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파워갤러리] (11) 박여숙화랑파트너십으로 신진작가 발굴, 국내외 작가 알리기도 앞장박여숙대표 "아트디렉터 겸 흥행사 되는게 내 역할"

인사동이 전통과 현대를 관통하는 ‘갤러리 거리’의 상징이라면, 1990년대 이후 청담동에도 거대한 갤러리 블록이 형성되어 왔다. 특히 2005년 청담동에 네이처 포엠이 완공되면서 럭셔리한 갤러리가 등장했는데, 이 건물에 자리한 갤러리만도 이십 여 곳에 이른다. 청담동의 다른 공간 혹은 다른 지역에서 이전한 화랑들이 밀집한 이곳 3층, 박여숙 화랑이 자리한다.

지난 3월, 부산에서 열린 화랑미술제에서 박여숙 화랑은 컬렉터들의 발길을 붙잡는 화랑으로 기억된다. 거대한 캔버스가 사진처럼 보일 정도로 하이퍼 리얼리즘을 실현하는 강강훈, 기와집 속에 풍경을 그려 넣는 동양화가 조종성, 이미 스타가 된 젊은 작가 임만혁 등의 그림에 컬렉터들이 반응했다.

오프닝 첫 날 누군가가 그림을 ‘찜’했다는 표시인 빨간 스티커가 절반 이상의 작품에 붙어 있었다. 작품을 놓친 컬렉터들의 문의도 이어졌다. 누굴까? 지독한 경기침체 중에도 팔릴 만한 작품을 골라내는 사람. 예민한 감각과 날카로운 안목을 가진 아트 딜러의 실체가 궁금해졌던 순간이다.

그 아트 딜러가 박여숙 대표이다. 대학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하고 곧바로 뛰어든 미술계에서의 경력이 30여 년을 헤아린다. 편집 디자이너를 거쳐 큐레이터로도 일했던 그는, 서른 한 살에 자신의 이름을 단 갤러리를 열었다.

올해로 정확히 26년을 맞았지만 박여숙 화랑은 여전히 젊다. 검증된 기성 작가뿐 아니라 젊은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갤러리를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일 거다. 이는 처음 갤러리를 연 후 줄곧 박 대표가 지켜온 철학이기도 하다.

“젊은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신진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알리고 그들의 실력을 향상시켜 스타작가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 화랑의 본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트 디렉터 겸 흥행사가 되는 것이 제 역할이죠”

작가의 작품 세계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그들 역량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게 격려하고 때로는 냉정한 비판도 가한다. 그것이 작가가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해 홀로 작업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박 대표의 생각이다. 그동안 박여숙 화랑을 거쳐가거나 혹은 여전히 함께 하는 작가들은 많다.

김강용, 전광영, 김종학, 김원숙, 권기수, 이영학, 김점선, 허달재, 이영섭, 서정국 등이다. 그러나 전속작가라기보다는 ‘함께 간다’는 개념이 강하다. 작은 국내 시장에서 화랑이 전속작가 관계를 맺어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다.

“좋은 작품이요? 오래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작품이지요. 세계 미술 속 한국 작가들의 인지도는 다소 낮지만, 꾸준히 관심을 얻고 있어요. 유럽이나 중국의 컬렉터들도 한국 작가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지요. 작품은 좋지만 아직 가격은 낮은 편이거든요.” 성과보다는 투자에 공을 들여야 하는 위험 부담이 있지만 박 대표는 자신이 선택한 젊은 작가들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했다.

박 대표에게 한국 시장은 좁다. 세계 미술계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해외 아트페어에 힘을 실어온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세계 미술계와 발맞추어 가는 것, 변함없는 박 대표의 갤러리 운영 철학이다. 15년 전부터 50여 회의 해외 아트페어 참여를 통해 국내 작가는 세계 시장에 서서히 알려졌고 해외의 작가는 박여숙 화랑에서 전시를 열었다.

그 중에서도 거대한 건축물과 나무, 계곡 등을 폴리우레탄 천으로 감싸는 작업을 하는 크리스토 야바체프, 영국의 초현실주의 화가 패트릭 휴즈, 사진과 텍스트의 결합 장르를 개척한 빌 베클리 전시는 박 대표에게도 의미가 남달랐다.

“전시의 질도 뛰어났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했고 많은 이들의 호응까지 얻었습니다. 크리스토는 대지예술로 감동을 주는 작가이자 이미 세계적인 거장이죠. 패트릭 휴즈는 역 원근법을 이용해 시각적인 충격을 주는 독창적인 표현을 하고 빌 베클리의 작품은 실내에 걸어두면 아름답기도 하지만 생기에 넘치게 해주지요.”

박여숙 화랑은 2년 전 7월에는 제주에, 지난해 7월에는 중국 상하이에 지점을 열었다. 박 대표의 차녀 최수연 씨가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는 상하이점은 주로 베이징에 진출한 여느 화랑과는 다른 행보를 택했다. 국제적인 도시로, 유럽과 미국인 컬렉터들이 많아 베이징보다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중국은 작가 발굴보다는 국내 작가들의 해외 진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거대한 미술 시장으로서의 발전 가능성이 있거든요.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어요. 제주점은 갤러리가 위치한 비오토피아 단지에 생태공원이 있어 풍광이 무척 아름답죠. 처음엔 별장으로 이용하려고 했는데, 제주에 왔을 때 볼거리가 풍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갤러리로 꾸몄습니다.”

특히나 박여숙 화랑의 제주점은 작품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그림을 보고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평소의 바람이 담긴 공간이 아닐까 싶다. “미술품을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결국 이것을 시작으로 작가들도 나오고 또 성장할 수 있을 거니까요.”

박여숙 화랑


1983년 개관한 박여숙 화랑은 현재 청담동 네이처 포엠 3층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점선 화백의 전시를 시작으로 김강용, 전광영, 김종학, 김원숙, 권기수, 이영학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해 왔다.

또한 크리스토, 패트릭 휴즈, 리히텐쉬타인, 조지 리키, 프랭크 스텔라 등 해외 유명 작가들 역시 박여숙 화랑을 통해 애호가들과 만나왔다. 특히, '한국의 자연 展'(개관 12주년), '자연과 사유 展'(개관 15주년 기념), '자연과의 대화 展'(개관 16주년)등은 호평을 받은 특별 기획전이었다.

박여숙 화랑은 중국 상하이와 제주에 지점을 두고 있다. 약 15년 전부터 해마다 아트페어에 지속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박여숙 화랑은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세계 미술계의 흐름과 발 맞추어 가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박여숙 대표는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도자전문갤러리 '우리 그릇 麗'를 1998년, 서울 압구정동에 개관해 생활자기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