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미술이야기] 영화 '고야의 유령'과 화가 고야이성이 잠든 시대의 불침번 고야, '증인으로서의 예술'을 행하다

열의에 찬 종교적 비합리성이 인간을 황폐화시킨다면 여기에 맞서기 위해 신앙이라는 이름의 우상에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열정적인 합리주의자를 필요로 한다.

서양의 역사에서 종교는 역사와 인류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었지만 때로는 인간을 말살하고 종교에 봉사하고 헌신하도록 강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는 일부 교회와 정치가라는 인간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그리고 그들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폐해는 중세에 가장 빈번하게 나타났으나 르네상스시대를 거쳐 바로크와 로코코 그리고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시대를 지배했던 17세기부터 약 2세기 동안인 19세기 초까지도 여전했다.

야만의 시대는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지만 특히 종교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인간말살은 스페인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 시기 스페인은 권력이 미술을 지배했던 시기이자 미술이 권력을 비판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화가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1746~1828)가 있다. 그는 40살이 되던 1789년 샤를르 3세의 초상을 그려 실력을 발휘한 후 1799년 샤를르 4세에 의해 5만레알의 봉급과 500두카트의 마차비용을 지급받는 궁정화가가 된다.

당시 스페인 최고의 화가이자 궁정화가였던 그는 왕실의 가족과 귀족 그리고 종교인들의 초상화를 통해 이름을 날렸다. 이 당시 그의 작품으로는 현재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샤를르 4세와 그의 가족>과 <옷 벗은 마야>, <옷 입은 마야> 등이 있다.

하지만 종교라는 이름으로 재판을 열고 인간을 파멸로 이끌어 가는 폭압적 종교를 목도한다. 또 프랑스는 혁명 이후 종교를 대신해서 ‘자유’, ‘평등’, ‘박애’를 내세우지만 스페인을 침략해 민중을 처참하게 학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신과 권력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이즈음 그의 나이 46살이 되면서 왼쪽 귀를 먹기 시작한다. 마치 세상의 비열하고 참혹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듯이. 그는 연작판화 <카프리초스>(caprichos, 변덕)를 통해 고통받는 민초들의 삶에 눈을 돌렸으며, 나폴레옹 군대의 만행을 증언하는 연작판화 <전쟁의 참화>를 제작하면서 그의 삶과 예술은 급변한다.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민족적 의식이 그의 잠을 깨우면서 그는 권력에 복종했던 궁정화가였지만, 한편으로 그에 저항한 화가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인간을 억압하던 종교를 대신해서 지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성을 말살시키던 어둠의 시대를 화가 고야의 시각에서 담아낸 영화가 바로 <고야의 유령>(Goya's Ghosts, 2006)이다. 이 영화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와 1984년 <아마데우스>로 거장의 반열에 든 체코출신의 미국감독 밀로스 포만의 작품이다.

영화는 부러울 것 없는 부유한 상인의 딸이자 아름다운 몸과 순수한 영혼을 가진 고야의 모델 이네스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종교와 정치를 넘나드는 위선자 로렌조 신부 그리고 이를 지켜보며 영화를 이끌어가는 고야를 축으로 전개된다. 이네스 역에는 나탈리 포트만, 로렌조역에 하비에르 바르뎀, 그리고 고야를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맡았다.

(위) '샤를르 4세와 그의 가족' (1800~1801년)
(아래 좌) '옷 입은 마야' (1803년) (아래 우) '옷 입은 마야' (1800년)

고야의 모델이자 아름다운 영적 친구였던 이네스는 단지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교도인 유대인으로 고발당해 감옥에 갇히고 모진 고문 끝에 누명을 뒤집어쓰고 종교재판에 회부될 운명에 처한다. 돈 많은 상인 토마스는 자신의 딸 이네스를 구하기 위해 초상화 대금을 대신 지불하고 성당 재건 비용을 기부하겠다는 제안을 종교재판소 신부 로렌조에게 한다.

하지만 이네스가 혹독한 심문을 견디지 못해 자신이 이교도라고 자백했다면서 로렌조는 궤변을 늘어놓아 종교재판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러자 토마스는 로렌조를 고문해서 ‘자신은 원숭이 자식’이라는 고해문서에 서명을 받아낸다. 고문은 이성을 마비시켜 거짓자백을 할 수 있으며 신부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로렌조는 집안의 안부를 전한다며 이네스를 찾아 그를 범한다. 토마스는 거액의 헌금에도 불구하고 딸이 돌아오지 않자 로렌조의 고해문서를 왕에게 제출한다. 종교재판소는 로렌조의 지위를 뺏고 스페인에서 추방한다. 그 후 20여 년이 흐르고 프랑스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침공하여 자신의 형을 스페인 왕으로 봉하고 로렌조는 성직자에서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되어 다시 등장한다.

그는 스페인의 그림을 약탈해서 나폴레옹에게 바쳐 환심을 사려한다. 하지만 히에로니무스 보시(1450?~1516)의 인간의 모든 악행이 담긴 <쾌락의 동산>은 나폴레옹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라 하여 스페인에 남는다. 하지만 이 그림은 바로 로렌조를 의미한다. 감독 밀로스 포만은 <쾌락의 동산>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자 프라도에 갔지만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고야의 그림이었다. 그래서 그는 생각을 바꾸어 고야를 영화화했다고 한다.

아무튼 변신의 귀재 로렌조는 종교재판소를 재판에 부치고 그 안에 갇혔던 사람들은 자유의 몸이 된다. 이네스는 물론 죄수들(?)의 몸과 마음이 쇠락할 만큼 쇠락한 채였지만. 격랑의 시대는 모두를 사라지게 하고 감옥에서 나온 그녀에게 의지할 곳이란 오직 고야뿐이다.

감옥에서 딸을 낳은 이네스는 고야에게 찾아달라 부탁하고 고야는 부탁을 들어주려 백방으로 뛰어 딸의 이름이 알리시아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하지만 그녀는 감옥에서 수녀원으로, 그리고 이를 뛰쳐나와 이미 거리의 여자가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고야는 알리시아가 로렌조의 딸임을 알게 되고, 로렌조는 딸이 자신의 앞날에 걸림돌이 될까 두려워 알리시아와 그의 동료들을 미국으로 보내려한다. 하지만 세상은 다시 바뀌어 프랑스군은 퇴각하고 로렌조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교수형에 처해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당시 스페인 종교재판소는 감시인들을 풀어 유대교를 색출했으며 심문은 바로 고문을 의미했다. 고문은 자백으로 이어져 이를 근거로 처벌했고 피에로 복장 같은 옷과 모자를 씌워 교수형에 처했다. 사형집행은 대중들 앞에서 하루 종일 진행되었는데 이를 오토 드 페(Auto -de-fe)라 했다. 이런 암흑시대는 마침내 1820년 막을 내리지만 인류역사에서 수치스러운 일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이런 광기의 시대에 그림을 그릴 때면 누구 못지않은 광기를 발휘했던 고야가 현실에서는 매우 차갑고 냉정한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 ‘증인으로서의 예술’을 행한다. 마치 영화에서 밤에 모자챙에 촛불을 여러 개 꽂아서 켜고 그림을 그리던 것처럼 고야는 암흑의 시대에 불침번처럼 광포한 시대의 모순을 질타했다.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 한 토막, 오늘 이 시대는 과연 불침번이 필요없는 시대일까?



글/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