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무용수지원센터 ABC프로그램무용인 예술적 재능 확장, 연기인 부상 방지·연기폭 넓힐 기회

당연한 말이지만, 예술가가 되기란 쉽지 않다. 특정한 재능과 열정, 돈과 시간과 운이 골고루 겸비될 때 비로소 예술가가 된다고 한다. 반면 예술가가 사라지기란 쉬운 일이다. 어떤 이유 때문이든 더 이상 어떤 작품도 만들 수 없을 때, 더는 현장에서 활동을 못할 때, 예술가는 너무나 쉽게 사라진다.

다른 장르보다 은퇴 시기가 빠른 춤 분야는 이 경우에 자주 거론된다. 무용수의 은퇴 시기는 예술적 표현에 육체의 노화가 방해된다고 판단되는 나이. 또 끊임없이 몸을 가용 영역 넘어 비틀고 움직이는 춤의 특성상 부상도 많아, 나이와 관계없이 일찍 ‘예술을 접는’ 일도 적지 않다. 종합하면 30살 전후, 한창 활동해야 할 시기에 무용가들은 자의와 관계없이 춤을 그만둔다. 경제적 상황이나 춤 예술의 저변 협소로 인해, 몸이 온전함에도 불구하고 춤을 멈추는 것도 은퇴나 전업의 또 다른 이유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운영하고 있는 ABC 프로그램(Actor's Body Conditioning)은 바로 이런 무용가의 현실을 감안해 그 예술적 재능을 좀 더 연장하고 확장시키려는 시도다. 이 프로그램은 몸에 관한 한 가장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무용가들이 몸을 매개로 하는 연기인(연극배우, 영화배우, 뮤지컬배우, 모델 등)들에게 신체에 대한 인지력과 표현력 향상을 위한 신체훈련을 전수하는 프로그램이다.

연기인들은 무용가로부터 이를 전수받으면서 몸의 긴장을 푸는 법을 배우며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갖게 되고, 아울러 신체부위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방법을 습득해 더 나은 연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다분히 무용인과 연기인의 '윈-윈'을 의도해 시너지 효과를 노린 프로그램인 셈이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ABC 프로그램 초˙중급단계를 개발하고 이를 보급하기 위한 강사를 선발해 양성해온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최근 드디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ABC 프로그램이 아르코 예술인력개발원 교육과정으로 채택되어 프로그램 연구진이었던 윤혜정 강사가 연기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

보다 의미있는 성과는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ABC 프로그램 교육과정을 수료한 첫 번째 무용수가 타 단체에서 강사로 서게 된 것이다. 올해 3월부터 석 달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심현아(LeeKDance 단원, 전문무용수 경력 4년)씨는 지난달부터 2개월간 국립극장에서 12명의 인턴단원을 대상으로 ABC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직업전환재교육 지원자 고일안(현재 국립발레단 재활 트레이너), 장향인(반트 퍼스널 트레이너) 씨에 이어 재취업에 성공한 세 번째 사례. 특히 심현아 씨는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현업 무용수로서도 여전히 활동 중이어서 앞으로 무용인들의 직업 확장 시 성공 사례로서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는 연기인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아직 8회밖에 진행이 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전문가로부터 ‘몸을 다루는 방법’을 체득하며 좋은 연기를 위한 토대를 쌓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교육을 받고 있는 청소년예술단 ‘미르’의 인턴단원 신계훈 씨는 “각 신체 부위를 움직이는 방식을 알아가며 자세가 교정되고 있다”고 말하며 “무대에 섰을 때 발산할 수 있는 에너지가 증가된 것 같은 느낌이다”라며 ABC 프로그램의 효과를 뒷받침했다.

심현아 씨는 “사실 이 프로그램은 무용수들에게는 쉬운 수준이지만, 연기인들에게는 기본적이면서도 꼭 필요한 동작들이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계적인 몸 풀기 대신 연기인들의 표현력 증진에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를 고민한다는 그가 이 프로그램에서 주력하는 것은 두 가지. 우선 중요한 것은 무대에서의 부상 방지다. 가령 극 중 타격 장면이 있을 때 호흡이 맞지 않으면 다칠 수 있기 때문.

이를 위해 그는 적절한 타이밍에 몸을 피하고 자연스럽게 넘어지는 법도 가르친다. 또 하나는 연기 폭에 대한 확장. 이 역시 몸 전문가로서의 무용가들이 말이 아닌 '몸'을 통한 연기의 전문가라는 점에서 연기인들에게 유효한 부분이다.

현재 국립극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ABC 프로그램은 9월부터 실시하는 청소년을 위한 공연체험 프로그램 <국립극장, 고고고! - 보고, 듣고, 즐기고> 사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심현아 씨는 8월말로 프로그램을 마치게 되지만, 이번 강의 후에도 국립극장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게 됐다. 프로그램 강사로서뿐만 아니라 무용가로서 극장 측으로부터 작품 안무 제의를 받은 것.

심현아 씨는 “현재의 ABC 프로그램은 보완할 점도 분명히 있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무용수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는 점은 ABC 프로그램만의 강점”이라며 반색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앞으로 연기인과 연기 관련 유관단체를 대상으로 협의와 홍보활동을 전개하여 교육과정 개설을 추진하고 양성된 강사에게는 활동의 장을 마련해주어 무용인과 연기인이 더욱 공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ABC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비단 무용수의 직업 확장뿐만 아니라 몸을 매개로 한 인접예술인들과도 새로운 소통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그램이 보일 파급력은 적지 않아 보인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