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 패션에 무한애정 가진 4人의 이유 있는 반대론

1-이헌 매니저
2-정욱준 디자이너
3-정명숙 대표
4-한태민 대표

5월의 봄볕과 8월의 땡볕을 같은 복장으로 견딘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합리하다. 그래서 기온의 상승과 함께 어김없이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쿨 비즈(cool-biz)’다. 넥타이를 벗으면 체온이 얼마가 내려가고, 재킷을 안 입으면 또 얼마가 절약되고.

즉, 시원하게 입고 전기 좀 아끼자는 것이 요지인데 이견의 여지 없이 건전한 취지다. 그러나 패션은 때론 건전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최근 이 ‘쿨 비즈’가 격식 있는 비즈니스 타임에까지 불쑥불쑥 끼어 들면서 상황은 한층 심각해졌다.

한국 남성 패션에 무한한 애정을 가진 4인이 쿨 비즈를 향한 이유 있는 반대론을 내놓았다. 긴장을 풀지 말라. 비즈니스가 계속되는 한은.

이헌 (맞춤 신사복 레리치 매니저)

수트에는 깨지지 말아야 할 공식이 있습니다. 더위나 복장 자율 등으로 인해 점점 복식이 간소화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유감을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 타이는 사실 전혀 기능적이지 않죠. 순전히 스타일만을 위한 아이템입니다.

수트에서 타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뭐랄까, 멋 내기의 마지노선이 무너졌다는 느낌입니다. 굳이 시원하게 입고 싶다면 아예 수트를 포기하는 편이 빠를 겁니다. 얼마 전 삼성에서 직원들에게 비즈니스 캐주얼을 제안한 것처럼 말이죠. 클라이언트를 만나거나 상사에게 보고할 때와 같은 중요한 때에는 타이와 포켓 스퀘어, 레이스 업 슈즈를 모두 갖추는 것이 좋습니다.

구두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끈을 묶는 구두냐, 아니냐는 포멀이냐, 캐주얼이냐를 구분 짓는 중요한 잣대죠.

그렇다고 신사 다운 차림을 하기 위해 무조건 더위를 견디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미국 상원의원들 사이에서는 ‘시어서커 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날에는 모든 사람이 시원한 여름용 소재인 시어서커로 만든 수트를 입습니다. 한국에서 시어서커 수트가 생소한다면 린넨도 괜찮습니다.

타이의 경우 니트로 만든 제품은 외관상 시원해 보이죠. 소재로 시원함을 꾀하면서 여기에 레이스 업 구두를 신어주면 격식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욱준 (론 커스텀, 준지 디자이너)

선택을 해야 해요. 때와 장소를 구분해서 자리의 성격이 파악되면 거기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옷차림을 선택하는 거죠. 격식 있는 자리라면 수트에 타이까지 완벽하게 갖춘 모습이어야 하고, 좀더 사적인 성격을 띠는 자리라면 수트 재킷 안에 깊은 브이넥 셔츠 같은 것을 입어서 자기만의 개성을 표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노 타이 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요즘 덥다고 하나하나 생략하는 추세인데 갖춰 입은 남자의 모습은 계절에 상관 없이 멋스럽잖아요. 아침에 여의도 대로를 가로지르는 비즈니스맨들의 무리는 장관이에요. 정 더위를 참을 수 없다면 일명 쿨 울(cool wool)이라고 부르는 세번수 원단을 사용한 수트가 정답이 되겠네요.

색으로도 시원함을 줄 수 있는데 제가 추천하고 싶은 것은 네이비 컬러에요. 요즘 네이비 컬러를 두고 제 2의 블랙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어요. 가장 기본이면서도 여기저기 활용도가 높은 색이거든요. 특히 여름에 시원해 보이기도 하고요. 참, 이왕 수트 갖춰 입기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드레스 셔츠 안에 런닝 셔츠 입는 건 도대체 언제 바뀔까요?

(사진 위, 아래) 마에스트로

정명숙 (정명숙 비스포크 대표)

쿨 비즈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부터 알고 싶네요. 일본식 줄임말로 알고 있는데 보통 더위를 피하기 위해 타이를 매지 않거나 짧은 소매의 드레스 셔츠를 입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아요. 사실 타이를 매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포멀한 수트에서 비즈니스 캐주얼로의 이동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로 전 세계적인 트렌드니까요. 문제는 잘못 이동하고 있다는 거에요. 포멀 수트에서 타이만 쏙 뺀다고 비즈니스 캐주얼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건 흐트러진 복장이죠. 타이를 매지 않으려면 셔츠도 바뀌어야 해요.

깃이 약간 높은 셔츠에는 타이를 매지 않아도, 윗 단추를 풀어 놓아도 그 자체로 나무랄 데 없는 착장이예요. 반 소매 셔츠는 더 안타깝죠. 워드로브에 반소매 셔츠라는 아이템은 없어요. 게다가 패턴을 뜰 때 실루엣이 벙벙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수트의 우아함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져요.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복장을 흐트러뜨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구김이 간다고 린넨 소재를 꺼리기도 하는데 여름에도 우아한 모습을 유지하고 싶다면 매일 구김을 펴는 노력은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한태민 (편집숍 ‘샌프란시스코 마켓’ 대표)

더위가 찾아오면서 남자들의 착장이 자연스럽게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글쎄요, 전 솔직히 한국 남성들이 사이즈 문제만 제대로 해결한다면 굳이 넥타이를 풀거나 재킷을 벗어 버리지 않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시원한 여름을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손등을 덮는 재킷 소매, 질질 끌리는 바지 같은 것들이 얼마나 덥습니까. 재킷의 소매는 항상 셔츠의 커프스가 보일 만큼 짧아야 하고 바짓단 역시 구두를 가리면 안 됩니다. 쿨 비즈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더 격식을 무시한 차림새라고 생각해요.

타이가 정 답답하다면 살짝 느슨하게 해놓는 것도 좋습니다. 그건 격식에 어긋나는 게 아니니까요. 여름에는 새까만 구두 안에 갇힌 발도 더위에 고생하는데, 바닥에 가죽창을 댄 것이 땀 배출이 잘 돼서 훨씬 더 시원합니다. 가죽으로 된 구두를 사서 괜히 고무창을 덧댄다면 또 말짱 도루묵이죠.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