어졌다. 앙숙 사이인 두 국수집을 배경으로 하는 코믹 무술 퍼포먼스 ‘애니비트’(연출 정태영)가 그것이다.

‘점프’가 보여줬던 화려하고 다양한 무술의 경연이 코믹한 드라마 안에서 더욱 배가되어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연기와 무술 실력을 겸비한 고수들로 구성된 배우들은 안전장치도 없이 태권도, 우슈, 합기도, 봉술, 쌍절곤, 검 등을 활용한 각종 기예로 박진감 넘치는 마샬아츠를 보여준다.

한편 ‘난타’의 무대가 부엌이었다면 ‘애니비트’는 그 장소를 국수집으로 옮겨왔다. 식칼과 도마, 그리고 칼질에 의해 난도질당하는 채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경쾌함(!)은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인들에게도 공감 가능한 흥겨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애니비트’에서는 이러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 국수를 끌어왔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누들로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수는 한국인들은 물론 세계인들에게도 익숙한 음식. 그래서 ‘애니비트’는 ‘난타’가 가진 한국적이며 세계적인 정서를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기존의 요소만을 차용해서는 참신함을 느끼지 못할 터. 이에 ‘애니비트’가 전통과 현대의 디지로그적 결합이다. 이 작품에서는 주술적인 신앙을 기원했던 사람 모형을 가리키는 ‘꼭두’를 3D 영상에 담아 무대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말풍선과 같은 만화적 시도도 신선하다. 말풍선은 극 전개의 진행을 돕는 역할도 하며 영상과 함께 ‘애니비트’를 새롭게 보이는 역할을 한다.

특히 최근 현재 공연장 문화가 대극장에서 중소극장으로 바뀌고 기존 공연문화의 중심인 대학로를 벗어나 여러 지역에 확산되면서 관광객의 접근성이 좋은 명동 같은 곳이 새로운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명동은 삼일로 창고극장과 명동예술극장 등 잇따라 공연장을 오픈하면서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순조롭게 모으고 있다. 명동아트센터의 세 번째 작품인 ‘애니비트’ 역시 지난 4월부터 5월 말까지 객석의 20~30%를 외국인들이 차지하는 등 효과적인 지역 특수를 누리고 있다.

명동아트센터 권윤숙 공연팀장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명동의 특성을 살려 넌버벌 퍼포먼스 전용극장을 콘셉트로 삼았다”라고 말하며 “오는 6월 18일부터는 마샬아츠 퍼포먼스 ‘카르마’로 관광객들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애니비트’의 뒤를 이를 넌버벌 퍼포먼스 ‘카르마’는 무술에 무용과 그림을 더한 특색 있는 작품. 특히 동양화가의 사군자 시연이 접목된 콘셉트는 ‘신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음모, 부활’이라는 판타지적 스토리까지 가미되어 새로운 스타일의 넌버벌 퍼포먼스를 선보이게 될 예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상적 소재와 무술이라는 기존의 성공 콘텐츠를 재활용하는 경향은 여전하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기존 작품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해서 블루오션을 개발하지 않고 레드오션에만 집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현재 넌버벌 퍼포먼스의 창작 경향에 대해 “소재에 대한 새로운 시도는 있지만 형식에 대한 도전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진단하며 “한국형 넌버벌 퍼포먼스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델라구아다’가 암벽 등반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퍼포먼스의 혁신을 이뤄낸 것처럼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