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바흐 페스티벌바로크 시대를 완성한 두 작곡가 음악적 조우… '서로 다름'에 초점

아스페렌(위), 게힝어칸토라이&바흐콜레기움
바흐와 헨델은 마치 하나의 이름처럼 함께 자주 오르내리는 음악가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두 명의 작곡가는 1685년에 독일에서 태어났고 말년에 같은 외과의사에게서 눈 수술을 받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둘의 행보는 같은 시대, 같은 직업, 비슷한 장소에서 활동했다고 보여지지 않을 만큼 다르다.

교회음악에 전념하며 건반악기 주자이자 다성음악 작곡가로 알려진 바흐와 달리 상업적 성공에 주력했던 헨델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로 유명세를 탔다. 영국에 정착한 헨델은 마침내 영국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존경을 받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지만 바흐는 멘델스존이 그의 가치를 재발견해 내기 전까지 잊혀진 존재였다. 살아 생전에 단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던 그들이 음악으로 조우하고 있다. 제3회 국제바흐페스티벌을 통해서다.

격년제로 열리는 국제바흐페스티벌은 올해의 테마를 '바흐와 헨델'로 정했다. 바흐와 동시대를 살다간 헨델의 서거 250주기를 기념하기 위함이다. 주최측인 한양대 음악연구소는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빛나던 바로크 시대를 완성한 두 작곡가의 '서로 다름'에 초점을 맞추었다. 학술심포지엄과 더불어 바흐와 헨델 음악의 스페셜리스트들이 차려내는 고음악 성찬은 귀의 호강을 넘어, 정신적 허기마저 채우는 듯하다.

축제의 첫 막은 유럽의 고음악계가 반한 소프라노 임선혜가 걷어 올렸다. 10월 16일과 17일, 각각 헨델과 바흐를 기리는 레퍼토리로 유럽 고음악계의 주목받는 신예 지휘자인 매튜 홀스가 레트로스펙트 앙상블을 이끌고 임선혜와 호흡을 맞추었다.

이번 축제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공연은 평생을 바흐에 헌신해 온 헬무트 릴링의 공연이다. 칼 리히터와 더불어 바흐 해석에 양대 산맥으로 군림해 온 그. 자신이 이끄는 합창단 게힝어 칸토라이와 바흐 콜레기움 슈투트가르트, 그리고 70여 명의 솔리스트와의 첫 내한공연이다.

임선혜(왼쪽부터), 헬무트 릴링, 홉킨슨 스미스
'바흐의 대사(大使)'로 불리는 그는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으로 바흐의 초기 칸타타와 모테트, 마니피카트에서 대표적인 한 곡씩 선정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여기에 헨델의 초기 대표작인 '딕시트 도미누스'를 더해 이번 축제의 테마에 맞추어 바흐와 헨델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 배려했다.

쳄발로와 류트로 각각 열리는 독주회는 쳄발로와 류트 거장의 연주를 통해 고악기의 매력에 흠뻑 취해볼 수 있는 자리다. 쳄발로에서 발현되는 예술의 정점 오른 봅 판 아스페렌의 쳄발로 독주회는 프로베르거, 퍼셀, 헨델, 푸랑수아 쿠프랭, 그리고 바흐에 이르기까지 쳄발로 음악이 만개했던 시기의 음악을 들려준다.

러브콜 4년 만에 단 한 차례의 연주를 위해 내한한 홉킨슨 스미스는 류트가 가진 기품과 예민함을 가장 잘 표현하는 연주자로 꼽힌다. 류트의 여린 흔들림까지도 연주에 담아낼 줄 아는 그의 류트 연주는 이제 완전히 무르익었다는 평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엔 당대 연주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언젠가부터 조르디 사발, 필립 헤레베레, 르네 야콥스 등 고음악 지휘자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게 됐다. 그 시작이 언제였는가를 따라 올라가보면 국제 바흐 페스티벌과 만난다. 조르디 사발과 필립 헤레베레도 이 축제를 통해 내한공연을 했고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역시 국제 바흐 페스티벌에서 국내 초연했다.

당시만 해도 낭만음악과 고전음악이 클래식 레퍼토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 불어온 신선한 바람이었다. 이제 당대 연주는 유행을 넘어서, 클래식 음악계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제 바흐 페스티벌이 5년 사이에 이룬, 결코 작지 않은 성과다.

"학교의 도움이 전혀 없기 때문에, 페스티벌을 한번씩 할 때마다 휘청인다"는 한양대 음악연구소 소장 권송택 교수(한양대 음대)는 "이 축제 덕에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한양대 관현악과에 학생들로 이루어진 고음악단체(콜레기움무지크한양)도 생겼다. 모던 악기만 하던 학생들이 고음악에 매력을 느끼고, 아예 전공을 바꿔 네덜란드로 유학을 간 학생도 세 명이나 된다"고 이 축제를 통해 달라진 점을 말했다. 권 교수는 또한 "국제 바흐 페스티벌이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세계 최고의 연주자들이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 바흐 페스티벌을 눈 여겨 볼 만한 이유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