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양현미술상조각의 새로운 언어로 현실 고찰, 현대인의 불안 과잉 표출

양현재단이 제정한 양현미술상의 심사위원단인 캐시 할브라이시 뉴욕현대미술관 부관장(왼쪽부터)과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수상자인 독일의 이자 겐즈켄, 카스퍼 쾨니히 루드비히 미술관장
"모든 인간은 '하나의 창'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 조건에 필요한 것은 삶과 사회에 대한 통찰로 예술가는 그러한 것을 가르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자입니다."

양현재단(이사장 최은영)이 수여하는 '제2회 양현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독일 출신의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이자 겐즈켄(61)은 9일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가진 수상 기념 강의에서 자신의 예술세계와 예술가의 역할을 함축적으로 풀어냈다.

강의명인 '열려라 참깨'에 대해서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이야기를 꺼내어 "복잡한 심리 싸움을 거쳐 재물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는 과정을 축약한 주문으로 현대인의 인간관계와 삶의 조건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겐즈켄은 예술은 철학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학교수업 밖의 수련, 국제적 교류도 중요하다며, 요즘 젊은 작가들은 너무 조급하다고 말했다.

겐즈켄은 1980년대 이래 등장한 유럽의 주요 현대미술가 중 한 사람으로 1948년 독일 바드 올데스로에서 태어나 함부르크예술학교, 베를린예술대학교 등에서 수학했으며 1976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도큐멘타, 베니스 비엔날레, 뮌스터조각프로젝트 등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이즈 겐즈켄 'Red-grey open Ellipsoid'(왼쪽부터), 이자 겐즈켄 'Fuck the Bauhaus/New Building for New York 4', 이자 겐즈켄 'Hospital(Ground Zero)'
겐즈켄 예술의 출발이자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을 토대로 시공과 사회구조, 인간 관계성을 해석해내는 방식이다. 그의 작업에는 동시대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제반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 담겨있으며, 작가 개인적 요소들과 건축, 모더니즘, 미술사 등이 결합된 작품들로 유명하다.

겐즈켄은 70년대에는 일체의 장식이나 표현을 배제한 채 재료의 개별성을 통해 작품이 놓인 공간 자체를 조각적 경험의 일부로 만드는 미니멀리즘 작가로 출발해 '타원체' 등의 시리즈를 남겼다. 80년대 들어서는 20~30년대 러시아 구축주의와 바우하우스의 특성을 살려 일상의 오브제를 차용한 건축적인 조각작업을 시도했고 90년대 이후에는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우연적 효과를 내는 콜라주와 아상블라주(3차원적 입체) 방식으로 일상적 디자인과 건축성에 주목한 조각, 설치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겐즈켄은 우리 주위의 평범한 재료들을 혼합해 만든 작품 속에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의식을 독특하면서도 예리하게 담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질문화의 폐허에 관심이 많은 그는 동물의 머리, 형광 플라스틱, 스프레이를 뿌린 솔방울, 콘크리트 블록, 유리, 우산 등 다양한 재료를 조합해 의외의 작품을 만든다. 이를 통해 현대사회의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에 대한 비판과 함께 현대인의 존재에 대한 불안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령 '병원(Hospital)'(2008)이라는 작품에 대해 겐즈켄은 "뉴욕의 9·11테러 이후 그라운드 제로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을 했는데 폐허가 된 그곳에 높은 탑 모양의 건축물이 아니라 교회·병원·디스코텍 등 규모가 작고 서로 연계된 건물들이 들어선 작품을 구상했다. 장소가 가진 눈물자국, 비극성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방치되거나 사용하지 않는 재료들을 좋은 방향의 오브제로 썼다"고 말한다.

겐스켄의 작업에 대해 양현미술상 심사위원인 카스퍼 쾨니히 루드비히미술관 관장은 "끊임없이 하이퍼모던(hypermodern)을 추구하는 겐즈켄은 우리의 존재에 대한 불안과 과잉을 최전선에서 다룬다"면서 "전통적 조각, 미니멀아트, 개념미술에 대한 암시, 그리고 환각적인 요소들은 현대미술을 둘러싼 최근의 담론에 있어 그를 독특하고 영향력있는 위치를 차지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심사위원인 캐시 할브라이시 뉴욕 현대미술관(MoMA) 부관장은 "겐즈켄은 동시대 삶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형식적으로 재창조하며 무게감과 진지함을 지닌 작품을 선보여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겐즈켄은 회화와 건축물 같은 양식 간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을 만들고 조각의 새로운 언어를 창출한 작가로서 혁신성과 끈기를 갖고, 미술시장에 호소하기보다 자기 양심에 당당한 작가로 오늘날 젊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중요한 작가에게 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양현미술상은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양현미술상은 예술 애호가였던 고(故)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의 유지에 따라 한국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세계적인 미술가를 양성하기 위해 지난해 제정되었다. 전 세계 중견예술가 중 국제적 명성의 심사위원단과 자문단의 추천을 받아 수상작가 후보를 선정하며 수상자에게는 상금 1억원과 함께 3년 안에 원하는 시기ㆍ장소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게 지원한다.

이날 양현재단 최은영 이사장은 "지난해에 이어 2009년 양현미술상 수상자로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는 귀중한 예술가의 작품활동을 지원하게 돼 기쁘다"면서 "양현미술상의 근본 취지는 예술지원을 통한 사회공헌 실천으로 국적이나 작품의 장르 구분 없이 뛰어난 재능을 갖춘 예술가들을 지원함으로써 한국미술이 국제무대에서 중심축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작은 발판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2007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대표작가인 겐즈켄의 작업 35년을 중간결산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올해 4월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열린데 이어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 독일 쾰른의 루드비히미술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