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 연예인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

약 한달 전쯤 한 시사 주간지에 '한쿡말, 모타면 더 떠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제는 그 계보가 꽤 길어진 해외파 연예인들의 어눌한 한국말 발음에 대한 대중의 선호를 이야기하는 기사로, 기자는 교포들의 언어는 매력적인 21세기 사투리가 되었고, 나아가 외국인 선호는 21세기 대중문화 현상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불과 몇 일 후 우리는 그 선호와 환호 뒤에 숨어 있던 날카로운 이면을 보았다.

한국에서 연예인으로 살아 남으려면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인정머리 없는 잣대는 최근 들어 도를 지나치고 있다. 결혼 전에 한 두 번 열애설이 있었던 여자 연예인은 손가락질 받고, 클럽에서 취한 모습이 목격되면 바로 인간 말종으로 찍힌다.

심지어 인사하는 각도가 90도가 아닌 45도라는 것도 불만 사항이 된다. 바야흐로 연예인 수난시대다. 이 모든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키며 수백만 개의 허들을 통과해 안티 청정 지대에 도달한 연예인은 대한민국에서 유재석 하나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팝콘 심리학>의 저자 장근영 심리학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이 차지하는 위상은 영국의 귀족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타고난 핏줄로 추앙받을 당위성을 가지고 태어난 반면, 한국의 연예인들은 끊임 없이 자신이 성골 또는 진골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의 도움 없이 우월한 외모를 타고났다든지, 뜨기까지 죽도록 고생을 했다든지, 뭐든지 꺼내놓아 현재 그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정당화시켜야 한다.

대중의 유난스런 요구 중에서도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도덕성에 대한 닦달이다. 정작 본인은 시대의 양심을 표방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일반인의 기준을 훌쩍 넘는 성인 군자 수준의 인격과 품행이 요구되곤 한다. 연예인 중에도 김장훈이나 차인표 같은 도덕적 표상은 존재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온 나라를 통틀어 제일 외모가 잘 나거나 제일 재미있게 잘 노는 것으로 눈에 띈 사람들이다.

연예인의 정체성은 넘치는 끼지, 도덕성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모든 사람은 착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암암리에 요구되는 도덕성은 결벽에 가깝다. 말을 꺼낸 이조차 도달하지 못할 저 너머의 세계가 연예인에게는 너무 쉽게 강요된다.

그 중에서도 해외파 연예인에게는 어느 정도 면죄부가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그들에게 우리만의 도덕률을 선뜻 적용하는 것은 누가 봐도 편협한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 친구와 동거했다는 말이 국내 여자 연예인 입에서 나오는 것과 <미녀들의 수다> 패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들이 무슨 행동을 해도 '그 나라에서는 그러려니' 하고 만다.

문제는 교포다. 같은 까만 머리와 까만 눈을 가졌지만 머리 속은 완전히 외국인인 그들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그야말로 복잡다단하다. 이들은 언뜻 보면 국내 연예인들에 비해 더 유리한 것 같다. 일단 우리가 학창 시절 10년을 쏟아 부어도 정복하지 못한 영어회화가 그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우며, 선진 문화의 혜택을 받은 티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패션이나 테이블 매너를 통해 흘러나온다.

이들의 어눌한 발음은 멍청한 것이 아니라 귀여운 것이 되고, 겸손이나 장유유서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은 자유롭고 쿨한 것으로 여겨진다. 외국인들은 그 외모 때문에 다른 세계로 분류돼 비교 대상에서 제외되는 반면, 교포들은 적어도 겉모습만으로는 같은 민족, 그것도 우성 인자들만으로 꼭꼭 채워진 매력적인 한국인이다.

특권에 대한 대가는 인권?

그러나 외국인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이라는 모호한 정체성은 이들에게 곧 반대편 칼날을 들이 민다. 국내 연예인에게 하듯 도덕성을 강요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너는 한국인이니 당연히 불타는 애국심을 가져야 하며 (토박이들의 애국심이 어느 정도이든 상관 없이), 한국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한국 사람들이야 돈 벌어 이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나고 자란 문화가 무엇이든 한국의 문화와 풍습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고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한반도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군대 문제다. 영주권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한 차인표는 지금도 두고두고 모범 사례(?)로 회자되지만 반대의 길을 택한 유승준은 지구를 넘어 아예 우주 저편으로 보내졌다.

당시 '거짓말을 해서 팬들을 실망시켰다'는 등의 이유가 따랐지만 연예인이 누리는 특권에 대해 대가를 치르기 바라는 대중의 속내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하나를 가졌으면 다른 하나는 내놓으라는 것이다. 당시 유승준의 행동은 범법이 아니었다. 그의 입국 금지에 대한 변은 '국민 정서에 반했다'는 것이었다.

최근의 사건은 한 소년의 '한국은 병신 같다, 한국 사람들이 싫다 (Korea is gay, I hate Koreans)'는 발언으로 시작됐다. 발언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우스운 그 가벼운 '찌끄림'은 소년이 연예인, 그것도 인기 연예인이 되면서 폭발적으로 커졌다.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도 없고 돈만 벌러 온 거라면 너희 나라로 꺼지라는 여론으로 인터넷이 들끓었다.

그러나 정말로 그의 모자란 애국심이 문제였을까. 온라인을 뒤덮은 감정은 탄식이 아닌 분노였다. 갑자기 치솟은 대중의 애국심은 출처가 불분명했다. 사과나 해명을 요구하기 전에 탈퇴, 추방, 심지어 자살로 화제가 급격하게 건너 뛰었다.

사람 몰이가 한껏 달아올랐다. 지금껏 누린 특권에 비하면 인권으로도 부족하니 목숨이라도 내놓으라는 난장판 속에서 사건의 장본인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초라한 모습으로 퇴진했다. 몰이 파티는 급격히 식고 소수의 이들은 후회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언제 분위기에 휩쓸려 인간을 사냥했냐는 듯 침묵에 잠겼다. 다음 몰이를 기다리며.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그를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그가 아니라 우리라는 것이다. 자국인의 비판은 의식 있는 발언으로 인정하면서 외국인의 비판에 대해서는 발끈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성이다. 애초에 그를 한국인으로 인정하지도 않았으면서 불타는 애국심을, 그것도 '고삐리'에게 강요하는 것은 한참 모순이다.

다른 교포 연예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 중 누구라도 먼저 받아들인 기억이 없다. 그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대중의 눈을 거스르는 모든 행동을 수정할 때에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애초에 자신이 들어가지 못할 바늘귀는 남에게도 들이대서는 안 되는 것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