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파워갤러리] (6) 가람화랑'근대미술 명품Ⅱ' 1세대 서양화가 8인의 작품 30여 점 전시송향선 대표 "이중섭·박수근 사건부터 지금까지 힘들지만 보람있어요"

차분한 회색빛의 기와를 머리에 이었다. 세월의 결마저 느껴지는 나무 문이 열리면 하얀 캔버스 같은 화랑이 모습을 드러낸다. 번화한 인사동에서 이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예스러운 정취를 품어내고 있는 이곳은 올해로 33살이 된 가람화랑이다. 경인미술관, 민가다헌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그 멋스러운 어울림에 한 번 더 눈길이 가는 외관이다.

두 평짜리에서 시작해 세 번째로 이사를 와 정착한 이곳에서만 20여년이 되었다. 처음엔 빗물이 세어 들어와 현대식 건물로 재건축하려고 했지만 설치작가 최정화 씨의 한 달간의 만류로 남아있게 되었다. 인테리어를 바꾸고 수리를 하면서 건물 2~3층을 짓는 비용이 들어갔지만 이제는 적잖은 이들이 탐내는 인사동의 명소가 되기도 했다.

가람화랑의 송향선(63) 대표는 화가를 꿈꾸던 동양화 전공생이었다. 미술계의 전반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큐레이터 경험은 화랑을 그녀 평생의 무대로 만들어 주었다. 1974년, 지금은 없는 문헌화랑에서의 큐레이터 경력까지 더하면 송 대표가 인사동을 터전으로 살아온 지도 36년을 헤아린다. 그 동안 한국의 근대미술 작가들은 그녀와 함께 해왔다.

“할아버지가 있고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의 미술계 시장을 보면 아들밖에 없는 것 같아요. 고희동 선생이 일본으로 서양화를 배우러 가신 게 100년 전이에요. 그 뿌리를 세우고 싶었어요.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그것은 제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위작 논란과 더불어 천정부지로 솟은 가격으로 늘 이슈가 되는 박수근과 이중섭을 제외한 근대미술작가들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속에 걸렸다. 그래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기획전시가 ‘근대미술명품II’이다. 박수근을 비롯한 도상봉, 오지호, 장욱진, 박고석, 정규, 최재덕, 황염수 등 근대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1세대 서양화가 8인의 작품 3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 중에는 그녀가 문헌화랑 큐레이터 시절 기획했던 ‘박수근 10주기 전’에 전시되었던 작품도 있다. 이런 기획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에 이미 ‘근대미술명품I’을 열었지만 두 번째 전시를 열기까지 곡절이 많았다. 지난 6~7년 동안 감정협회의 감정위원장을 맡아오면서 여러 차례의 위작시비에 말려 미술 애호가들과 예술가들을 만나는 것보다 검찰과 언론매체에 오르내리는 일이 더 많았던 터다.

“2005년 이중섭, 박수근 사건부터 지금까지 계속 숨이 찼어요. 나중에 보람이 있을 거라는 말씀들을 하시지만 아직까진 버겁기만 하네요. 천 개를 잘해도 하나를 못하면 고소를 당하고 언론매체에 오르내리죠. 조선 욕이란 욕은 다 들어본 거 같아요.”

더욱 정확한 감정을 위해 명지대 대학원 감정학과를 ‘A학점’으로 마치고 동국대와 명지대 대학원에서 강의를 해왔다. 올해부터 감정위원장직을 후배에게 넘겨주면서 한 숨을 돌리고는 있지만 그 짐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한 듯했다. 교통비도 안 되는 감정비를 받으며 수많은 화살을 맞는 건,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제 서양화에서 만큼은 감정협회의 감정서가 있어야 매매가 가능한 정도의 권위를 인정 받게 되었지만 그간의 뼈아픈 고통의 결과였다.

“에너지를 지나치게 소모한 탓인지, 어느 순간 회의가 몰려왔어요.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2~3년 전부터 준비해온 전시가 바로 이번 전시지요. 이번 전시에는 팔릴 그림은 거의 없어요. 이번에 나온 빨래터(현재 위작 논란이 있는 빨래터와는 별개의 작품으로 박수근은 빨래터를 소재로 6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는 75만원에 소장자가 사갔던 작품인데, 지금은 6억 원 이상이 추정되지만 소장자는 이 그림을 팔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들 70년대에 그림을 저를 통해 구매하신 분들인데, 지금까지 가지고 계신걸 보면 그 분들의 그림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지요.”

‘절구질하는 여인’(1952)은 박수근 특유의 오돌도돌한 질감이 나타나기 시작한 작품이라는 데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한다. 월북 작가 최재덕의 작품도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몇몇을 제외한 대개의 근대미술작가와 직접 교류했던 송 대표에겐 그들이 가졌던 인문학적 교양이라던가, 범인들과는 다른 삶을 바라보는 시선, 그들과 피부를 맞대고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모두 추억과 삶 속에 녹아있다.

그 동안 어린이들에게 근대 화가들(박수근, 장욱진, 김환기, 천경자)의 삶과 그림을 쉽게 설명해주는 책을 네 권 펴내기도 했던 그녀는 이러한 작업들을 늘려갈 계획이다.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일들이 헛된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앞으로 할 일들이 좀 더 유의미하게 남을 수 있게 제가 미술계에서 터득한 모든 것을 후배들, 애호가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난 30여년의 세월보다 송향선 대표에게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앞으로 내딛는 걸음이 더 중요하고 각별한 이유이다.

가람화랑

1977년 인사동에 개관한 가람화랑은 1991년 현재 관훈동 한옥에 자리를 잡았다. 근대미술을 재조명하는 전시를 시작으로 꾸준히 기획전과 초대전을 개최해오고 있다.

근현대미술에서의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해왔으며 전문 컬렉터들뿐 아니라 초보컬렉터들도 어렵지 않게 미술을 접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다.

2000년 12월 '한국근대미술명품전I', 2002년 '박기원의 수평 전', 2004년 3월 '한국적 아름다움의 원형-박수근, 이중섭 전', 2006년 9월 '장영숙 전' 등이 대표적인 전시로 꼽힌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