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미술이야기] 천재화가에게 여성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을까영화 속 피카소와 그의 여인들

(좌) Guernica, 1937 (우)영화 <서바이빙 피카소> 한 장면
유명한 사람일수록 다양한 얼굴을 갖는 것일까.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 자본주의 특성을 이용해서 가장 많은 돈을 번 공산주의자, 생전에 부와 명예를 이룬 피카소(Pablo Ruiz Picasso,1881~1973)에 붙어있는 별명은 이외에도 다양하다.

하지만 평범한 이들의 관심은 역시 그의 여성 편력일 것이다. 피카소가 자신의 연인 또는 아내의 우는 모습을 그리는 순간 그것은 결별을 의미했다는데 과연 그는 마초일까 아니면 여성은 그의 영감의 원천이었을까.

피카소 예술에 대해서 다루는 듯하지만 실은 피카소의 마초적 근성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가 <서바이빙 피카소; Surviving Picasso>이다.

서바이빙이란 "피카소보다 오래살기" 또는"피카소 이기기"라는 의미를 갖는데 영화 속 주인공이자 피카소의 여성 가운데 유일하게 그에게 맞서고 그에게 여신처럼 떠받들어졌던 프랑수와즈 질로(Francoise Gilot,1921~ )를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들에게 군림했던 피카소에 대한 응징(?)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치하 파리에서 시작된다. 나치의 수괴 히틀러(Adolf Hitl -er, 1889~1945)는 오스트리아 린츠(Linz)에 세계중심의 미술관을 세울 욕심으로 새로운 도시를 점령하자마자 미술품 약탈에 열중한다. 근대미술의 보고인 파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치군은 인상파화가들을 적극 후원했던 화상 뒤랑 뤼엘(Paul Durand-Ruel, 1831 ~1922)의 수장고를 접수한다. 이렇게 파리가 나치의 손에 그림이 수탈당하고 있던 1943년 새롭게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나면 주체하지 못하는 피카소는 나이 62세에 그의 삶에서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8명의 여성 중 6번째 여인인 프랑수와즈 질로를 만난다.

물론 이즈음에도 그에게 여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피카소를 유명하게 해준 게르니카(Guernica, 1937년, 349×775cm, 유화, 레이나소피아 미술관 소장)를 제작하는 동안 사진작가로 그를 도와주었던 도라 마르(Dora Maar,1907~1997)가 그의 곁에 이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피카소가 질로를 만나 함께 살았던 10년간을 그리고 있는데 그녀가 쓴 <피카소와 살다>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피카소의 여성편력과 공산주의자로서의 삶을 그리고 있다.

법대를 졸업하고 화가가 되고자 했던 질로는 21세의 나이에 40살 연상의 피카소를 만나 클라우드(1947~ )와 팔로마(1949~ )을 낳았다. 영화는 그녀와의 10년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질로의 회상형식으로 피카소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여성들에게 군림하는 스타일이었던 피카소가 유일하게 질로에게 만은 고분고분했는데 이즈음에 유명한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가 찍은 니스 해변가에서 질로에게 햇빛을 가려주기위해 커다란 파라솔을 들고 ?아가는 피카소의 사진이 상징적으로 피카소에게 질로가 어떤 의미였는지 잘 보여준다.

파리 피카소 미술관에 가면 그의 가계도가 그려진 패널이 있다. 여기에는 그의 공식적인 여인들 8명이 등장하는데 사실 그는 법적으로 두 번 결혼했다. 그러니 나머지 6명은 동거녀였던 셈이다.

피카소의 일생에 처음 등장하는 여성은 그가 23세의 나이에 처음 만난 페르낭드 올리비에(Fernade Olivier,1881~1966)였다. 갓 파리에 온 가난뱅이 화가 피카소는 유부녀지만 생활고 때문에 모델로 일했던 그녀를 만난다. 그리고 31세 때 피카소는 유명한 화가가 되어있었다.

