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우스' 등 9편 12월 1일부터 11개월 대장정 돌입

지난해 대학로의 연극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꾸준히 관객들이 찾아오는 스테디셀러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염쟁이 유씨>, <라이어> 같은 작품이다. 다른 하나는 '연극열전'이다. 2004년 등장해 1년간 관객 17만 명을 끌어 모으며 대학로에 이변을 일으킨 '연극열전'은 지난해 시즌 2로 관객 27만 명, 매출 40억 원을 기록하며 한국 연극계에서 흥행신화를 썼다.

오는 12월 1일부터 11개월간의 대장정에 돌입하는 연극열전3은 지난해 연극열전2의 기록을 갱신하는 동시에 연극계에 새로운 기록을 남기는 데 중점을 뒀다. 연극열전2보다 1편 줄어든 9편으로 구성됐지만 대신 연극열전의 한계로 지적됐던 작품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치중했다는 인상이다.

공연작품은 크게 고전 명작, 타 장르 원작의 무대화, 해외 초연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작품으로는 피터 쉐퍼의 <에쿠우스>가 선보인다. 영화,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장르에서 각색되어 공연 중인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도 라인업에 포함됐다.

특히 <에쿠우스>는 송승환과 조재현이 마틴 다이사트, 정태우가 앨런 역을 맡아 이번 시즌 3에서 최고 흥행작으로 물망에 오르는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연출가로 데뷔하는 조재현은 유독 <에쿠우스>와 인연이 많다. 1991년 8개월간이나 앨런을 연기하고 13년 후 '연극열전'에서 또다시 같은 역에 도전한 바 있다. 새로운 앨런으로 출연하는 정태우는 그동안 사극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를 깨고 전혀 다른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원작을 연극 무대로 옮긴 다음 두 작품은 인기작가의 검증된 텍스트라는 점에서 관객의 흥행이 기대된다. 소설가 김영하의 원작 소설 <오빠가 돌아왔다>는 <삼도봉 미스토리>, <강철왕>, <마리화나> 등을 연출한 대학로 이야기꾼 고선웅 연출이 연극으로 만든다.

1. '돌아온 엄사장' 2. '리타 길들이기' 3. '쉐이프' 4. 개막작 '에쿠우스' 5. '잘자요 엄마'
<오빠가 돌아왔다>는 현재 지현우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 중이어서 관객 반응에 따라 <살인의 추억>이나 <왕의 남자>와 같은 연극-영화의 동반흥행도 노려볼 만한 작품이다. 방송작가인 노희경의 원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1996년 MBC 특집 드라마로 만들어져 눈물샘을 자극했던 작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등을 연출한 이재규 프로듀서의 연극 연출 데뷔작으로 흥미를 돋운다.

해외 초연작의 구성 역시 연극열전3이 흥행성과 참신함의 겸비를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부분이다. <웃음의 대학>으로 유명한 미타니 고우키의 새 코미디 <너와 함께라면>이 <웃음의 대학> 초연을 함께 했던 이해제 연출의 손을 통해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다. 출산과 육아 등에 대한 체험담으로 꾸며진 캐나다 주부들의 이야기 <엄마들의 수다>는 한국적 상황에 맞게 각색돼 초연된다. 이 작품 역시 오프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김영순 연출의 국내 데뷔작. 작품은 안전하게 가되 연출계의 젊은 피 수혈을 통해 참신함을 선보이겠다는 것이 연극열전3의 속내다.

연극열전이 선택한 특별한 무대 '연극열전 Choice'에서는 수작이지만 묻히게 될 수도 있는 작품을 선정해 '연극열전' 시리즈의 정체성을 다시 다지고 있다. 올해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올랐던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 류주연의 연출로 다시 한 번 관객들을 만나는 것.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평범한 부부들의 삶과 고민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내용이 당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또 일본의 동명뮤지컬을 한국형 주크박스 뮤지컬로 새롭게 선보인 창작뮤지컬 <트라이앵글>도 준비해 작품 선택의 폭을 넓혔다.

연극열전 시즌 1도 대학로에 신선한 바람으로 다가왔지만 시즌 2가 95% 예매율의 흥행신화를 쓴 것은 조재현이라는 스타배우가 프로그래머로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 유효했다. 일종의 홍보대사 역할까지 했던 시즌 2의 장점을 배가해 이번 연극열전3에서는 연출 데뷔도 하면서 시즌 2 이상의 흥행을 예상케 한다.

연극열전2의 성공비결은 이번 시즌 3 개막작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또 검증된 명품연극을 약간의 실험성을 더해 재미와 참신함의 매력을 확보한 채 진행한다는 점도 관객의 흥미를 이끄는 부분이다.

하지만 연극 열풍을 일으킨 연극열전이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우려를 산 것은 이 같은 흥행독주 때문만은 아니다. 연극열전의 스타마케팅은 대학로에 관객들이 찾아오게 만들었지만 정작 해당 작품에서 스타가 빠지면 관객이 바로 외면하는 부작용도 낳았다. 전업배우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지난해 시즌 2의 흥행 대박 이후 조재현 프로그래머는 이 같은 경향에 대해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는 연극계에 할 수 있는 '극약처방'이라고 자평한 바 있다. 이번 연극열전 3은 연극계에서 흘러나오는 지적에 부응해 작품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맞춘 흔적이 엿보인다.

연극열전의 관계자는 "스타 없이도 연극이 성공하는 날이 올 때까지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연극열전의 역할"이라고 말하며 "그런 의미에서 올해 공연작도 스타 캐스팅의 비율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고, 해외 고전 명작이나 <경남 창녕군 길곡면> 같은 작품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로에서 '연극열전'이 가진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해 조재현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한때는 연극 자체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과제였다. 그러나 이제 연극계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현재, 변화하는'연극열전'은 다시금 연극의 정체성에 대해 되새김질 하게 한다. 연극의 본령은 스타이기에 앞서 좋은 배우와 완성도 높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