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파워갤러리] (9) 갤러리 포커스서울·파주 갤러리 포커스와 93 뮤지엄으로 트라이앵글 구성구삼본 대표 "요절한 천재 작가 '이인성전' 가장 기억에 남아"

2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갤러리 포커스는 특색있는 화랑으로 이름이 높다. 한국의 작고, 원로 작가와 더불어 베트남 작가의 작품, 그리고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인물화가 가장 많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 아케이드의 갤러리 포커스 서울, 헤이리의 갤러리 포커스와 함께 인물화 전문 미술관인 93뮤지엄으로 트라이앵글을 구성하고 있다. 구삼본 대표(54)가 주중에는 서울 삼성동에, 주말에는 파주 헤이리에 머무는 이유이다.

중고등학교 때 그림을 그렸지만 가정형편상 미대에 진학하지 못한 구 대표는 ROTC를 거쳐 직장생활을 한 후, 청담동에 처음 갤러리 포커스를 오픈했다. 학창 시절 미술반에서부터 꾸준히 교류해오던 이원희, 황호섭 화백들이 그에게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10년간 직장생활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1990년이었다.

갤러리 포커스에 정체성을 부여해준 베트남 화가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4년이 흐른 뒤였다. 베트남을 자주 다니던 일본의 화상을 따라나선 이후로 구 대표는 이제 1년에 열 차례 이상 베트남을 찾고 있다. 한국의 인사동과 닮은 미술 골동거리인 호치민 시의 돈코이 거리에서 처음으로 베트남의 고흐로 불리는 국민작가 부샹파이의 작품과 마주쳤던 것.

“보는 순간 드로잉 하나부터 대가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자유로운 표현이 아주 멋스러웠습니다.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하노이에 에꼴 드 보자르의 분교인 인도차이나 미술학교가 세워져서 서구유럽미술이 일찍이 전해졌지요. 그래서 수준도 무척 높았어요. 그 1회 졸업생 중 한 명이 부샹파이였죠. 그의 삶까지 알고 나면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어요.”

부샹파이 전시회를 위해 제작한 두꺼운 책은 부샹파이의 생애와 작품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구 대표는 그 책의 뒤 쪽을 펼쳐 부샹파이가 병원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드로잉으로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정치적인 그림을 그리라는 당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해 감옥살이까지 했던 그였지만 작고 8년 후에는 정부에서 훈장을 내렸을 정도.

그의 생애와 작품과 베트남 미술에 대해서는 지난 2월 EBS에서 ‘하노이, 천년의 붓’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적도 있다. 구 대표는 갤러리 포커스에서 1995년 부샹파이의 전시를 한 후 지속적으로 그를 비롯한 베트남 작가들의 전시를 열어오고 있다.

사립미술관 형태의 93뮤지엄은 화상이 아닌 순수한 컬렉터로서의 그의 취향을 볼 수 있다.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인물화 컬렉션은 어느새 1천 여 점을 헤아린다. 조선시대부터 컨템포러리까지 아우르고 있다.

“인물화에는 작가들의 실력이 잘 드러나 있어요. 요즘은 거래가 조금 있지만 90년대 초만해도 전혀 없었거든요. 대신 컬렉션 하지 않더라도 보고 싶어하는 장르였지요. 덕분에 전 저렴하게 컬렉션을 할 수 있었어요. 93뮤지엄에는 주로 조선시대 초상화와 고려청자가 많습니다.”

2004년에 개관한 580평 규모의 93뮤지엄에는 아트샵과 카페, 그리고 한옥 구삼재가 있다. 명륜동에서 옮겨온 90살 먹은 한옥은 93뮤지엄의 조선시대 작품들을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구 대표에게 베트남 작품과 인물화만이 전부는 아니다. 비율로 따지자면 갤러리 포커스의 80%는 한국의 작고 혹은 원로 작가들을 위주로 전시와 컬렉션이 이루어진다. 이우환, 김창열, 이대원, 김종학 등 대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작고한 손일봉 화백과 활발히 활동 중인 안창홍, 최쌍중, 성백주, 황용엽, 손장섭 화백 등의 작품은 구 대표가 개인적으로 다수 컬렉션을 해오고 있다.

그가 기억가는 가장 의미있는 전시는 요절한 천재 작가 ‘이인성 전’이다. 이 전시를 위해 개관을 6개월 가량 늦췄을 정도로 깊은 애정을 가진 전시이다. “18살에 창덕궁 상을 받은, 요즘으로 치면 국전의 대통령상을 받은 천재 작가죠. 6.25 발발 당시, 서른 여덟살의 나이로 경찰 총에 맞아서 목숨을 잃었지요. 요절을 하다보니 작품은 뛰어나지만 양이 많지 않아 전시가 쉽지 않았어요. 쟁쟁한 컬렉터들 찾아다니면서 작품을 빌려달라고 설득을 했지요.”

좀처럼 볼 수 없는 전시에 미술계 인사들이 몰렸고 개관전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덕분에 낯선 미술계의 주요 컬렉터들과 화랑 대표들과의 교류를 위한 좋은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좋은 작가들을 만나고 좋은 컬렉터들과 교류하는 직업이잖아요. 우리나라 최고의 딜러들과도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헤이리에 미술관 가지고 있다보니 그곳의 문화 관계자들과 주말마다 교류할 수 있구요. 감정 일을 하면서는 사명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화랑협회의 서양화 감정위원으로도 활동하는 구 대표는 아트 틸러이자 컬렉터로서의 삶의 만족감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갤러리 포커스와 93뮤지엄

(위) 갤러리 포커스 파주 (아래) 갤러리포커스 서울

1990년 서울 청담동에 둥지를 튼 갤러리 포커스는 국내 원로, 작고 작가의 작품과 함께 베트남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소개해오고 있다.

2004년, 구삼본 대표가 15년간 수집해온 인물관련 작품과 역사적 사료를 집대성한 93뮤지엄은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개관해 미술관 별관으로 갤러리 포커스를 이전했다. 헤이리에 누드 에로틱 전문 미술관도 곧 건립할 예정이다.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 아케이드에 있는 공간은 서울점으로 2007년에 오픈해 헤이리와 마찬가지로 한국 대표 거장들과 베트남 대표작가의 작품을 기획 전시 해오고 있다.

그동안 갤러리 포커스에서 열린 전시는 '한국미술사의 귀재 이인성 전'(1991), '작고작가, 원로작가 명품전'(1994), '베트남의 박수근, 뷰샹파이 전'(1995), '작고, 원로작가 판화대전'(2006) 등이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