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미술의 하모니] (17) '가곡의 왕' '뒷모습의 화가' 인생무상 예술로 승화시키려 노력
그들의 작품은 분위기와 색채, 그리고 담고 있는 메시지까지 너무나 닮았다. 동시대를 살며, 평생 가난과 고독 속에 생을 보낸 이들의 작품은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과 여운을 남긴다.
가곡을 한층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켜 '가곡의 왕'으로 불리는 슈베르트는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을 여럿 남겼다. 그 대표작 중 하나인 <마왕>은 슈베르트가 18세 때 괴테의 시에 곡을 붙여 작곡한 작품이다. 그는 시의 내용과 분위기에 따라 멜로디와 화성을 같이 변화시켜 가곡을 하나의 스토리가 있는 음악적 드라마로 완성시킨다.
이 시에는 죽음으로 이끄는 '마왕'과 겁에 질린 '아들', 아들을 말에 태우고 급히 달리는 '아버지', 그리고 이 상황을 설명하는 '내레이터', 이렇게 4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죽음으로 아이를 데려가는 마왕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아이를 유혹한다. '사랑스런 아이야, 나와 함께 가자! 내가 너와 함께 재미있는 놀이를 할 테니 저 곳엔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피어 있고 너의 어머니는 금으로 된 옷을 가지고 있단다.' (<마왕> 중 마왕의 목소리)
슈베르트는 이후 <죽음과 소녀>라는 곡을 작곡하는데 여기서도 죽음은 마치 <마왕>처럼 신비롭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소녀를 죽음으로 유혹한다. '나에게 손을 주세요, 아름답고 상냥한 소녀여, 나는 당신의 친구랍니다, 당신에게 고통은 없을 거에요. 무서워 마세요! 나는 난폭하지 않답니다. 이제 나의 품에 안겨 편히 잠드세요.' (<죽음과 소녀> 중 죽음의 목소리)
슈베르트의 <마왕>과 <죽음과 소녀>를 듣고 있노라면 장례식 행렬을 그린 프리드리히의 작품 <참나무 밑의 수도원>과 <눈 덮인 수도원 묘지>라는 작품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어떻게 이토록 완벽하게 어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작품은 닮아있다.
슈베르트와 마찬가지로 프리드리히에게도 죽음은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슈베르트와 동시대를 살았던 화가 프리드리히는 7세에 어머니를 잃고 이후 형제 3명마저 잃게 된다. 특히 형제 중 한 명은 프리드리히와 함께 얼음판에서 놀던 중 얼음판이 깨지면서 익사를 하게 되고 프리드리히는 이를 목격하는 아픈 경험을 한다.
이렇듯 어릴 적 맞이한 가족의 죽음이 그를 우울증과 은둔적 생활로 몰아넣었던 것일까? <참나무 밑의 수도원>은 이러한 그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대변하듯 어둡고 외로우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눈 덮인 수도원의 묘지>는 한 겨울의 눈만큼이나 차갑고 쓸쓸하며 외로운 죽음을 표현하는 듯하다.
죽음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일찍 경험한 프리드리히의 작품에는 거대한 자연 앞의 나약한 인간이 모습이 표현되고 있다. 압도당할 만큼 거대하고 경이로운 자연 앞에 인간은 너무나 작은 모습으로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자연을 향해 있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자연의 신비와 숭고함을 경험하게 되며 동시에 인간의 초라함과 인생의 무상함, 그리고 영원한 삶을 향한 동경을 느낄 수 있다.
프리드리히의 또 다른 주제였던 겨울풍경은 다시 한번 슈베르트를 연상케 한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겨울과 방랑자의 모티브를 연결시킨 그의 최고의 걸작품이다. 가난으로 사랑하는 여인마저 보내야 했던 슈베르트의 심정과 죽음이라는 춥고 긴 여행을 떠나야 하는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이 작품은 슈베르트가 죽기 바로 직전에 쓴 곡이어서 더욱 안타깝다.
평생 가난과 고독으로 삶을 보낸 슈베르트와 프리드리히, 인생의 무상함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그들의 노력, 신비롭고 아름다운 영원의 세계를 갈망했던 이들의 작품은 인간 내면의 영혼을 끌어올리며 우리로 하여금 숙연히 삶을 뒤돌아 보게 만든다.
"화가는 밖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내면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눈앞에 보이는 것조차 그리지 말아야 한다." –프리드리히-
"우리는 행복이란 우리가 경험했던 것들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상 행복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슈베르트-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칼럼니스트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