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러거' 등 온라인 야구게임 성명권·퍼블리시티권 침해 논쟁

(사진 위) '마구마구' 인터넷 사이트 (아래 좌·우) '슬러거' 네오위즈 게임즈

“도둑놈을 배불리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침해라고 생각은 안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 ‘마구마구’와 ‘슬러거’를 둘러싼 성명권·퍼블리시티권 침해 논쟁이 날로 격화하고 있다. (38) 전 LG 투수를 비롯한 은퇴선수들이 자신들의 성명권과 퍼블리시티권 등을 침해 당했다며 문제제기를 하고 있으나, 해당 업체는 본질적으로 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며 맞서고 있는 것. 창작 등 표현의 자유와 게임, 캐릭터 산업 발전이라는 대의와 권리자의 권리보호 측면에서 문화 쟁점이 될 여지가 크다.

이들 게임에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이름과 경기기록이 그대로 등장하며 유니폼 등을 통해 선수 이미지를 유추할 수 있게 했다. ‘마구마구’를 개발·운영하는 CJ인터넷과 ‘슬러거’를 운영하는 네오위즈 게임즈는 사전에 KBO와 계약을 체결했다. 문제는 계약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은퇴 선수들의 캐릭터까지 게임에 등장하며 유료 아이템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

“도둑놈” vs. “침해 아니다”

은퇴 선수들과 게임 업체간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전 선수가 온라인 게임에서 자신의 이름과 경기기록, 이미지 등이 포함된 게임 캐릭터가 유료로 거래되고 있다는 것을 안 사실은 지난해 가을. 이 선수는 이번 문제가 은퇴 선수 공통의 문제라고 보고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받겠다는 뜻을 자신의 블로그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거듭 밝히고 있다.

해당 업체는 생각이 다르다. 개발 당시 사실을 알지 못했으나, 근본적으로 퍼블리시티권 침해가 아니며 도의상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CJ인터넷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침해라고 얘기하면 말할 것이 없다”며 “빨리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으며 만약에 방법이 없다면 법의 판단 내용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네오위즈 게임즈 관계자는 “개발사에서 내용을 잘 몰랐던 것 같다”며 “여러 접촉을 하고 있고 계속 노력해서 문제를 해결해 반쪽자리 게임 서비스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마구마구’와 ‘슬러거’에서 이 전 선수의 캐릭터는 내려진 상태다. 하지만, 임수혁 전 선수를 비롯한 다른 은퇴선수 캐릭터는 여전히 판매되고 있다.

‘성명권’, ‘퍼블리시티권’ 침해 논란

논란의 핵심에 있는 ‘성명권’ 침해 여부는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성명권의 내용에는 불가침의 권리인 인격권과 상품화권이 있으며 개인의 성명, 상호를 사용해야 할 경우에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준모 게임분쟁연구소 변호사는 “사전에 본인 동의나 보상조치 없이 은퇴선수의 이름을 사용해 이익을 얻은 것이기 때문에 명백히 성명권,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해당되는 것”이라며 “게임산업 발전에 따라 야구, 축구, 음악인 등의 실명이 들어간 게임을 만들 때 이익분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업체들이 선수의 이름이 아닌 이니셜을 사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CJ인터넷은 당초 한 언론 인터뷰에서 “계약이 안된다면 이니셜 처리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경우에도 ‘퍼블리시티권’ 침해 논란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퍼블리시티권은 재산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람이 그가 가진 초상이나 기타 자기동일성(아이덴티티)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말한다. 성명, 초상, 이미지, 서명, 사진, 음성, 캐릭터 등이 자기동일성의 내용에 포함된다.

정원일 변호사는 “은퇴 후 다른 생업에 종사하는 선수들 역시 게임 속에서는 현역선수로 활동할 당시의 모습으로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니셜 처리를 하더라도 퍼블리시티권 침해”라며 “명시적인 법규가 없더라도 개인의 재산권과 인격권을 존중하는 헌법에 의한 퍼블리시티권 유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난 2006년 서울중앙지법은 모바일 야구 게임인 그래택사의 ‘한국 프로야구 2005’ 관련 소송에서 (현역)야구선수를 (아케이드성) 야구게임에 등장시키는 것은 선수의 퍼블리시티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문제가 된 게임들은 선수들의 외양을 캐릭터에 세밀하게 살린 외국의 아케이드 게임과는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세밀한 외양을 묘사하지 않았더라도 유명인의 자기동일성(아이덴티티)을 다수가 유추할 수 있는 특정 이미지가 들어갔다면 퍼블리시티권 침해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 견해다.

안혁 법무법인 두우 변호사는 “실제 선수 이미지와 완전히 똑같지 않더라도 가령 선수의 갈퀴머리나 LG트윈스의 유니폼을 연상시키는 줄무늬가 들어가 다수가 그의 캐릭터라고 인지할 수 있다면 퍼블리시티권 침해”라며 “퍼블리시티권은 초상, 성명 뿐 아니라 종합적인 아이덴티티를 고려한다”고 말했다.

게임 선진국서는 어떻게 하나?

반면, 게임업체가 실감나는 스포츠 게임을 개발하려면 은퇴 선수들과 일일이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해당업체들은 ‘일구회’ 등을 비롯한 은퇴선수 단체들과 접촉을 시도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친목단체인 ‘일구회’에 가입하지 않은 선수도 여럿이다. 야구 외 종목의 은퇴 선수 단체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실제 선수와 거의 유사한 캐릭터를 사용하는 스포츠 아케이드 게임을 만드는 EA사 등이 있는 미국에서는 선수들이 콘텐츠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일이 매우 드물다. 라이센스 제도가 워낙 민감하게 확립돼있을 뿐 아니라 선수들이 퍼블리시티권 협회를 만들어 창구를 단일화 해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이야기 전개나 전체 구조(맵) 등 어필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한 다른 방법도 많다는 점 역시 산업 발전이라는 대의로 권리자 문제를 묻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게임 개발자가 상품성을 높여서 이용자에게 어필하기 위한 여러 선택 중의 하나를 한 만큼 책임도 있는 셈이다.

창작 등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도 금도는 지키는 게 합리적이라는 게 전문가 견해다. 정원일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남의 권리까지 침해하면서 인정받을 수는 없는 것이고 게임산업의 발전이라는 것도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나 가능한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나 게임산업의 발전이라는 대의를 무기로 내세워 소수자의 목소리를 묻히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한 KBO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선수는 “KBO는 선수를 대신해 CJ인터넷과 퍼블리시티권에 관한 계약을 체결할 권한이 없고, 선수를 대신해 계약을 체결했다는 KBO는 게임사로부터 받은 라이센스료의 30%만 선수들에게 지급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KBO 관계자는 29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KBO의 자회사인 KBOP가 선수협의회의 권리를 위임 받아 계약을 했다”며 “계약 당시 현역 선수들만 계약돼있었고, 은퇴 선수들의 경우는 KBO 소속이 아니라서 정보를 넘긴 바 없다”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