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집' 국내 출간… 헤르만 헤세 등의 작품과 뒷이야기 공개

헤르만 헤세와 그의 집(위)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그의 집필실
'나는 이곳에 갇혀 지냈다. 물론 두렵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집은 글쓰기의 집이 되었고 내 책들은 이곳에서 탄생했다.'

<연인>(L'amant)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자신의 집을 이렇게 소개했다. 작가에게 집은 휴식과 독서의 장소, 노동의 장소다. 무엇보다 문학이 탄생하는 매혹적인 공간이란 점에서 장소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작가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그 공간에서 어떤 작품이 태어났을까?

저널리스트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가 작가 20인과 이들의 집을 소개한 책 <작가의 집>을 국내 출간했다. 헤르만 헤세부터 마크 트웨인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집에서 태어난 작품과 뒷이야기를 공개한다.

헤르만 헤세의 카사 카무치 집필실

헤르만 헤세는 1919년 아내와 별거 후 스위스의 작은 마을 몬타뇰라에 들어가 수채화를 그렸다. 스위스 루가노 호수를 에워싼 언덕에 자리한 몬타뇰라 마을, 좁은 길모퉁이에 헤세가 머물렀던 카사 카무치 성이 있다. 티치노 출신 건축가 아고스티노 카무치가 1860년경 지은 집이다.

버지니아 울프와 그의 서재(위)
마크 트웨인과 그의 침실
그의 아들 하이너는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고는 글을 쓸 수 없었다. 카사 카무치에서 지낼 때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였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헤세는 이곳에서 "낮에는 내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저녁에 쓴다"고 누이 아델에게 편지를 쓴다.

전쟁(1차 대전)의 비참한 체험, 아내와의 이별, 카사 카무치를 둘러싼 아름다운 풍광이 한데 모여 헤세의 작품 세계는 '내면 여행'이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클라인과 바그너>, <클링소어의 마지막 여름>, <싯다르타>, <황야이 늑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 헤세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카사 카무치에서 나왔다. 특히 이곳의 분위기는 <클링소어의 마지막 여름>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이 큰 방은 거의 비어 있었다. 타일 바닥에 의자 몇 개와 해체된 그랜드피아노 부품들이 널려 있을 뿐, 두 개의 문은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발코니 쪽으로 시선을 유도했다'(<클링소어의 마지막 여름> 중에서)

헤밍 웨이, 별장 같은 키웨스트 하우스

미국 플로리다주 남부 도시 키웨스트, 이곳은 헤밍 웨이가 1931년부터 39년까지 수 많은 작품을 집필한 곳이다. 1851년 부유한 선주가 스페인 식민지풍으로 지었던 집은 경제위기를 겪으며 폐가로 전락했고 헤밍웨이의 열성팬이자 아내의 숙부였던 '거스 파이퍼 숙부님'이 헤밍웨이 부부에게 이 집을 선물한다. 부부는 1931년 크리스마스부터 그 집에서 살았다. 집 뒤 외따로 별채가 있는데, 밖으로 철제 게단이 나 있는 이 방은 집필실이 됐다. 그는 몇 년 간 엄격한 규칙을 세우고 이곳에서 하루 6시간 씩 일했다.

"책이나 단편 작업을 할 때는 동트자마자 최대한 일찍부터 글을 썼다. 활력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어떤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글을 쓰면 그 다음은 저절로 보인다. 그러면 비로소 글쓰기를 멈추고 다음날까지 살아 있기 위해 노력한다."

<오후의 죽음>, <아프리카 푸른 언덕>, <가진자와 못 가진 자>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첫 부분은 모두 이 곳에서 나왔다. 헤밍웨이는 1936년 쿠바와 이곳을 배경으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매달려있었는데, 1936년 가족이 이 곳을 잠시 떠난 사이 여류작가 마사 겔호른과 눈이 맞는다.

