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어린이박물관에 가보니…60~70년대 풍경 아이들엔 호기심을, 부모 세대엔 향수 자극

“타임머신 타고 온 거 같네. 네가 언제 이런 다방에 앉아볼 수 있겠어.”초등학생 딸과 함께 온 한 엄마는 ‘약속다방’에 앉은 딸을 사진으로 찍어주고는 말했다. CD플레이어보다 ‘전축’이라는 말이 더 익숙했던 시절의 레코드 점에선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거야’가 흘러나오면서 1960년대와 70년대의 향수를 자극한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가 전시된 ‘은하사진관’의 가장 넓은 자리엔 사진촬영을 위한 붉은 색 의자도 놓여있다. 누구든 그 곳에 입장한 이들은 자신의 카메라로 사진 한 장 박을 수도 있다. 똑딱이 디카는 물론 핸드폰 카메라라도 좋다.

국내 처음으로 국립기관의 하나로 정식 출범한 어린이박물관 야외에 모습을 드러낸 ‘추억의 거리’의 풍경이다. 2003년 2월,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속되어있던 어린이민속박물관이 최근 국립어린이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독립된 기관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국내의 어린이 박물관은 이곳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전국 11곳과 사립인 삼성어린이박물관, 내년에 오픈하는 경기도어린이박물관 등이다. 국립어린이박물관은 국가가 운영하는 독립된 어린이박물관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평일 낮, 경복궁 한 켠에 자리한 ‘추억의 거리’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은 물론 친구와 함께 온 대학생, 중년 여성들,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1,900㎡ 면적의 넓지 않은 공간에는 오밀조밀한 추억의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관 옆에는 한국 최초로 패션쇼를 열며 고급 기성복 붐을 일으켰던 노라노 여사의 ‘노라노 양장점’이 있다. 맞은 편에는 국산 최초의 자가용이던 ‘포니’의 78년식 ‘포니1 픽업’도 전시됐다. 이는 최근 강원도의 한 주민에게서 국립민속박물관이 공개 구입한 소장품이다. 국박 집엔 뜨끈한 국밥과 김치, 막걸리가 한 상 차려져 있고 만화방엔 그 시대 어린이들의 친구였던 만화책과 간식거리인 쫀드기와 라면 땅도 보인다.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을, 이 시대를 살아온 부모님 세대에는 향수를 자극하는 국립어린이박물관의‘추억의 거리’에 대해 박물관측은 “세대를 넘어 세대를 이해하는 삶의 체험과 교육의 장”으로 향후 지속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립어린이박물관은 지난 4일, 현판 제막식을 하면서 ‘추억의 거리’가 이슈를 모았지만 그 안에는 앞으로 기대할 만한 풍성한 볼거리와 신선한 접근법도 주목할 만하다. 상설관은 지난해 12월에 전면 교체된 것으로, <심청전>을 스토리텔링 기법에 따라 체험적 전시공간으로 꾸며 호응을 얻고 있다. 보존가치가 있는 유물은 별도로 전시하고, 아이들이 만지고 놀면서 당시의 생활상을 체험하는데 초점을 맞춘 공간이다. 체험공간이다 보니 안전문제를 위해 하루 50명으로 인원수를 제한하는 등 어린이박물관에 대한 새로운 접근도 시도하고 있다.

2011년에는 흥부전, 2014년에는 콩쥐팥쥐전 등 상설관도 3년마다 교체를 통해 ‘변화하는’ 박물관을 만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에 1년에 한 두 차례 열리는 특별전을 위한 공간도 2층에 마련 중이다. 그 첫 전시로. 다음 달 <인형전>이 열린다. 재독 교포가 300점을 기증하고 나머지 300점을 대여한 것으로, 어린이박물관에 대한 기증의 첫 선례를 남기게 됐다.

내년에는 독일 그림형제박물관의 휴관에 맞추어 <그림동화전>이, 2011년에는 시대에 따른 어린이에 대한 인식 변화를 다룬 <어린이의 탄생> 등이 열린다. 어린이 모니터요원, 어린이 학예사 제도 개발 등 어린이가 중심이 되는 어린이박물관이 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립어린이박물관의 박호원 초대관장은 “전세계 30여 개국에 300여 개의 어린이 박물관이 있다”면서 “세계 어린이 박물관과의 교류에도 힘쓸 예정”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시대의 충실한 생활상 담는것이 우리의 역할"
국립어린이박물관 박호원 관장


야외 전시장인 '추억의 거리'의 시대를 60~70년대로 잡은 이유는 무엇인가.

70년대 이후에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어느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여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굉장히 어려웠던 시대이다. 부모님이 겪어낸 어려운 시절, 단지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검소한 생활이 아이들에게 교육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세대는 추억을 환기시킬 수 있을 것이고. 조만간 '관장과 함께 하는 추억의 거리 여행'이라는 프로그램도 만들 계획이다.

국립어린이박물관은 전형적인 박물관의 느낌과는 좀 다른데..

기존에는 민속어린이박물관이어서 '민속'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이제 '생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속'이란 어감에서 전해지는 진부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에 100%가 민속에 관한 것이었다면 여기에 생활사와 다문화 생활상, 생태의 중요성까지도 담아낼 예정이다. 시대의 충실한 생활상을 담아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우리가 표방하는 것 중 하나는 '그린 뮤지엄'이다. 어린이에게 가장 중요한 안전과 청결을 위해 전문소독업체에 의뢰해 살균과 항균을 현재 6개월에 한 차례씩 시행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월 1회 정도로 더 자주 할 예정이다.

국립어린이박물관의 앞으로의 계획은..

특별전시공간 한 편에는 가변적인 탐구실을 마련하려고 한다. 해외에는 디스커버리 룸을 많이 운영하고 있는데, 유물을 직접 만지고 오감으로 알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또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소장이다. 어린이 장난감, 식기, 옷, 일상용품 등 의식주부터 카테고리화 해서 구성해보려고 한다. 또 전통과 근대 이후를 나누어서, 기상에서 취침까지 어린이의 하루 일과를 추적해보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어린이 문화 정보센터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