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비중 증가 추세… 남성 패션 수준 반영한 원스톱 쇼핑과 상품 차별화는 필수

여자들은 드레스 룸에, 남자들은 술 창고에 열광한다? 한 맥주 회사 CF의 내용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시기적으로는 별로다. 남자들도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다. 넓고 쾌적하고 원하는 아이템은 모조리 들어 있는 최고의 옷장에.

◆ 수치로 알아보는 한국남성 쇼핑 문화의 변화

78: 블랙 칼라 워커(Black collar worker)는 화이트 칼라로 불리던 기존의 고학력 사무직 노동자보다 더 지적이고 창의적이며 패션과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를 의미한다. 블랙 칼라 워커의 78%가 쇼핑시 애인이나 친구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 나선다.

10: 한국남성 패션 문화는 옆 나라인 일본에 비해 10년 이상 뒤져 있다. 신사복 란스미어의 남훈 팀장은 자신의 온라인 공간에 그 이유에 대해 첫째, 한국 남성들은 패션의 기본과 원칙에 대해 배우는 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했으며 둘째, 스타일에 관심을 가지는 남자들을 탄압하는 배우자들과 주변 동료들이 많고 셋째, 개인에게 적합한 스타일을 제안해 주는 브랜드나 백화점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42.1: 신세계백화점 남성팀의 분석에 따르면 30대 남성이 남성 고객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6년 29.6%에서 올해 42.1%로 증가했다.

28: 롯데백화점의 온라인 쇼핑몰 롯데닷컴의 남성 고객은 지난해 대비 28% 늘어났다.

◆ 국내 남성 전용 백화점 현황

오프라인: 현재 없다. 신세계백화점이 2007년 본관을 리뉴얼하면서 지하 1층에 편집 매장 형식으로 남성관을 꾸몄지만 기존 백화점의 남성층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이세탄 맨즈나 프랑스라 파예트 옴므처럼 건물 전체가 남성만을 위한 상품들로 구성된 경우는 없다. 현재 제2롯데월드 부지에 세워질 제2에비뉴엘에 남성 전용관이 생긴다는 소문이 있지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제 땅 파고 있는데 확정된 것이 있겠느냐고.

온라인: 최근 롯데닷컴에서 롯데맨즈닷컴을 열었다. 의류, 화장품, 지갑, 구두, 시계, 스포츠 용품 등 남성 상품들을 한데 모아 놓고 패션 코디 제안도 해 놓았다. 이 회사 오화영 부장은"남성 전용 쇼핑 공간을 만드는 일에 백화점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움직였다는 것은 남성 패션 시장이 따로 분리시켜 생각해야 할 만큼 수익성이 증명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백화점 기반은 아니지만 디앤샵도 남성 고객만을 위한 사이트 '디옴므'를 리뉴얼 오픈했다. 단순히 남성 상품을 모아놓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추천 상품을 전면에 배치하는 파격적인 구성으로 잡지를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주었다. IT 상품과 운동기구까지 갖춰 놓았다는 점에서 현재까지는 가장 폭넓은 상품군을 보유한 남성 공간이다.

1) 디앤샵의 남성 전용 쇼핑몰 디옴므
2) 탠디 구두
3) 만다리나덕 토트백
4) 게스 남성용 시계
5) 폴 스미스 스카프


◆ 한국에 남성 전용 백화점이 없는 이유

한국은 좁다. 가장 많은 점포를 가지고 있는 롯데백화점도 전국적으로 25개 점뿐이다. 이 건물 중 하나를 통째로 남성관으로 쓰기에는 아직까지 효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백화점 측 입장이다. 백화점이 주요 고객으로 인정하는 남성의 연령대는 20대에서 40대, 이 중에서도 경제력이 뒷받침되며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추려내면 그나마도 얼마 남지 않는다.

증가 추세인 것은 확실하지만 현재 백화점 남성층 1개 층만으로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언론에서는 연일 초식남 열풍을 보도하지만 이것이 전반적인 트렌드로 확산돼 실질적인 상품 구매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더 필요하다.

◆ 남성 전용 백화점이 갖춰야 할 조건

쇼핑 편이: 백화점이 제공하는 원스톱 쇼핑은 남성들의 쇼핑 행태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혼자서 쇼핑을 하는 남자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쇼핑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그들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점에서 백화점이 가지는 경쟁력은 타 유통과 비교할 수 없다.

1층은 남성 전용 화장품과 잡화, 2·3·4층은 콘셉트별 패션 매장, 5층은 IT 제품과 스포츠 용품, 6층은 식당과 스파로 꾸며진 공간이라면 남자들은 편리하게 눈치 보지 않고 쇼핑할 수 있을 것이다. 빠르고 간단한 쇼핑 동선의 필요성은 온라인 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롯데맨즈닷컴은 초기 화면에 클래식 수트, 비즈니스 수트, 셔츠, 타이 등으로 아이템을 세분화해 원하는 상품에 도달하기까지 클릭하는 횟수를 3단계가량 줄였다.

가치: 시장을 만드는 것은 소비자이지만 시장이 소비자를 만들기도 한다. 당장 이익을 올리려면 여성 전용관을 또 하나 만드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현재 태동하고 있는 남성 패션의 부흥을 위해서는 유통, 그 중에서도 한국 패션 유통의 핵인 백화점이 먼저 판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이왕 벌일 판이라면 당장의 매출에 급급해 가격 할인을 남발하기보다 차별화된 상품과 상품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판매 직원,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서비스로 소비자에게 새로운 것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상품 차별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이다. 무엇을 가져다 팔 것인가. 현재 국내 백화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브랜드별 매장 구성은 소비자의 취향보다는 백화점과 브랜드 사이의 정치적 관계를 반영한 결과다. 아르마니가 굴지의 패션 하우스라고 해도 그가 만든 모든 옷을 둘러 보아야 하는 의무가 소비자에게는 없다.

적어도 자신만의 취향이 있는 남자라면 A브랜드에서 제일 예쁜 재킷에 B브랜드의 가장 잘 빠진 팬츠를 매치하고 싶지 않겠는가. 이런 것들을 대신 해줄 사람이 백화점의 바이어인데 현재로서는 소비자를 만족시킬 만큼의 편집 능력을 갖춘 바이어가 없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명품 브랜드 유치를 기본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의 베스트 상품을 쏙쏙 골라오는 바잉 능력은 필수다. 이게 갖춰지지 않은 남성 전용관은 쇼핑의 즐거움을 노동으로 치환하는 거대한 상자일 뿐이다.

도움말: 신세계백화점 남성복 담당 백선욱 과장
롯데닷컴 백화점 팀장 오화영 부장
제일모직 란스미어 남훈 팀장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