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읽기] MBC 드라마 '선덕여왕'우리에게 필요한 건 타인 고독 어루만지는 천명공주 아닐까

현대 여성의 모범적인(?) 인생 코스는 무엇일까. 멋진 여자들을 예찬하는 미디어의 명명법에 따르면, 현대사회에서 여성은 알파걸로 자라나 골드 미스가 되고, 결혼해서는 수퍼맘이 되어 엄친딸을 길러내야 한다. 여성들은 남녀불평등이라는 굴레에서 가까스로 해방되자마자(물론 ‘제한적인’ 해방이지만) 수퍼맨보다 더 강력한 수퍼우먼이 되어야한다는, 더 커다란 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드라마‘선덕여왕’은 알파걸 신드롬에 빠진 현대사회의 욕망이 투영된 신라판 수퍼우먼들의 총천연색 활극이다.

‘선덕여왕’은 진부한 삼각관계나 사각관계가 아니라 세 명의 여성들이 운명과 벌이는 토너먼트 게임이다. 미실, 천명, 덕만. 이 세 여자가 벌이는 목숨을 건 혈투에서 진흥왕-진지왕-진평왕을 비롯한 수많은 남자들은 하나같이 엑스트라일 뿐이다. 미실은 화려한 색공술과 기상천외한 권모술수를, 덕만은 지혜와 슬기와 명랑성을 무기로 운명의 늪을 헤쳐 나간다.

시청자들은 이 게임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역사는 결국 덕만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실존여부가 불확실한 미실은 ‘화랑세기’의 흥미진진함을 담보로 무적의 팜므파탈이라는 현대적 캐릭터를 얻었고, 덕만은 남장소녀의 매력을 등에 업고 발랄한 양성성을 선보인다. 그런데 유독 천명만은 딱 꼬집어 매력을 설명하기 어렵다. 천명은 ‘역사기록’이 아닌 ‘팩션’이 선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역사’ 속에서 비로소 그 희미한 그림자를 드러내는 존재다.

신라의 왕들, 화백회의의 귀족들, 수많은 화랑들의 이해관계는 언뜻 복잡해보이지만 단칼에 정리된다. 그들은 결국 ‘미실의 남자’와 ‘덕만의 남자’로 나뉜다. 그러나 ‘천명의 남자’는 없다. 천명은 그녀가 아끼는 모든 남자들을 다른 이들과 공유해야 한다. 천명이 사랑하게 될 미래의 남자 김유신은 덕만과 나누어야 하며 아들 김춘추는 신라와 나누어야 할 운명이다.

천명에게는 역사가 마련한 번듯한 왕좌가 없다. 그녀에게는 아늑한 사랑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사랑하던 남편은 유복자를 남기고 떠났고 사랑하고 싶은 남자는 쌍둥이 동생 덕만을 사랑할 것이다. 시청자는 그녀의 예정된 패배를 안다. 그리하여 다가올 미래에 무지한 채 다만 조용히 운명을 견디는 천명의 모습은 더욱 애절하다.

“모든 걸 다가졌는데 황후가 아닌 것이 싫어서요.” 단 하나의 결핍 때문에 인생 전체가 우울한 미실.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다른 모든 이의 운명과 목숨마저도 좌지우지하는 미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기마저도 정치적 필요가 없어지자 가차 없이 팽개친다. “미안하구나. 아가야. 난, 난 이제 더 이상 네가 필요 없다.”

그저 눈동자에 살짝 힘만 줘도 상대방의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미실의 카리스마는 위력적이다. 그러나 운명과 맞설 수도 운명에 순응할 수도 없는 천명에 비하면 오히려 평면적이다. 태어날 때부터 납치와 살해의 위협에 맞서가며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온갖 기지로 극복해온 덕만도 물론 매력적이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양어머니인지도 모른 채 그녀를 대신해 죽은 후에도 “사막에서는 눈물이 빨리 마르니까요.”라고 해맑게 웃는 덕만은 사랑스럽다. 하지만 덕만에게는 운명의 여신이 손을 들어주지 않는가. “북두칠성의 별이 여덟이 되지 않는 한 미실에 대적할 자는 없다. 북두칠성의 별이 여덟이 되는 날에 미실에 대적할 자가 온다.”

천명에게는 운명의 여신이 불러주는 응원가도 없고, 사랑의 여신이 흔들어주는 손수건도 없다. 미실에 대적할 자가 올 것이라는 신탁을 자신의 것으로만 믿고 있던 천명은, 자신이 알지도 못했던 쌍둥이 여동생에게 신탁의 영광을 헌납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천명은 세 아우들의 연이은 죽음이 자기 탓이라는 죄책감까지 짊어진다. 왕실에서 쌍둥이가 태어나면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를 것이라는 예언의 희생자가 바로 천명이기 때문이다.

미실은 친절하게도 이 기구한 운명을 천명에게 귀띔해준다. “또 왕자님께서 승하하신 건. 너 때문이다. 다음 왕자도, 또 그 다음왕자도 모두 천명, 너 때문에 죽을 것이다.” 도대체 왜 자신의 탓이냐고 묻는 천명에게 미실은 살인협박까지 서슴지 않는다. “공주님.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그래야 삽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삽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 수도 없다. 타고난 성격상 천명은 “권력도, 대의도, 신라도, 삼한일통도 다 잊고, 사람으로, 여자로 살아 보고 싶”지만, 자식들을 줄줄이 잃고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는 진평왕과 마야부인이, 그녀에게 주어진 듯 보이는 북두칠성의 신탁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천명이 이제 운명을 걸고 자신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녀는 왕실의 도움을 받지 않고 목숨을 걸고 잠행하여 남편의 유복자를 낳는데 그가 바로 김춘추다. 그녀는 패배가 예정된 운명에서 도망친 듯 보였지만 실은 운명과 제대로 한판 붙기 위해 잠시 스테이지에서 몸을 감춘 것뿐이었다.

천명의 매력은 미실이나 덕만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파워풀한 적극성’이 아니라, 남들이 보기에는 언뜻 지나치게 소심한, 그래서 가끔은 답답해 보일 정도로 자신을 감추고 낮추는 ‘포복술’에 있다. 멀리서 볼 때 그녀는 다분히 소극적이지만, 정작 그녀의 내면은 ‘설사 운명의 여신이 내 편임이 확실할지라도, 절대로 그 행운을 과신하지 않겠다’는 신중함으로 가득 차 있다.

천명은 떨쳐 일어나 운명과 싸우기보다는, 미칠 듯이 억울하고 슬픈 그 순간에도, ‘나의 두려움’이 아닌 ‘나를 바라보는 타인들’의 눈을 바라보는 여유를 잊지 않는다. 덕만의 ‘승리’는 역사의 연대기로 기록되지만 천명의 ‘견딤’은 보이지 않는 역사의 내면으로 저물어 간다. 북두칠성의 별들이 아니라 북두칠성을 더욱 밝게 만들기 위한 보이지 않는 어둠, 그것이 천명의 운명이다.

‘기록된 역사’를 넘어 후대인의 상상 속에 빛나는 ‘가능성의 역사’ 속에서 천명 공주는, 그 성공 때문이 아니라 그 실패 때문에 더욱 애잔하게 빛을 내는 어둠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세상을 다 가진 알파걸들만이 아니라, 누군가 승리하고 있을 동안 끊임없이 패배하는 타인의 고독을 어루만지는, 보이지 않는 천명공주들이 아닐까.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