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미술이야기] 영화 과 오원 장승업의 세계천재 화가 장승업에 상상력 입혀, 지나친 관념적 접근 인간적 면모 약화

1- '홍백매도(紅白梅圖), 10폭 병풍 2- '영모대련도중 호취도', 호암미술관 소장 3- '어해유행', 간송미술관 소장
추석 명절이 지나면서 공연히 서늘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이미 가을이 목전에 왔다는 신호일 터이다. 이렇게 계절이 바뀔 즈음이면 공연히 고향생각이 나고 뜨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럴 즈음이면 우리 것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아마도 향수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그 동안 서구문화의 것은 모두 양질의 것이며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는 사대주의적 발상으로 그것을 수용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토양과 풍토가 다른 우리나라에서 그것들이 잘 자랄 리 만무한 것은 자명한 일. 게다가 오늘의 모양을 갖추기까지 그들이 겪었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그것들을 단숨에 안착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오만한 것일 수밖에.

하지만 임권택(1934~ )감독의 <취화선>(2006년)은 조금은 남다른 생각과 시선으로 조선후기의 화가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을 그려낸다. 사실 오원 장승업은 그의 화명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들이 숨겨진 사람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천출(賤出)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의 화가란 대개 기능인, 기예에 능한 사람으로 오늘날의 작가 또는 화가와는 격이 다른 대접을 받았던 때문이기도 하리라.

영화 '취화선'
아무튼 이렇게 세상에 자신의 족적을 그다지 남기지 않은 오원의 생애를 영화를 통해 재구성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노릇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특유의 상상력으로 자신의 영화인생을 오원에 기대어 풀어놓은 듯하다. 취화선에서 그의 전형적인 롱 테이크 기법은 사라지고 일정하게 이어지는 내러티브도 없다.

짧은 에피소드를 나열시켜 단편적으로 짧게 끊어 치는 인파이터 복서처럼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면서도 그의 단짝인 정일성(1929~ )촬영감독과 함께 잡아내는 풍경은 압권이다. 그러나 풍경이 워낙 빈틈이 없다보니 되려 영화의 흠결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그 둘은 동양의 수묵채색화가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여백미 없는 서양의 유화를 그리는 방식으로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선이 내란과 외침으로 시끄럽던 1850년대, 청계천 다리 밑에서 거지들에게 얻어맞고 있던 장승업을 개화파의 일원이던 김병문(안성기 분, 1952~ )이 구해준다. 그로부터 5년 뒤 다시 오원을 만난 김병문은 훌륭한 화가가 되라는 뜻에서 '오원'이라는 호를 내리며 역관 이응헌(한명구 분, 1960~ )에게 소개해 준다.

당시 역관들은 중인계급임에도 불구하고 외국과의 무역을 중계하면서 많은 돈을 모았고 귀한 서화 역서책들을 모은 컬렉터이기도 했다. 이런 이응헌의 집에서 머슴을 살며 등 너머로 시회를 통해 귀한 그림들을 보고 이를 기억하여 모사할 정도의 경지에 이른다.

이즈음 그는 이응헌의 여동생 소운(손예진 분, 1982~ )을 연모하나 그녀는 결혼하고 만다. 그 후 오원의 귀에 들린 소식은 소운이 병을 앓다 죽어가며 자신의 그림을 청한다는 것. 그래서 한 걸음에 내달려 그녀를 향한다.

이런 시련을 겪은 후 화명(畵名)을 얻어갈 즈음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몰락한 양반집 출신의 기녀 매향(유호정 분, 1969~ )을 만나 인연을 키워간다. 하지만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천주교 탄압은 더욱 심해지고 그로인해 매향과 이별과 재회를 거듭하면서 둘 사이의 사랑과 연민 그리고 이해는 깊어간다.

이렇게 조선후기 최고 최대의 화가라는 별호를 얻었지만 그는 늘 자신의 그림에 불만이다. 특히 추사 이후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가 강조되면서 그의 타고난 재주에 의존한 그림은 한낮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비평 앞에서는 천하의 오원도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더욱 술을 가까이했고 술에 취하지 않고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없던 그는 자신의 또 다른 호인 취명거사(醉瞑居士)가 되어갔다.

오직 술에 취해 신명이 나야만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던 그는 영화의 막바지에 술병을 들고 세상이 이야기하는 "책의 기운과 문자의 향기"가 나는 이들을 조롱이라도 하는 듯 한 얼굴의 원숭이를 그려 자신의 필력을 확인하는 동시에 위선과 허구에 가득한 세상에 감자를 먹인다.

그리고 자신을 극복하여 새로운 세계에 도달하려 노력하던 어느 날 그는 온 몸의 기가 붓을 타고 화면에 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매향과의 마지막 만남을 통해 그녀가 지닌 기우뚱하게 뒤틀린 그릇을 통해 큰 깨우침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몸 담았던 조선의 운명처럼 그렇게 슬그머니 세상에서 사라져간다.

영화의 주인공 오원 장승업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흔히 조선후기 마지막 화가라고 부른다. 이는 그가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화원(畵園)의 화법을 이은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이응헌의 집에 기식하며 잡 일을 거드는 몸종이었다. 그는 주인아이들이 글을 배우고 그림을 익히는 동안 등 너머로 이를 익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느날 중국의 명화(名畵)들을 보고 이를 훌륭하게 모사(模寫)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면서 그의 그림재주는 장안에 알려졌다. 성품이 호방했던 그는 어느 것에도 얽매임 없는 성격에 술을 좋아했고 취해야만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화원 화가답게 산수(山水), 인물(人物), 기명(器皿), 절지(折枝)등을 두루 잘 그렸고 강렬한 필법과 묵법이 남달랐다. 또 과장된 형태와 특이한 설채법(設彩法)은 그의 그림을 호방하고 담대하면서도 소탈한 맛을 낸다.

또 그는 당시 인품을 강조하던 남종문인화풍(南宗文人畵風)은 물론 전통적인 세밀 채색화 인 북종화풍(北宗畵風)에도 남다른 기량을 발휘하여며 문기(文氣)보다는 기량으로 조선시대 전통화법을 집대성하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화가와 예술에 대한 계몽주의적 태도로 인해 억지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면서 '옥의 티'가 된다. 특히 오원과 개화파의 수장 김옥균과의 만남이라든가 동학난의 현장에 나타난 오원의 모습은 그를 예술가 이상의 혁명가로 그리려는 감독의 작의적인 태도로 인해 지금까지의 오원에 대한 느낌과 인상을 흐리는 결과로 나타난다.

또 화가로서 오원을 지나치게 고민과 고뇌하는 인간으로 그림으로서 예술가 또는 화가들의 어느 일면만을 강조하려한 것도 조금 거슬리는 대목이다.

예술가에게 번민이란 중요한 것이지만 늘 얼굴을 찌푸리고 인간의 모든 고민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예술가들에게 어느 경우 과도한 주문이나 기대는 철학과 미학, 기예와 기술 사이에서 길을 잃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또 예술가, 화가를 무슨 구도자처럼 그리려는 시도도 그리 합리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결국 예술가에 대한 지나친 관념적 접근이 오원의 인간적인 면모를 약화시켰다는 점은 이 영화의 아쉬움이라 할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경주 양동마을, 제천 갈대숲, 석모도, 동강, 영종도, 선암사, 뱀사골은 이 가을에 훌쩍 떠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또 영화 속 '이별가'는 이 영화의 별미이다.



글/ 정준모(미술비평, 국민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