아내 폴린은 남편을 되찾기 위해 이듬해 키웨스트 자택 정원의 야자수 사이 큰 수영장을 만든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1939년 쿠바의 아바나로 떠나고 이곳에서의 행복을 끝난다. 그는 다시 새로운 상대, <타임>지의 지가 메리 웰시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결혼한다.

버지니아 울프, 몽크스 하우스

서식스 주 로드멜 끝자락에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집은 일명 '몽크스 하우스'(수도사의 집)으로 불린다. 그녀는 이 집을 "불안하게 요동치지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글쓰기의 파도 위로 자신을 싣고 가는 배"라고 칭했다.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 담벼락에 붙여 지은 오두막에 그녀는 매일 아침 8시 30분이면 세 시간 연속 일을 하러 갔다. 작품 <등대로>와 <파도>에서 이 집을 묘사하기도 했다.

작품들이 연달아 성공을 거두며 작가는 몽크스 하우스의 방을 보수하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1926년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시인 겸 소설가 비타 백빌웨스트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수세식 화장실 두 칸을 지었는데 하나는 <댈러웨이 부인>의 인세로, 다른 하나는 <일반독자> 인세로 대금을 치렀어."

2년 뒤에는 <올랜도>의 인기에 힘입어 집 측면에 별관을 내어 자기 침실을 따로 꾸몄고 1931년에는 <파도>의 인세로 전기 설비를 들여 놨다. 런던 활동 시절 동생과 함께 결성했던 '블룸즈버리 그룹'의 멤버들을 이곳에 초대했는데 이 친구들 중에는 미술비평가 로저 프라이, 버지니아의 연인 오톨라인 모렐부인, 경제학자 메이너드 케인스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 집이 가져다 준 기쁨만큼 슬픔도 강렬해서, 1930년경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버지니아 울프는 수시로 폭격이 일어나는 런던을 멀리하고 자신의 몽크스 하우스 방으로 칩거한다. 심장에서 일어나는 고통의 물결이 한번 시작되면 견딜수 없는 우울증에 빠졌다. 1941년 3월 그녀는 오우즈 강가에서 투신자살한다. 몽크스 하우스 서재에는 남편 레너드와 언니 바네사에게 쓴 편지가 남겨져 있었다.

마크 트웨인, 하트포드 저택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 위치한 마크 트웨인의 집은 교회건축으로 유명한 건축가 에드워드 터커먼 포터가 1873년부터 1874년까지 지은 집이다. 지역 신문의 표현을 필리면 '주 전체를 통틀어, 아니 어쩌면 미국에서 가장 괴상한 건축물'인 기 곳은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붉은 벽돌 집으로 큰 탑과 작은 탑, 굴뚝, 발코니, 차양을 친 베란다,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는 큰 문이 있었다.

1층 나무 계단과 거대한 홀을 둘러싸고 여러 거실이 있었고, 위 층에는 여러 개의 침실과 입주 초기 마크 트웨인이 집필실로 썼던 방이 있다. 하지만 바로 옆 아이들 방에서 나는 소리에 산만해졌기 때문에 그는 집필실을 맨 위층 지붕 아래 방으로 옮겼다.

1874년부터 75년, 작가는 매일 50장씩 이 곳에서 원고를 써 <톰 소여의 모험>을 끝냈다. 1976년 출간된 이 소설을 대박을 터뜨렸고 이후 걸작으로 인정받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와 자신의 경험을 담은 <미시시피강의 생활>이 나왔다. 1880년대 말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됐지만, 그가 투자한 회사가 실패하면서 1891년 하트포드 저택을 떠나는 신세가 됐다.

'사랑하는 리비, 하트포드에 도착해서 우리 집 근처로는 가고 싶지 않소. 하지만 현관 문턱을 넘자마자 우리 가족 모두가 이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영영 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에 사로 잡혔소.'

마크 트웨인은 하트포드 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아내에게 편지를 남겼다.

참고도서 : <작가의 집>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루레 지음/ 이세진 옮김/ 윌북 펴냄
사진 제공 : 도서출판 윌북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