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미술이야기] 영화 와 뭉크, 만테냐, 자코메티 그리고 반 아이크인간의 자유와 통제·억압에 저항 미술품 통해 상징적 의미 강조

1- 만테나 'St. Sebastian', 1506 2- 뭉크 '사춘기'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어렸을 적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재미있게 보았던 공상만화 속 장면들 하나하나가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면 어쩐지 우리에게 막연하게 느껴지던 미래라는 것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다가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인류문화의 역사이자 보물로 다루어지는 값비싼 미술품들은 미래에 어떤 가치를 인정받을까.

사실 이렇게 미술품의 미래 가치와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를 상상해 보게 된 것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2006년작)을 보면서이다. 3차 세계대전이 끝난 2040년대 이후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런던은 피부색, 성적,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신집중캠프'로 끌려가고 남은 사람들은 감시 카메라와 녹음장치에 의해 감시당하는 폐쇄사회 속에서 마치 오웰의 <1984>처럼 통제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모두가 체제에 순응할 뿐 불만을 토로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채 평온할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밤 통행금지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섰던 '이비'가 위험에 처하고 이때 V가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가공할 힘과 무예 그리고 두뇌를 가진 이 인물은 400년 전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려다 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V'라는 이니셜로만 알려진 의문투성이의 사나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 <헨리 5세>의 대사들과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인용해서 말하기를 즐기는 그는 압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계몽하고 악을 응징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혁명을 꿈꾼다. 그리고 '이비'는 그를 알아가면서 점점 그에게 그리고 혁명에 빠져 들어간다. 그리하여 V는 영국 성공회의 박해를 끓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자 했던 가이 포크스의 실패한 혁명과 그의 좌절을 기리기 위해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장식하고 포크스의 가면과 인형이 전국적으로 팔려나가는 그날 즉 2040년 11월 5일, 일명 '화약 음모 사건'의 날에 시민들을 집결시킨 가운데 국회의사당을 폭파시킬 계획을 세운다.

이 영화는 앨런 무어와 데이비드 로이드가 공동 창작한 동명의 그래픽소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81년 영국의 월간 만화잡지<워리어>를 통해 처음 선보여 1984년 26회까지 연재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중간에 잡지가 폐간되어 연재가 중단되었다. 그 후 1988년 DC 코믹스에 의해 완간 된 후 1990년 원래의 흑백버전에서 칼라버전으로 재 간행되었고 그래픽 소설로도 출간되었고 국내에도 만화로 출간된 바 있다.

3- 'V for vendetta' 영화의 한 장면 4- 브이가 얼굴에 쓴 가이 포크스 가면 3- 화가 달리의 초상
그 후 영화 <매트릭스>(1999)로 잘 알려진 앤디와 래리 워쇼스키 형제가 영화로 제작했다. 이 영화에는 <매트릭스>에서 '미스터 스미스' 역을 맡았던 휴고 위빙이 '브이' 역을, <스타워즈>에서의 나탈리 포트만이 '이비' 역을 연기했다. 감독으로는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조감독이었던 제임스 맥테이그가 감독으로 데뷔해서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워쇼스키 형제와의 인연 때문에 <매트릭스>와 매우 흡사한 서술구조를 지닌다. 특히 독서선택권, 그림을 선택해서 볼 권리, 정부가 완벽하게 통제하는 언론 등 완벽하게 통제된 <브이 포 벤데타>속 사회는 인공 자궁 속에서 기계에 의해 통제되는 가상현실을 살아가는 <매트릭스>와 매우 닮았다. 또 영화 속 V와 모피어스, 이비와 네오는 이름 만 다를 뿐 성격이나 극중 역할이 너무나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모든 개인은 개인으로서의 권리와 체제 순응성에 저항할 권리이자 의무가 있다."는 매우 정치적인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또 "국민이 국가를 두려워하고 국가가 국민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이 국가를 감시하는 것"이 올바른 국가와 국민의 관계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트릭스와는 다른 아날로그적 재미가 매우 흥미롭게 이어진다.

특히 자유에 대한 희구와 통제와 억압에 대한 저항은 인간의, 인류의 절대적인 권리라고 주장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절대 불변의 절대적 가치를 지닌 미술품을 통해 그 상징적 의미를 강조한다.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은 인류가 미술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이비'를 데려갔던 V의 은신처의 '그림자 갤러리'에는 세계 각국의 주요 미술관에서 가져왔음직한 시대와 양식을 초월한 미술품들이 즐비하다.

얀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1934년, 국립미술관, 런던, 영국)과 뭉크(1863~1944)의 <사춘기>(1895년, 오슬로 국립 미술관), 만테냐(1431~1506)의(1506년)와 현대적인 쟈코메티(1901~1966)에서 고대 그리스의 조각까지 수 많은 미술품들이 그의 신념을 뒷받침 하듯 배경을 이룬다.

여기서 카메라에 자주 잡히는 <아르놀피니의 결혼>은 한국영화 <거울 속으로>에서도 차용된 인간이 가졌던 종교적 믿음에 대한 상징들로 가득한 그림이다. 이런 때문에 그의 부당한 권력과 압제에 대항하는 방식으로서의 테러는 이 그림의 상징적인 요소들만큼이나 가치가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또 기독교도라는 이유로 사살당했지만 다시 살아나 왕에게 복음을 전파했다는 세바스찬을 그린 그림은 V의 소신과 결의를 대신한다. 또 '이비'가 등장할 때 마다 뒤에 배경을 이루는 뭉크의 <사춘기>는 V의 저항과 테러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운명적으로 수용하는 '이비'의 심리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발가벗은 소녀가 두 손을 모아 가슴을 가린 채 침대에 걸터앉은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그림은 사춘기를 맞는 소녀가 새로운 몸의 변화로 인해 두려움과 모종의 슬픔이 담진 눈빛이다.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그녀는 익숙한 자신의 방마저 낫선 표정이다.

또 그 뒤에 드리운 그림자는 더 더욱 그녀에게 변화에 대한 수용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녀의 심리상태를 적확하게 짚어내면서 그림 속 소녀는 영화 속 '이비'가 된다. 여기에 V가 쓴 '가이 포크너'의 얼굴을 닮은 가면은 한 가지 표정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묘한 미소가 기괴한 느낌을 주는데 그가 화상으로 망가진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썼다는 이 가면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달리(1904~1989)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그는 의식 속의 꿈이나 환상의 세계를 마치 현실세계에서 본 듯 또는 존재하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지녔던 화가로 평생 멋진 수염을 기르고 기행을 취미로 삼으면서 이중적 자아의 단면을 화면에 쏟아냈던 모습이 V의 모습과 묘하게 중첩된다. 그리하여 가면은 V를 인간적인 고민으로부터 차단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차이코프스키(1840~1893)의 <1812년>의 서곡은 영화의 스케일을 넓힌다. 역시 이런 점 때문에 영화를 종합예술이라 부르는 것 인가보다.



글/ 정준모(국민대 초빙교수, 문화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