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미술의 하모니] (11) 모로와 바그너슬픔·기쁨 등 다양한 감정 상징적으로 표현 꿈의 세계로 이끌어

(사진 위 좌측) 바그너 (우측) 모로

유럽의 신화는 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소재로 수없이 많은 작품들에서 다루어졌다. 그 중 구스타브 모로는 이러한 신화나 전설을 그의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의 주제로 다뤘고 “나는 내가 만지는 것이나 눈으로 보는 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내가 보지 않는 것, 내가 느끼는 것만을 믿는다” 라고 말하며 신화를 통해 인간의 보이지 않는 부분, 즉 인간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의 그림은 신화나 성서의 한 장면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그림이 이끄는 환상의 세계, 상상을 통한 꿈의 세계로 이끌어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모로는 이렇듯 신화나 성서를 바탕으로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통해 인간의 내제된 감정을 표현하며 문학적인 그림을 탄생시킨다. 모로의 상징적인 요소들은 그의 그림 곳곳에 나타나는데 ‘살로메’ 라는 작품에 나타난 살로메의 몸에는 그녀의 팜므파탈적인 이미지를 상징하는 사자, 새, 뱀과 같은 동물무늬들과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신화를 찾아서

미술계에서 신화를 주제로 작품을 탄생시킨 것처럼 음악계에서는 종합예술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동시대를 살았던 작곡가 바그너가 그의 오페라의 주제를 유럽의 신화에서 찾았는데 그는 예술이란 국민 전체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예술적 소재로서는 한 시대의 성격을 반영하는 주제가 아닌 인간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신화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바그너는 그의 작품에 라이트 모티프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또는 특정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특정한 악구를 만들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를 사용했는데 모로가 그의 그림에서 상징적인 요소들을 부각시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것처럼 바그너는 이러한 기법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감정을 상징적인 악구로 표현하고 있다.

바그너는 이렇듯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큰 중점을 두었는데 인간의 슬픔과 사랑의 비극을 표현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중세 유럽의 널리 알려진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바그너의 스폰서였던 베젠동크의 부인인 마틸데 베젠동크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하루를 못보면 병이 나고 사흘을 못 보면 죽는다는 사랑의 중독을 그린 이 작품은 죽음으로서 그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사랑의 비극을 표현하고 있다.

바그너와 마찬가지로 모로 역시 그가 사랑했던 여인 알렉산드린과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을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그의 작품 ‘유리디체 무덤의 오르페우스’는 알렉산드린의 죽음 후 그의 슬픈 마음을 표현한 그림이다. 또한 그의 후기 작품인 ‘주피터와 세멜레’는 사랑했던 여인 세멜레의 죽음을 슬퍼하는 주피터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이 역시 알렉산드린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좌측) 바그너 악보 Tristian and isolde

윤회를 드러낸 예술

‘주피터와 세멜레’는 많은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정 가운데에 위치한 주피터는 손에 꽃을 들고 슬픈 눈을 하고 있으며 죽은 세멜레를 오른쪽 허벅지에 앉혀놓고 있다. 이는 꽃과 같이 아름다웠던 세멜레의 죽음을 슬퍼하고 당시 임신 중이었던 세멜레의 아기 디오니소스를 꺼내 주피터의 허벅지에서 인큐베이트 했다는 신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그림 하단에 위치한 부처의 모습은 불교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모로는 이를 통해 윤회를 통한 재 탄생을 표현하고 있는 듯 보인다.

불교의 영향은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는 “윤회와 업보에 비하면 다른 견해는 보잘것없어 보인다” 라고 말하며 그의 오페라에서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인 ‘파르지팔’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자다”라는 불교사상과 윤회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또한 그의 연인 마틸데 베젠동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개개인의 삶은 윤회를 통해 시간을 초월하여 한곳으로 집합되며 모든 것은 구원 또는 용서와 같은 차원으로 한곳으로 모인다라는 윤회사상은 나에게 큰 위로를 가져다 주었다”라고 써 불교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을 표현했다.

인간 내면의 세계를 문학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스토리 이상의 깊은 감동을 안겨준 모로와 바그너. 그들의 예술을 접하고 나면 기쁨, 슬픔, 분노, 사랑, 열정, 욕망, 두려움, 외로움 등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다양하고도 심오한 인간의 감정들을 느끼게 될 뿐 아니라 인생의 허무함을 넘어 무아의 경지마저 느끼게 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노엘라 /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 칼럼니스트 violinoell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