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콜링' 전다양성과 실험 정신 YBAs 이후 세대 대표작가들 작품 소개

1-데이비드 바첼러,‘ Candella 12’
2-피터 맥도널드‘Suspects’
1-데이비드 바첼러,' Candella 12'
2-피터 맥도널드'Suspects'

제법 오랫동안 영국미술은 곧 YBAs(Young British Artists)로 통했다.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크리스 오필리, 마크 퀸 등을 위시한 이 젊은 작가군은 새로운 매체와 소재에 신선한 발상과 시각을 담은 작업들로 1990년대 세계미술계의 스타가 되었다.

YBAs의 활약으로 영국미술계는 보다 국제적인 양상으로 재편되었다. 세계미술계에서 영국미술의 위상이 높아졌고, 영국미술의 중심지인 런던에는 전 세계의 작가들이 몰려들었다. 역동성과 활기가 더해졌다. 조각가 나타니엘 라코베의 말마따나 런던은 “국제적 미술의 허브”가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영국미술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전시가 서울에서 열린다.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토탈미술관의 ‘런던 콜링 London Calling: Who Gets to Run the World’ 전이다.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큐레이터 유은복, 임정애가 기획했다. “YBAs 이후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을 통해 “영국미술의 전망”을 제시하려는 의도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영국미술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활동하며 전성기를 맞은 30대 중·후반의 작가들을 선별했다. 이들이 국제적인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며, 그것을 작업에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현재 영국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영국미술의 다양한 면면을 개괄한다. 피터 맥도널드의 회화 ‘Suspects’는 9.11 이후 영국사회에 팽배한 불안과 공포를 담아낸다. 공항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전면에 그려진 사람들은 총을 든 경비원들이다. 행인들은 위축된 것처럼 작게 그려져 있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단순한 형태는 이런 아이러니를 더욱 부각시킨다.

전쟁과 관련한 피오나 배너의 작업들도 소개된다. 그가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 것은 1997년 ‘The Nam’이라는 텍스트 작업을 통해서였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할리우드 영화 6편을 작가의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공격적인 대사와 내러티브 대신 아름다운 배경을 시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전쟁영화의 폭력성을 무화시켰다.

전쟁을 상징하는 전투기는 배너의 작업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런던 콜링’ 전에도 네온으로 만든 전투기 형상, 신문에서 스크랩한 전투기 사진을 이어 붙인 영상 작업 등이 전시된다. ‘Bird’는 폐기된 전투기인 재규어 파이터의 날개 부분을 재료로 한 설치 작품이다. 작가는 여기에 새를 소재로 한 시를 적어 넣었다. 전투기들의 이름이 새 이름을 따서 지어진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3-드라이든 구드윈‘Searching Damien’
4-필립 알렌,‘ Epecell'
3-드라이든 구드윈'Searching Damien'
4-필립 알렌,' Epecell'

이렇게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런던이라는 도시의 공간성을 반영하는 작가들도 있다. 집 모양의 구조물과 빛을 결합한 설치 작품 ‘Black Shed’를 선보인 나타니엘 라코베, 도시를 모티프로 기하학적 그래피티를 그리는 필립 알렌 등이 그 예이다. 데이비드 바첼러는 거리에서 주은 플라스틱 병들에 다양한 색과 빛을 입히고 샹들리에처럼 엮어낸 작품 ‘Candella 12’ 등을 선보인다.

영국미술의 ‘현대성’은 뉴미디어에 대한 관심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쪽 벽면에는 338개의 작은 드로잉이 담긴 액자와 아이포드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아이포드의 화면에서는 드로잉들이 재생되고 있다. 한 사람의 얼굴이 그려졌다가 지워지고 그려졌다가 지워진다. 드라이든 구드윈의 ‘Searching Damien’이다. 사람의 손길과 힘이 묻어나는 드로잉의 속성과, 드로잉들이 이어지는 ‘과정’이 부각되는 애니메이션의 속성은 ‘한 사람을 찾아 가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작품의 주제를 설명한다.

영국미술의 지형을 그려보는 이 전시의 의의는 이런 다양하고 새로운 작업들을 가능하게 한 기반을 들여다보는 데까지 나아간다. 임정애 큐레이터는 영국미술의 특징은 결국 “탄탄한 네트워크”라고 지적했다. 학계와 미술시장, 정부 정책과 미술관 등 미술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제도들이 ‘예술성’을 구현한다는 목적을 공유하고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YBAs 역시 이런 기반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들의 실험적인 작업을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인 것이 상업 갤러리와 컬렉터였다. 영국미술의 다양성을 지지하는 ‘터너 프라이즈’ 같은 국제적 수상 제도가 있었고, 영국정부도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런 “복합적이고 다양한 층위의 인프라”가 영국현대미술의 영향력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전시장 아래층 스크린에는 여러 여성들이 번갈아 똥을 싸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작가 마틴 크리드의 ‘Work No. 660’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매일 싸는 똥은 당신의 첫 번째 작품이다. 작업을 한다는 것은(중략) 당신으로부터 쏟아 내어지는 무언가다”라고 말했다. 결국 모든 사람은 ‘아티스트’라는 의미다. 영국미술계는 이런 작가를 환영한다. 마틴 크리드는 2001년 터너 프라이즈 수상자다.

전시는 7월26일까지 열린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