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석연 연필회화' 展청계천의 판자집 등 1953~1961 작품 중심 30여 점 선보여


에드가 드가는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소묘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고 동시에 엄격했다. 그는 아름다운 무희들의 튀튀를 빛나는 색채로 완성해냈지만 다채로운 동작은 까다로운 데생을 통해 탄생했다고 과언은 아닐거다.

금방이라도 춤을 출 듯한 조각 역시 수없이 반복된 연필 끝에서 비롯된 생동감인 셈이다. 그는 '데생은 형태가 아니다. 형태를 보는 방법이다'라는 말을 통해 대상 그 자체보다는 대상을 바라보는 화가의 방식이 중요함을 언급하고 있다.

드가가 데생을 기본으로 빛의 그림, 인상주의 그림을 완성해냈다면 원석연 화백은 소묘를 통해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을 완성해냈다. 흔히 원석연 화백을 '연필화가'라 부른다. 바라보는 대상과 그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예술세계 역시 달랐던 그들이지만 데생에 각별한 의미를 불어넣은 것만큼은 닮았다.

의자에 앉아 지팡이를 짚은 한 노파가 있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올려 묶은 그녀. 세월과 함께 반쯤 눈꺼풀은 반쯤 내려앉았지만 눈동자엔 여전히 또렷한 기운이 서려있다. 그녀를 보고 있자면 고된 삶을 헤쳐온 이의 고집과 자신감을 연필은 모두 알고 있는 것만 같다.

2003년에 간암으로 작고한 원석연 화백은 60여 년의 예술가 생을 종이 위에 오로지 연필만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투영해왔다. 연필로 7가지 색을 낼 수 있다는 원 화백은 이런 말을 남겼다. "연필의 선에는 음(音)과 색(色)이 있다. 저음이 있고 고음이 울리며, 슬픔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색이 있는 곳에는 따스함과 슬픔, 기쁨, 고독이 함께 한다. 연필 선에는 시가 있고 철학이 있다."

원 화백 그림의 소재는 서사적이지 않다. 마늘 타래와 굴비, 명태, 꽁치 등 일상적이고 서민적인 정서가 흐른다. 고즈넉한 시골 밭과 농가, 마을의 수호신과도 같은 고목과 새 둥지 등의 향토적인 소재도 즐겨 그렸다. 그가 그려낸 나무에는 우듬지에서마저 강한 생명력이 솟구친다. 도시와 시골 정경에 대한 극사실적인 표현은 고증 자료의 가치까지 담겨있다.

연필에서 질감과 밀도까지 살려낸 원석연 화백의 연필회화전이 지난 9월 4일부터 청담동 샘터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1953년부터 1961년까지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되는 이번 전시는 청계천의 판자집, 부산피난 시절의 광복동 그리고 서민들의 애환이 잘 담긴 작품 등 30 여 점이다. 연필화 그 너머로 작가의 깊이 있는 성찰이 전해진다. 9월 30일까지 샘터화랑에서. (02)514-5122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