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극 페스티벌' 등 본격 연극의 실험적 시도 다양한 모습들 보여줘

1) 2인극 페스티벌 '우중산책'
2) 대학로 페스티벌 포스터
3) D. FESTA-스태츄마임
'연극'과 '호황'은 그 자체로 모순처럼 느껴질 만큼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언론은 연일 각종 공연예술제와 국제 페스티벌을 다루며 관객들의 입맛을 돋운다.

벌써 몇 년째 무대에 오르고 있는 재공연 작품이나 오픈런 작품들은 이제 충성도 높은 팬층마저 양산하고 있다. 이만 하면 연극의 중흥기까지는 아니어도 불황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무색한 상황이다.

하지만 많은 연극인들은 여전히 샴페인을 터뜨리지 않고 있다. 지금 연극에 대한 관객의 관심은 뮤지컬이나 대중연극에만 편중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연극계의 자본과 인력을 더욱 끌어들이는 뮤지컬과 대중연극과, 여전히 정부의 지원금으로 연명하고 있는 본격연극의 상반된 처지는 '연극의 저변 확장'이라는 청사진보다 연극 본래의 위기를 쉬이 연상시킨다.

연극 본연의 예술성 대신 흥행을 좇는 대학로. 그래서 연극판의 호황과 별개로 '연극의 위기'라는 말이 또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 대학로 안팎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연극제들은 상대적으로 예술성을 강조하며 연극의 순수성을 되찾자는 테마로 구성되어 눈길을 끈다.

실험적이거나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콘셉트로 무장한 이들의 시도는 상업성에 경도된 현재의 대학로를 지적하며 본격연극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1) D.FESTA-극단 필통의 퍼포먼스
2) 2인극 페스티벌 '갈매기_지독한 사랑'
3) 오프-대학로 페스티벌 '미스 줄리'
4) D.FESTA 날.쌈 페스티벌 '어느 섬에서 벌어진 이야기'
대학로 안의 자아비 판

지난 10일부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과 인근 4개 소극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대학로 페스티벌 '2009 D.FESTA'는 상업성에 점령된 대학로에 놓인 트로이목마다. 한국소극장협회가 주최하는 D.FESTA는 연극의 외연 확장과 대학로의 예술적 이미지 재정립을 목적으로 한다.

D.FESTA의 기획도 재미에만 치중된 현재의 대학로 공연을 보다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로 확장해보자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이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연극 본연의 실험적인 성격으로 대학로를 '문화 지구'로 탈바꿈하는 것.

이런 생각은 '날.쌈 페스티벌'에 집약되어 있다. '날것과의 싸움'을 뜻하는 '날.쌈 페스티벌'은 17일까지 까망소극장, 씨어터 디아더, 행복한 극장, 아리랑소극장 등 4개 소극장에서 계속해서 열린다.

16개의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공연되는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관객이 직접 논쟁을 벌이고 심사도 하면서 일방향적 관람이 아닌 소통형 관람의 새 관람문화를 직접 만들고 있다. 때문에 관객의 입맛에 맞추려는 상업적 의도보다 관객의 경험과 기대치를 충족시키려는 치열한 도전이 가능해진다.

D.FESTA의 얼굴인 조직위원장을 맡은 연극배우 김갑수는 "상업성이 짙은 현재의 대학로를 좀 더 예술과 문화가 넘쳐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공연인들이 거리에서 직접 시민을 만나고, 재미에만 치우친 대학로의 공연을 참신하고 예술적으로 만들려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명의 배우만으로 '배우 예술'인 연극의 묘미를 발휘하는 '2인극 페스티벌'도 눈길을 끈다. 지난 7일부터 연우소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이 페스티벌은 2000년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통한 연극 기본정신의 부활'을 내걸고 출발했다. 그동안 모놀로그 같은 작품이 단독 공연을 한 적은 종종 있지만 2인극이라는 콘셉트로 행사를 시도한 적은 드물기에 '2인극 페스티벌'이라는 연극운동은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출범 이후 처음에는 번역극과 창작극을 막론하고 2인극으로 공연이 가능했던 다양한 소재들을 발굴하는 데 주력했다면, 중반부터는 세계 각국의 2인극 작품들을 우리 정서에 맞게 각색하기도 하고 주제별로 더욱 세분화해 2인극을 활성화하는 데 일조해왔다.

상업성에 방점이 찍힌 작품에 자본과 인력의 몰리고 있는 현실에서 2인극 페스티벌은 공연의 기회를 갈구하는 젊은 연극인들에게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선보일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한다. 신진연출가들에게는 등용문이, 기성연출가들에게는 실험의 장이, 배우들에겐 2인극의 캐릭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도전의 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때문에 '2인극'이라는 제한된 공연 형태는 오히려 각 분야의 연출가와 배우가 공히 실험과 도전을 가능케 하는 맞춤형 무대가 된다.

