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물 무료 활용 제도, 만화·음악·영화 등 대중예술 분야서 활성화

DJ 장상준(28)씨는 2003년 말부터 인디 레이블에 소속돼 활동했지만 자신의 음악을 널리 알릴 수 없었다. 자신들의 음악을 들려줄 기회조차 얻기 힘들었다. 대형기획사의 선택을 받더라도 문제였다. 사운드 믹싱과 비트박스 등 힙합 장르를 추구하는 독립적인 음악세계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안을 찾아낸 것은 지난 해 초. 동료 윤동훈(23)씨와 만든 'DJ 짱가'의 음원을 마음대로 가져가거나 사용해도 좋다는 조건의 CCL 방식으로 공개했다. 자신이 제공한 음원을 활용한 리믹스 콘테스트를 진행하고 DVD앨범을 내면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알려졌다.

장 씨는 "음원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오픈하더라도 널리 알리는 편을 선택한 것"이라며 "저작권을 지나치게 강화할 경우 세션을 쓸 수 없는 사람은 창작활동 자체가 힘들어지는 만큼 CCL을 잘 활용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자신의 창작물을 원하는 만큼 나눠주고 다른 창작물을 적법하게 쓸 수 있는 CCL(Create Common License; 공공재 라이선스)이 음악과 영화를 비롯한 대중예술 분야에서 활성화하고 있다. CCL은 저작권법 강화로 창작물 활용을 위축받는 수용자에게 자유를 줄 뿐 아니라 창작자들에게 저작권법 강화 이상의 수익을 보장해 새 창작기회를 열어주는 토대로 작용한다. 그러나 포지티브한 방식의 저작권 관리 수단인 CCL에 관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미흡해 기회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CC(Creative Commons)는 2001년 로렌스 레식 미국 스탠포드대 법학과 교수를 주축으로 처음 시작됐으며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50여개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캠페인이다. CCL은 명시적인 마크나 메타 피그 등의 기계적 표시를 통해 일반인들이 일정수준, 혹은 완전히 자유롭게 저작물을 무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상업적 이용에는 돈을 받아 저작권을 오히려 강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CCL이 뜬다

자신의 창작물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적재산권 허용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CCL 적용 창작물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만화가 강풀은 6일 포털 사이트인 다음에 올린 글에서 "저작권이 존중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터넷 공간은 타인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며 "앞으로 내 모든 만화의 부분 펌질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손바닥, 발바닥 그림 등을 활용해 부분 펌질과, 전체 펌질 허용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

강풀의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인기가수 조PD는 지난해 free music2라는 CCL 음원을 발표해 창작자들이 자신의 음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근래에 가장 성공한 인디밴드인 '장기하와 얼굴들'도 본격적인 인기를 얻기 이전인 작년 8월께 한 음원공유 사이트에 자신의 '싸구려 커피'를 비롯한 음원을 CCL 방식으로 무료 공개하기도 했다.

영화창작에서도 CCL이라는 '포지티브'게임의 효과는 지적재산권 강화만이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핀란드 독립영화인 '스타렉'은 만들어지자마자 온라인 사이트(www.starwreck.com)에 Divx 파일로 무료 공개돼 일주일 만에 약 60만여 건, 6개월 만에 500만여 건이 다운로드 됐다. 이후 이 영화는 한 방송국에 라이선스를 주고 제작비를 회수했다. 그리고 워너 브러더스사에서 스페셜 에디션 DVD로 출시됐으며 캐릭터 상품 등을 판매해 파생 수익 역시 만만치 않게 거뒀다. 2007년 영국에서 네티즌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만들어지고 무료로 배포된 독립영화 프로젝트 '한 무리의 천사들( A Swarm of Angels )'은 흥행에도 성공을 거둬 수익을 고스란히 이를 창작한 네티즌에게 돌려줬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소규모 제작 독립영화인 '다찌마와리'가 인터넷에 동영상으로 먼저 공개됐다 인기를 끌어 극장개봉까지 했다.

▲수용자뿐 아니라 창작자에게도 이득

CCL은 언뜻 생각하면 창작자의 수익을 줄이고 수용자에게는 무제한의 자유를 주는 수단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창작자의 수익을 저작권법에 의한 수익 이상으로 보장하고, 창작 간의 교류로 재창작에 기여하는 순효과도 크다.

