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주년 맞아 현재진행형 미술 등 4개 영역 다양한 전시 선보여

6월 10일부터 14일까지 5일 동안만은 아무리 섬머타임을 감안해도 스위스 바젤에서 오전 10시는 아직 이른 시간이다. 세계적인 미술시장인 ‘바젤아트페어’의 전시장은 오전 11시에 문을 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10시에 만약 아트페어에 대한 정보 없이 기다랗고 네모나 보이는 광장을 지나게 되면 무슨 일인지 의아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게 될 것이다. 검은 옷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노상에 임시로 마련된 까페에 앉아 아주 진지한 얼굴로 그들 수만큼이나 다양한 언어로 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전시 관계자들이거나 갤러리스트이거나 고객이거나 작가, 이론가, 언론관계자 그리고 단순히 그림시장을 보러 온 구경꾼일 수도 있다. 바젤아트페어는 말 그대로 1년에 딱 한번 서는 미술 ‘5일장’인 것이다. 세계적인 작가들을 키워내고 가격을 올린 화상 바이엘러가 주축이 되어 스위스와 독일, 프랑스 3국을 접경한 바젤에서 보따리를 푼 것이 꼭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를 잇는 곳에 서는 ‘화개장터’ 같다.

1970년 세계적인 미술의 5일장이 서기 시작된 지 올해로 40번째이니 인간으로 치면 불혹의 나이에 들어선 셈인데도 그 어느 때보다 이 아트페어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듯하다. 일반에게 공개되기 전인 6월 9일에는 이른바 ‘도매시장’으로서 화상들이나 이름만 대면 거개가 아는 세계적인 부호들로 이루어진 고정고객들이 초청되어 작품을 거래하였다.

이때 어떤 작품이 얼마에 얼마만큼 거래되었는지 주시하게 되는 것은 미술시장이 세계 경제의 리트머스 시험지인 때문이다. 허상의 숫자만이 오가는 세계적인 거래에서 현금을 동반한 현물을 직접보고 ‘들고가는’ 현물거래 시장이 바로 미술시장인 것이다. 하지만 어디 새벽밥 먹고 장에 가는 이유가 물건을 팔고사기 위함 뿐이던가. 미술시장에도 ‘물건’으로서 작품뿐만 아니라 지천으로 널린 볼 것과 마음을 들뜨게 하는 웅성거림이 있다.

금년도 바젤아트페어 전시장도 예년과 같이 크게 4개의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현재진행형의 미술을 볼 수 있는 1전시장과 각 화상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들고 나와 판매하는 2전시장 그리고 이른바 공공미술로서 야외 광장에 설치된 입체작품들과 스위스아트 수상작을 전시하는 3전시장이 그것이다.

광장에 설치된 가브리엘 큐리 등이 제작한 일곱 개의 조형물을 지나 1전시장에 들어서면 이곳이 작품 거래를 위한 아트페어인지 작품 경쟁을 위한 비엔날레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이다. 40주년에 이르는 바젤아트페어가 미술을 지나치게 상업성으로 이끈다고 비판받자 구성한 다양한 전시들이 구성된 탓이다.

‘언리미티드’라는 제하에 광대한 규모로 10년 동안 프로젝트 식으로 진행된 전시에는 그동안 비엔날레에서 보았던 높다란 나무집을 또 다시 재현한 요시토모 나라를 비롯한 24개국 59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한편 이른바 떠오르는 세대의 작가들 27명으로 구성된 ‘아트 스테이트먼츠’는 그동안 바젤아트페어가 심혈을 기울여 수행하던 관객과 큐레이터들에게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프로젝트이다.

2전시장이 바로 ‘아트페어’로서 각국의 갤러리들이 자신들의 작가를 소개하거나 콜렉션한 작품들을 내다파는 전시이다. 따라서 수많은 화랑에서 중복되는 작가가 등장하기 마련이고 가장 많이 작품이 참여한 작가와 가장 많이 거래된 작가의 작품들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진작품이 강세임은 예년에 이어 지속되는 현상이거니와 특히 두드러진 것은 미술사 책에나 등장하던 대가의 작품이 대거 등장하였다는 사실이다. 특히 조각에서 자코메티의 작품은 바이엘러화랑을 비롯한 란다우, 크루거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데 바젤에 위치한 바이엘러재단에서 자코메티전을 하고 있는 것과 전혀 관계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루이즈 부르주아, 존 챔벌린을 비롯한 솔 르윗과 알렉산더 칼더, 데이비드 스미스 등 근현대 조각이 많이 등장한 것도 스위스라는 국가적 특징과 세계 유수미술관 콜렉션의 방향과 무관하지 않을 수 없다. 청색시대의 우울한 인물이든 브라크와 같이 한 초기 입체파의 그림이든 피카소의 작품은 매우 빈번히 등장하지만, 앤디 워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실험적이거나 떠오르는 작가보다는 공인된 작가의 작품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수익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과 더불어 보수적인 투자자들을 겨냥한 장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한 작품에 수십억을 호가하는 작품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큰 제재없이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 이외에 이제는 사람 자체가 작품처럼 보이는, 잘 차려입고 세련된 매너에 은발을 날리는 르네, 크루거 같은 화랑주들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작가들의 강연회와 필름과 미술책과 자료들을 모두 볼 수 있는 전시장에서 항상 따르던 어려움은 시장기였다. 관객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여겨지던 레스토랑에서 예년과 달리 정오의 빛을 즐기며 한가한 점심식사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의외였다.

게다가 후덥지근하고 숨 막히던 전시장이 올해에는 상쾌하기조차 한 것도 잘 조절되는 냉방장치 때문만은 아닌 성 싶었다. 그러고 보니 어깨를 스치며 지나던 수많은 동양인 관객이 현저히 줄었으며, 작품을 쳐다보는 눈길에 반가워하는 갤러리스트들의 미소가 의미하는 것은 일찌감치 작품이 모두 팔렸다는 것이 유명작가들의 유명작품에 한정한 일임을 알게 한다. 부익부 빈익빈은 결국 올해 바젤의 미술시장에서도 여지없이 적용되고 있었다.



바젤= 조은정(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