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미술이야기] 영화 과 풍경화아름다운 정원에서의 음모와 풍경화의 탄생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속 풍경
미술사에서 풍경화가 독립된 회화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유럽에서다. 물론 풍경화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그림의 배경을 이룰 뿐 전면에 나서지는 못하다 17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에서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았다. 이는 영국에서 영국식 정원이 크게 발달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만들어진 풍경'으로서의 정원을 통해 이상적인 풍경, 자연을 내세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이탈리아의 정원이 이상주의적이었다면 프랑스의 정원은 매우 기하학적이며 형식주의적이었다.

반면 영국의 정원은 프랑스의 그것과는 달리 매우 자연스럽고 치장하지 않는 '본래의 자연'을 추구했다. 이들 정원은 이탈리아 회화에 등장하는 정원 그림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풍경화는 단순한 자연의 경치가 아닌 일정한 법칙에 의해 선정되고 배치된 것으로 인간의 손길이 닫지 않은 야생의 자연이기보다는 되려 인간에 의해 개발된 자연이었다.

그래서 '정원을 그린 그림'과 그 '그림을 바탕으로 조성된 정원'은 서로 상부상조하는 시스터아트(Sister Arts)로 발전되었다. 일부 풍경화는 자신의 영지 또는 토지를 관리하는 등기부 같은 역할을 위해 또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할 목적으로 그려지기도 했는데 영화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1982)은 귀족들이 세속적인 토지 즉 정원을 두고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은폐할 목적으로 풍경화를 그리게 하는 음모를 통해 그들의 위선과 은폐된 욕망의 일단을 드러내면서 익명의 권위적인 집단의 폭력성을 부각한다.

사실 이 영화는 우리에게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녀의 정부>(1989)의 감독으로 더 알려진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작품답게 매우 어려운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고난이도를 자랑한다.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 분석 또는 해부 그리고 조합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관객에게 다가오는 영화이다.

대표적인 영국식 공원 Chiswick House(위), 영화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의 한 장면
귀족들이 자신을 과시하려고 화가들을 고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던 왕정복고시대인 1694년 여름 영국의 켄트 주에 위치한 한 귀족의 영지에 화가인 네빌(한토니 히긴스)이 허버트부인(자넷 수즈만)의 정원을 그려달라는 청에 의해 나타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네빌은 허버트 부인의 남편이 여행을 간 동안 그의 영지를 12등분해서 세밀하게 그려 달라는 주문 대신 600기니라는 많은 보수와 함께 화가와 사적으로 함께 있을 때 모든 요구를 들어준다는 특이한 조항까지 포함된 계약을 맺고 풍경화 그리는 일에 착수한다. 그는 보이는 것은 모두 정확하게 화폭에 옮겨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풍경마다 엄격한 통제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틈틈이 계약대로 허버트 부인과 은밀한 관계를 계속한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동안 허버트 부인의 사위이자 오만하기 이를데 없는 독일인 귀족 탈만(휴고 프레저)이 그림을 그리는 내내 쫓아다니면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 네빌과는 앙숙이 된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동안 네빌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전날에는 보지 못했던 이불 홑청, 정체불명의 셔츠, 2층 창턱에 걸쳐진 사다리 등이 정원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모두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네빌은 투덜대면서도 이들을 모두 그림에 담는다.

그림을 모두 그려갈 즈음 여행을 떠났다던 집 주인 허버트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채 발견되고 탈만의 아내이자 허버트 부인의 딸인 탈만부인(앤 루이스 램버트)이 나타나 그의 그림 속에 살인과 관련된 각종 암시가 있고, 이는 허버트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라며 보호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자신과 잠자리를 할 것을 요구한다.

열 두 장의 그림을 모두 마친 네빌은 잠시 영지를 떠나지만, 열 세 번째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시 돌아오고 허버트 부인에게 화해를 청한다. 이 자리에서 네빌은 그 집안의 모녀가 영지를 상속할 후손을 얻기 위해 그를 단순히 종마로 이용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둠이 내린 정원에서 그림도구를 챙기는 네빌 앞에 복면을 한 일군의 귀족무리가 나타나 그를 죽이고 만다.

영화는 크고 넓은 허버트 백작의 영지를 12등분해서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줄거리이다. 하지만 12장의 그림은 영화 속 12개의 에피소드로 나뉜다. 이 12장의 그림이 완성되는 동안, 정원과 정원 속에서 벌어지는 귀족들의 사치와 음모, 은닉된 욕망들을 드러낸다. 그리고 화가 스스로도 그들과 한 통속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림 속에는 화가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백작의 죽음의 전말이 암암리에 그려져 있다.

즉, 화가는 백작의 살해음모와 그 과정을 목격한 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음모에 의해 희생된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일까? 허버트 부인? 탈먼 부인? 정원을 상속받으려는 탈먼? 아니면 애인을 허버트의 아내로 빼앗긴 집사? 하지만 영화는 그들을 누가 죽였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끝난다. 왜냐하면 감독에게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가이자 감독인 피터 그리너웨이는 17세기 영국 귀족의 정원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통해 음모와 배신, 성과 탐욕 그리고 그들의 위선을 화려한 의상과 웅장한 건축, 경쾌한 음악을 결합시켜 매우 시니컬하게 그려낸다.

그는 미술공부를 마치고 영국의 영화연구소(BIF)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서 영화편집자로, 16㎜ 단편영화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영상어법 자체가 기호와 상징으로 가득 찬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으로 현대 기호학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영화는 지금껏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 영화 속에 대중적, 오락적 장치인 추리와 코미디 같은 요소들을 집어넣어 보통사람들에게까지 이름을 알려 이제는 그의 이름만 들어가도 영화를 보러가는 마니아층이 형성되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다중적인 장치와 코드들로 인해 알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그는 최근 화가 렘브란트의 생애와 작품을 소재로 두 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이 영화의 큰 골격은 화가의 눈을 빌려 역시 인간의 위선과 음모 그리고 욕망을 보여주며 관객들은 추리기법(?)을 통해 이를 읽도록 장치한다.

아무튼 우리에게 생소한 정원에 대한 이해는 미술사의 풍경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그림 같은 정원'과 '그림 속 정원'은 깊은 상관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영국은 르네상스시대를 맞으면서 중세풍의 성을 중심으로 한 정원에서 테라스를 도입하는 등 밝고 다채로운 방향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부를 이루자 프랑스나 국적불명의 정원양식을 버리고 자신만의 정원양식을 만들어 나간다. 여기에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계몽주의와 '이탈리아 풍경화'의 유행, 동양문화의 전래, 낭만주의를 바탕으로 영국의 목가적 전원풍의 '풍경식' 정원 양식이 완성되어갔으며 이는 '신의 정원'인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려는 생각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 아름답고 소탈한 자연 그대로를 반영한 영국식 정원이 욕망과 탐욕 그리고 위선과 허영으로 결국 처절한 살인의 무대가 되어야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은 영원히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글 정준모(문화정책, 국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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