이즈음 그의 눈길을 잡은 여성은 여성적인 분위가 그윽한 에바 구엘(Eva Gouel(1885~1915)이었다. 피카소의 마음까지 지배했던 그녀는 하지만 30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피카소는 그녀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2년여를 혼자 보낸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난 여성은 법적으로는 첫 번째 부인이 되는 올가 코클로바(Olga Khok -hlova,1891~1955)다. 러시아 장성의 딸로 발레리나였던 올가는 장 콕도의 발레 <퍼레이드>에 출연했고 피카소는 이 작품의 무대디자인을 맡으면서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깔끔하고 상류층의 삶에 익숙한 올가와 서민적이고 털털한 피카소와는 태생적으로 맞지 않았다. 둘 사이에 아들 파울로(1921~1975)를 두었지만 결국 결별한다.

그녀와 헤어지자마자 그는 발터 마리 테레사(Marie-Therese Water,1909~1977)와 동거한다. 17살에 그리스 조각처럼 바른 콧날과 푸른 회색 눈, 금발의 소녀인 그녀는 지하철에서 30세나 차이 나는 피카소의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에 끌려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아이를 원치 않았던 피카소는 낙태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녀는 22살에 딸 마야를 낳는다. 젊음만으로 피카소를 잡을 수는 없었던 그녀는 피카소와 결별하지만 진정으로 피카소를 사랑했기에 그가 죽은 2년 후, 그를 만난 지 50년이 되는 날 자살하고 만다.

사실 테레사와 동거하는 동안 피카소는 이미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도라 마르(Dora Maar, 1907~1997)를 집안에 들인다. 이즈음 그는 신문사진을 토대로 그의 역작 게르니카를 제작하던 시기로 그녀는 이미 피카소와 친분이 있던 사이였다.

영화에서 지지대위에 올라서서 게르니카를 그리는 그는 테레사와 도라가 한 남자를 두고 싸우는 모습을 마치 남의 일처럼 내려다보는 장면이 나와 그의 이기적인 여성편력의 일단을 드러낸다.

하지만 도라 마르도 프랑수와즈 질로가 등장하면서 우는 모습의 초상으로 남고 만다. 질로는 피카소에게 유일하게 대접받았던 여인이지만 현재하는 프랑스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일하고 있는 쥬네프 라폴트(Geneviev Laport,1926~ )가 등장하면서 미련 없이 그를 떠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피카소를 찬 여자'가 된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두 번째 부인인 동시에 마지막 여인인 재클린 로크(Jacqueline Ro -cque, 1926~1986)가 등장한다. 신처럼 피카소를 떠받들었던 그녀에게 피카소는 주인이자 신이었다.

커다랗고 짙은 눈망울을 지닌 모델이었던 25세의 이혼녀였던 그녀는 1961년 발로리스 시청에서 피카소와 비밀 결혼식을 올린 후 그가 죽는 20년 동안 헌신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바친다. 피카소가 죽은 후 내내 검은 커튼을 치고 식탁에 피카소 자리를 두는 등 그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1986년 권총자살로 생을 마친다.

물론 영화에서 이들 여성 모두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상류사회의 세심한 관조자라 불리는 제임스 아이보리가 감독한 이 영화에 피카소는 안소니 홉킨스를, 나타샤 맥켈혼은 질로 역을 연기했다. 3번째 여인 올가 역은 제인 라포테어, 5번째 여인 테레사에 스잔나 하커가, 6번째 여인 도라 마르는 줄리안 무어가, 그리고 7번째이자 마지막 여인인 재클린 로크에 다이아나 베노라가 연기했다.

질로의 눈을 통해본 피카소는 야심가이자 남근주의 사로잡힌 황소였다. 그는 여자들을 전전하면서 "사랑을 나누기" 보다 "사랑을 약탈하는" 사람이었다. 파카소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려면 이 영화보다는 1956년 앙리 끌로조(Henri-Georges Clouzot, 1907~1977)가 감독한 <피카소의 신비, The Mystery of Picasso, 1956>가 더 적격이다.



글/ 정준모(미술문화정책, 국민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