온라인 음악 사이트 'Jameno (www.jamedo.com)'에서는 유럽 음악가들이 자신의 음악을 일반인에게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다만, 상업적 목적의 경우에는 유료 결제시스템을 갖춰 지적재산권 역시 지켜내고 있다. 현재 공유되는 앨범 숫자는 2만 3000여개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서는 주류음악계에 편입돼 수익을 얻거나 정식 음반 발매로 파생수익을 누린 신인이 다수다.

저작권을 일차적으로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CCL이 비주류만의 시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미국 음악가인 나인 인치 네일(NIN)은 새 앨범 '고스트 I-IV'(Ghosts I-IV)를 CCL을 붙여 무료로 공개해 2008년 아마존 베스트 앨범으로 선정됐다. 파급효과 역시 일반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움직였다. 무료로 공개된 앨범 덕분에 두꺼운 팬층이 형성돼 베스트앨범에서 1위까지 차지하게 되면서 나인 인치 네일은 저작권법에 의존하는 것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CCL은 창작자의 '양심선언'으로도 볼 수 있다. 그 어떤 창작물도 과거 창작물이나 창작자의 영향, 즉 토대가 없었다면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강풀은 자신의 작품 펌질을 허용하며 "저작권법이 지나치게 강화된다면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표현과 창작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 뉴턴은 '나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것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중태 IT문화원 원장은 "우리의 창작물은 과거의 창작물에 의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다는 면에서 저작권자 한 사람만의 권리를 보장하는 저작권법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저작권법 강화가 창작자의 수익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데서 CCL이라는 대안적 제도가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네거티브' 저작권법에서 '포지티브' CCL로

한 블로그에 정의된 CCL 표시 설명(위), 음원 공유 사이트 Jamedo.com(아래)


창작자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해 준다는 저작권법의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저작권법 강화만이 저작권을 보호하고 창작자에게 수익을 보전해준다는 생각은 때로 현실과 괴리돼 있거나 상상력의 부족이다.

저작권법이 강화된 지금도 음원제공자가 이동통신사 등에 음원을 제공하고 받는 저작권료는 전체수익의 2~3%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80% 이상의 수익을 이동통신사 등이 편취하는 것이다. 반면 애플의 아이튠즈는 70%이상의 수익을 원 창작자에게 되돌려준다. 하루아침에 7억원 이상을 번 창작자가 생길 정도다.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 정보통신부를 비롯한 정부당국이 창작자, 수용자 모두에게 별 도움이 안 되고 법무법인만 쾌재를 부르는 저작권법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8년 한 해에만 저작권법 관련 고소, 고발 건수는 7만 8538건으로 2007년에 비해 5배 가량 폭증했다. 지난 4월에는 대전의 한 법무법인이 직원을 대량 고용해 블로그 글 등을 검색한 뒤 네티즌 8000여명에게 저작권 소송을 걸어 10달 만에 무려 70억원에 이르는 합의금을 챙긴 사건이 발생했다.

저작권 법 강화는 '창작의욕 저하'라는 부메랑을 돌려준다는 맹점도 있다. 약 600만원 가량의 예산을 들인 미국의 한 독립영화에서는 아들이 어머니의 휴대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등장한 휴대폰 벨 소리의 음원저작권자가 2억원대의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대상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포털 음원의 경우 음악저작권협회, 음악제작자협회, 가수협회 등의 협상당사자가 이권다툼으로 협상테이블에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본격적인 CCL은 기계적 차원에서도 적용되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아마존, 구글 등은 인터넷 사이트의 정보들에 CCL 메타피그를 부여하고 있다. 자동으로 지적재산권 분류 수준에 따른 창작물 검색과 개인의 무료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윤종수 사단법인 CC코리아 프로젝트 리드(대전지법 판사)는 "권리자에게 보상해주는 것은 원칙적으로 맞지만. 권리자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어떤 창작도 할 수 없는 현재의 지적재산권 시스템으로는 권리자의 보상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규제에만 치우치기보다는 권리자와 수용자 모두 혜택을 보면서도 문화다양성을 확보하는 CCL을 대안으로 적극 고려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