9회째를 맞은 올해 행사에서 집행위원장을 맡은 김진만 극단 앙상블 대표는 "두 사람이 펼치는 2인극은 소통의 출발이자 작은 완성"이라고 규정하며 "이미 다양한 형태의 공연들이 있지만, 2인극 페스티벌은 연극 본연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를 증명하듯 16일부터 공연되는 <잊혀진 노래>는 오래된 연인의 사랑과 갈등을 두 명의 배우만으로도 심도있게 표현해내고 있다. 이 작품의 김태훈 연출가는 "기술력이나 물량공세보다는 제한된 상황에서 나오는 상상력의 힘을 믿는다"며 '작은 연극'의 큰 힘을 설파한다. 2인극 페스티벌이 공모를 통해 선정한 창작 6편의 2인극 작품은 검증된 번역극이나 스타 캐스팅의 재공연극이 만연한 지금의 대학로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대학로 밖에서 대학로를 비판하다

최근 명동예술극장이 새롭게 개관하면서 '명동연극시대'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지금이야 '연극' 하면 대학로를 가리키지만, 1980년대 이전에는 연극의 거리는 명동을 가리켰다.

1973년 장충동에 이전하기 전까지 명동의 명물이었던 국립극장, 그와 함께 한국 현대연극을 이끌었던 남산드라마센터(현 남산예술센터), 소극장 실험극의 메카 삼일로 창고극장, 엘칸토 소극장 등 1960~1980년대 연극의 중심은 명동에 있었다.

지난 7일부터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시작된 제8회 오프-대학로 페스티벌은 상업성에 치중한 대학로의 현재를 비판하며 '명동연극'을 통해 본격연극의 부활을 외치고 있다.

오프-대학로 페스티벌은 대학로가 잊어버린 연극의 본질을 찾고자 '다시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연극을 하자'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페스티벌. 대학로 일대의 상업주의적 연극환경과 공연장 중심의 비합리적인 제작현실을 성토하기 위해 중견, 신인연출가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실험적인 행사다.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오프-대학로'는 어쩔 수 없이 오프-브로드웨이를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오프-대학로도 오프-브로드웨이가 변질되어 결국 오프-오프-브로드웨이를 파생시켰던 과정을 답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8년간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오프-대학로 페스티벌에서 펼쳐진 '연극'들엔 처음의 순수성이 여전히 오롯이 남아있다. 올해 테마를 '페미니즘 연극제'로 정한 것도 이러한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생리전 증후군(PMS)'을 다룬 극단 삼일로 창고극장의 <비밀을 말해줄까>로 물꼬를 튼 오프-대학로 페스티벌은 17일부터 극단 청예의 <상자 속 여자>(김윤미 작·표원섭 연출), 26일부터 극단 레지스탕스의 <메데아>(유리피데스 작·김효 연출)로 공연을 이어가며 페미니즘 연극의 일면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오네스코의 <의자들>, 아발의 <환도와 리스>와 <전쟁터의 산책> 등 거창하진 않지만 연극의 기본을 진지하게 고찰해보고자 했던 초기의 정신은 이번 행사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본격연극 행사의 의미

대학로 안팎의 본격연극 행사의 출현은 대중연극이 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관계자들은 오히려 대중연극의 호황이 연극의 저변 확대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지금 연극계의 근심은 상업적 목적으로만 기획되고 제작되는 대학로의 공연 환경에 있다.

영화나 만화에서 대중적 성공을 거둔 작품을 장르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채 무작정 무대화하는 시도들 혹은 유명스타들을 캐스팅해 흥행을 노리는 상술이 그런 경우다. 연극의 예술성을 '스타와의 만남'이나 '영화의 무대 위 재현' 정도로 대체하는 상업성 짙은 작품들은 결국 연극 전체의 가치를 퇴색시킨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연극은 관객이라는 전제 없이 존립할 수 없는 장르이기 때문에, 온전히 상업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신혜진 연극 칼럼니스트는 "결국 본격연극의 과제는 예술성과 일정 수준의 상업성을 충족시키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연극의 위기가 해마다 끊임없이 거론되는 것은 제작자들이 해법을 몰라서가 아닐 터이다.

분명한 것은 상업성에 치중한 연극들로만 무대가 채워진다면 결국엔 연극 전체의 저변은 지금보다 더욱 축소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다. 영화계에서 독립영화가 '진짜 영화론'이나 '문화로서의 영화'를 들고 나와서 영화 일반의 저변을 넓히는 것처럼, 최근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본격연극 행사들은 상업성에 물든 대학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송준호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