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미술의 하모니] (13)변화보다 지키려는 열정, 과함보다는 절제미 추구

부게로와 브람스가 활동하던 시대는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와 같은 철학가와 상징파 시인 인 말라르메, 랭보, 낭만주의 문학가인 바이런, 디킨스, 괴테를 비롯하여 미술계에서는 세잔느, 마네, 모네, 르누와르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 그리고 음악계에서는 베를리오즈, 바그너, 리스트와 같은 낭만파 작곡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앞서 언급된 인물들의 글과 작품만 떠올리더라도 대략 어떤 시대였는지 짐작이 가겠지만 19세기는 이성과 감정, 자유와 억압 등이 대립하며 혼란을 가져온 시대였다. 또한 이러한 혼란의 형태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의해 고전주의에서 벗어난 다방면으로 변형된 모습으로 표현됐다.

미술가들은 틀에 박힌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나 지식이 아닌 느낌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음악가들은 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절대음악 대신 이념이나 주제를 상징하는 표제음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렇듯 예술계는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카데미즘을 고집한 화가들이 존재했는데 그 중부게로는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과 사진보다도 더욱 사실적인 인물 묘사로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고 있다. 그는 생전 8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고 당시 최고의 화가로 꼽히며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부게로는 고전주의를 고집한 화가로 당시 모네, 마네 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반대했고, 역으로 자신의 그림 역시 비인간적이며 기계적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인상주의 및 상징주의 화가들과의 대립으로 인해 그의 이름은 안타깝게도 오랜 시간 동안 역사의 그림자 속에 묻혀 사라졌으나 1970년대에 그의 작품이 다시 발견되면서 다시금 최고의 화가로 자리잡고 있다.

부게로와 마찬가지로 음악계에서는 브람스가 고전주의 형식을 고집했는데 그 역시 음악 역사상 베토벤에 이어 최고의 작곡가로 뽑히고 있다. 당시 유럽에는 바그너리즘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바그너가 예술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부게로가 개혁파 화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것처럼 브람스 역시 바그너, 리스트, 베를리오즈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신독일악파' 음악가들로부터의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진부한 음악이라는 이유로 공격을 받곤 했다. 하지만 브람스는 이에 대해 "나 역시 바그너주의자" 라고 말하며 비난에 대해 초연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브람스는 자신이 작곡한 수많은 곡들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 불태워 버릴 만큼 완벽을 추구한 완벽주의자였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점은 그의 음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치밀하고 완벽한 구조에 단 한 순간도 그냥 지나친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그의 음악은 연주자와 듣는 이로 하여금 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한다.

부게로 역시 한치의 허점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묘사로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데 사실보다도 더욱 사실에 가까운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그림 속의 인물 바로 옆에서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브람스와 부게로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들의 음악과 미술에 대한 열정과 그에 따른 그들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매일매일 기쁨에 쌓여 작업실로 간다. 저녁이 되어 어두어져 어쩔 수 없이 작업을 멈추게 되면 그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는 것이 힘들 정도이다. 내가 만약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다면 나의 인생은 너무나도 비참해질 것이다." –부게로-

"숙련된 기술이 없는 영감은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것이다." –브람스-


보수파였던 그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흥미롭게도 보수적인 작품 안에서의 낭만주의적 표현이다. 낭만주의의 열쇠는 바로 인간 내면의 감정 표현이 아니었던가. 브람스와 부게로의 작품을 접하노라면 우리는 깊은 내면과 만나는 경험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부게로의 인물들은 살아 숨쉬는듯한 표정 안에서 환희와 기쁨, 슬픔과 분노 등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 하는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 <뷔블리스>를 보라. 넘치는 아픔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온몸이 녹아 샘이 되었다는 뷔블리스를 묘사한 그의 작품은 신비로움이 감돌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은 어떠한가. 슈만과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남편의 죽음으로 슬픔에 젖은, 브람스가 평생 사랑한 클라라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작곡됐다는 이 곡은 부게로의 작품처럼 절제된 틀 안에서 인간 내면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며 죽음을 넘어선 신비감을 경험하게 한다.

완벽을 추구한 그들의 노력과 변화보다는 지키려는 열정, 그리고 과함보다는 절제된 미를 추구한 그들의 작품은 우리를 더욱 더 깊은 내면의 세계로 이끌며 진정한 의미의 '나'를 되돌아 보게 한다.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 칼럼니스트 violinoell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