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대 문신미술관 개관 10주년국내 대학미술관 1호 문신예술 연구 중심지로미술관 잇달아 개관

1-문신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식에서 선농소리내합창단이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2-우주를 향하여’ 드로잉 (1975)
3-황금찬 시인
4-오세영 시인
1-문신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식에서 선농소리내합창단이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2-우주를 향하여' 드로잉 (1975)
3-황금찬 시인
4-오세영 시인

<…최초의 에덴은 창조주의 작품이지만/ 제2의 구름밭은 조각가들의 창조적 칼날에서 시작되었다/(중략) 지중해 그 물결 위에 구름이 외로울 때/ 로댕이 찾아와 문신에게 꽃을 주었다/…화강암으로 잎을 피운 솔거와 아녀/ 어찌 조각도의 붓을 놓았을까/ 이제도 빛나고 있어라/ 저 구름밭의 하얀 장미>(시 ‘신 에덴을 창조하다’)

7월 24일 늦은 오후 서울 숙명여대 문신미술관(관장 최성숙) 라운지, 문단 원로 황금찬 시인의 축시가 음악과 함께 은은히 퍼져갔다. 국내 대학미술관 1호인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황금찬 시인은 헌시에서 문신을 그리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에 비유했다. 이어 한국시인협회회장을 지낸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는 문신의 대표작 ‘개미’를 모티브로 한 <개미>라는 시를 통해 문신 예술의 요체인 자연과 우주, 삶의 섭리를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그외 다수의 저명 시인들이 문신 예술을 노래했고, 김복영 전 홍익대 교수, 한진섭 조각가 등 학계, 문화계 인사들은 심포지엄을 열어 문신 예술을 국가브랜드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문신미술관은 개관 10주년에 맞춰 문신의‘우주를 향하여 시리즈’미공개 드로잉전을 열고 있다.

이렇듯 ‘자연과 생명의 빛’이란 주제 아래 펼쳐진 다양한 행사들은 국내 대학 최초로 출발한 전문미술관의 성장을 축하하는 의미와 함께 문신 예술의 새로운‘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경남 마산 출신의 문신(1923~1995)은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1960, 70년대 파리를 주무대로 활동하면서 세계적 조각가 반열에 올랐고 1980년 영구 귀국해서는 수많은 국내외 전시를 통해 한국예술의 위상을 드높였다. 작고 이후 문신 예술은 음악, 문학, 아트상품 등 ‘원소스 멀티유즈’로 활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가브랜드의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신미술관은 1999년 2월, 당시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현 한국장학재단이사장)이 마산시립문신미술관을 방문한 게 계기가 됐다. 최성숙 관장은 “그때 이 총장을 모시고 문신미술관을 안내했는데 작품을 보고는 숙명여대에 미술관을 지어 문신 예술을 더 많이 알리고 연구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해 운명처럼 숙대에 둥지를 틀게 됐다”고 말했다.

1999년 6월 문신미술연구소로 출발해 2004년 개관한 문신미술관은 학문적 연구와 함께 조각, 드로잉, 자료 전시, 교내외 학술ㆍ정책 심포지엄 등을 통해 문신 예술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2005년부터는 ‘New Work Project’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작가에게 전시 공간을 무료로 대여해 미술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신소영, 이승준, 이상봉, 전민수, 권순학, 이상은, 이장섭, 공기평, 홍명화, 앙드레 휘슬러 등 국내외 작가 60여 명이 거쳐갔다.

현재 전시 중인 ‘우주를 향하여 시리즈’드로잉전은 문신미술관 본연의 ‘전시’ 기능을 잘 보여준다. 9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문신이 1975년부터 1980년대에 걸쳐 제작한 100여 점에서 엄선된 작품들로 꾸며졌으며, 작품 대다수가 100년이 넘는 프랑스 종이에 제작되었고, 문신의 전성기의 아이디어와 힘찬 필선을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은 기존의 ‘마산시립미술관’, 올해 건립 예정인 마산 ‘문신석고(원형)미술관’, 세계적 디자이너 론 아라드가 설계를 맡아 내년 경기 양주시 장흥 조각아카데미에 세워질 ‘양주시립 문신아틀리에미술관‘과 함께 문신예술의 본령이 될 전망이다. 특히 숙대 문신미술관은 작년에 발족한 문신미술연구소, 문신기록보존소 등을 갖춰 문신예술 연구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최성숙 관장은 “대학미술관 1호로 출발한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은 문신 예술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중심지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마산에서 문을 연 문신미술관과 더불어 각지의 문신미술관은 한국과 전 세계에 문신 예술을 알리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숙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장
"문신예술 권리장전 제정해 작가·권리자 보호"



"마산의 문신미술관이 1994년 먼저 문을 열었지만 숙명여대가 서울의 활동중심지를 제공해주었다는 점에서 참 고마운 일이죠."

7월 24일 저녁,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개관 10주년 행사장에서 만난 최성숙 관장은 10년 회고에 앞서 서울에 보금자리를 만들어준 학교에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어진 대화 중엔 문신 작고(1995년) 후 문신 예술을 지켜온 길이 순탄치 않았음을 내비쳤다.

"문신 예술이 지금까지 걸어온 과정은 설산의 가시발길을 맨발로 넘어야 하는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지만 문신 예술을 사랑하는 분들의 성원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실제 문신의 타계를 전후해 위작 사건과 작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들이 잇달아 발생했다. 무엇보다 문신 작고 후 그의 예술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행히 1991년 위작범 전원 사법처리 이후 위작은 사라졌고, 문신 예술이 국내외에서 재평가되면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전시는 물론 문신 예술을 주제로 한 음악제가 열리고 정부에서는 국가브랜드의 대상으로 연구를 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

마산시와 숙명여대의 문신미술관 외에 마산 '문신석고(원형)미술관', 경기도 양주시 '문신아틀리에미술관'이 건립되는 것과 관련, 최 관장은 "문 선생님이 작고하실 때 '내 예술세계가 민족문화와 더불어 영생하게 해달라'고 한 유언대로 모든 작품을 기증하고 예술세계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험에 근거해 한국미술계의 풍토를 일신하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른바 '문신예술 권리장전'을 제정해 작가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것. "대한민국 현대 미술사는 짧은 역사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면서 "그러나 이면에는 위작파동과 작가들의 기본권 침해 등으로 인해 작가와 권리자들을 신음하게 만드는 척박한 풍토가 조성됐습니다."

최 관장에 따르면 '문신예술 권리장전'에는 △기본권 침해 시도 등이 법질서 문란행위임을 명시 △보증서 없는 문신작품 유통 금지 조치 △권리자 동의 없이 작가의 작품을 출판물에 등재하는 불법관행임을 명시 △권리자에 대한 권리훼손을 차단하기 위해 '○○ 명칭사용 행사 금지'의 법제화 등의 내용이 담긴다.

최 관장은 서울대 미대(회화과)와 대학원(미술교육학과)을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 대학과 프랑스 아카데미 그랑쇼미에에서 수학했으며 1979년 프랑스에서 24살 연상인 문신을 만나 그의 예술세계를 뒷받침해왔다. 최 관장은 파리 시테 아틀리에 입주작가로 선정돼 내년 2월 작가의 모습으로 돌아가 작업에 몰두할 계획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