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저술상 최초의 작가 연구상, 국제 조각·학술 심포지엄도 열려

왼쪽은 조각가 문신(1923~1995), 오른쪽은 정목일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무대에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1960∼70년대 무렵, 그 선두주자는 백남준과 문신이었다. 백남준은 독일과 미국에서, 문신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였고 현재까지 국제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 가운데 최근 거장 조각가 문신(文信, 1923∼1995)을 새롭게 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우선 학문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지난달 28일, 국내 유일의 미술작가 연구상인 <문신저술상> 수상자들이 가려졌다. 지난해 4월 국내 최초의 작가 연구소인 <문신미술연구소> 개관을 기해 제정된 이 학술상은 문신 예술에 대한 연구풍토를 조성하고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

미술계에서 작가의 화업을 기리기 위한 미술상은 무수히 많지만 작가의 예술세계를 학문적으로 조명하고 이에 대한 시상을 하는 것은 문신저술상이 처음이다. 국내 대표적인 미술상인 원로 미술평론가 이경성의 석남미술상, 조각가 윤영자의 석주미술상, 그리고 이중섭미술상, 이인성미술상, 오지호미술상, 하종현미술상, 김종영조각상 등은 이들의 작품세계에 대한 연구가 아닌 현역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개별 작가에 대한 저서나 논문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이에 따른 시상 역시 허다하지만 특정 작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매년 그 성과를 평가, 시상하는 것은 문신저술상이 유일하다.

왼쪽부터 최영섭 작곡가, 오세영 시인, 박정원 성악가
올해 2회째를 맞은 문신저술상은 대상 수상자로 미술평론가이자 경남문학관 관장을 지낸 정목일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을 선정했다. 최우수상에는 정필주(이화여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우수상에는 이상윤(경기대 강사), 박효진(마산시립문신미술관 학예연구사) 등이 각각 선정됐다.

김복영 심사위원장(한국예술학회 회장, 전 홍익대 교수)은 "이번 제2회 문신저술상은 지난해의 자유공모를 지양하고 지명공모를 실시함으로써 학술의 수준과 논문의 품격을 격상시키려 했는데 기대했던 수준을 확보할 수 있어 기뻤다"고 심사 소감을 밝혔다.

지명공모를 통해 연구자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와 방법론을 중심으로 연구의 학문간 접근과 성과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두었던 것. 그 결과 지난해와 같은 문신의 미술사적 위치보다는 작품의 구조적 측면, 해석적 측면, 문화경영적 측면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등 연구과제와 방법론에서 적지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대상작인 정목일의 '문신 조각의 형태소(形態素)와 작품세계'를 비롯, 최우수작인 정필주의 '문화자본 확충을 위한 방향설정-조각가 문신 그리고 문신예술을 중심으로', 우수작 이상윤의 '욕망과 타부의 접점', 박효진의 '문신 조각 빛나는 생명률의 시어-유기성과 밸런스를 중심으로' 등이 그러한 성과물이다.

김복영 심사원장은 특히 정목일의 논문에 대해 "문신 조각의 형태소와 성격소라는 신개념을 도입해 문신예술에서 다양한 성분요소들을 재발견하고 새로 구축해내고자 했고 이 절차를 치밀하게 전개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문신저술상과 함께 내년에 개최하는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과 '문신국제학술심포지엄'은 문신 예술을 통해 한국미술의 위상을 국내외에 새롭게 각인시켜줄 전망이다. 여기에 기존의 마산시립미술관과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외에 새로 '문신원형미술관'과 '문신아틀리에미술관'이 각각 경남 마산과 경기도 양주에 건립돼 모두 4개의 미술관을 갖는 국내 유일의 작가라는 점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은 내년 3월 즈음 문신의 고향인 마산에서 열리는 국제적 행사로 세계적 조각가들이 내한해 마산에 머물면서 조각을 창작.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끌 전망이다.

문신국제학술심포지엄은 문신 예술을 연구한 세계적 석학들과 국내 학자, 미술가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미술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세계적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론 아라드가 아시아에서 최초로 건립하는 건축물인 문신아틀리에미술관이 완공되는 내년 가을쯤 이곳에서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일련의 행사와 관련, 문신의 부인 최성숙 문신미술관 관장은 "'문신 선생은 살아서 못 다한 예술세계를 부활시켜 민족문화와 더불어 영생하기를 갈망했는데 문신저술상으로 그 기반을 다지게 됐고 국제 조각, 학술대회를 통해 문신 예술을 널리 알리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문신 예술 문학·음악 융합으로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80) 씨는 요즘 흐뭇하고 설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10월 문화의 날(10월17일)에 정부로부터 한국예술가곡을 발전시킨 공로로 은관 문화훈장을 받은데다 전혀 새로운 가곡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최영섭 씨는 1947년부터 60여년 동안 80여곡의 가곡과 합창곡 등을 지어 '가곡 작곡계의 살아있는 역사'로 통한다. 그런 그를 최근 설레게 한 것은 '신선한' 가곡과의 만남이다. 그는 얼마 전 오세영 시인(전 한국시인협회장, 서울대 교수)이 조각가 문신의 작품을 모티브로 창작한 <사랑>이란 시를 곡으로 만들었다.

"사랑은 하나 되는 것 / 한 얼굴에 두 눈이 하나 되듯 / 한 몸에 두 팔이 하나 되듯 / 너와 나 두 심장이 하나 되는 것(중략) 아아, 사랑은 둘이어도 하나인 것 /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 내가 아니라도 좋다 하는 것 / 네가 아니라도 좋다 하는 것"

"시를 보니 단숨에 가슴에 와 닿았어요. 한국 사람 정서에 맞게, 낭만적 느낌이 들게 작곡했어요."

최영섭 씨는 한국예술가곡진흥위원회 공동대표로 시를 만나게 됐고 한국적 낭만, 한국적 정서를 담아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전주에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느낄 겁니다." 그의 말에 문득 감미로운 선율과 곡 전체를 감도는 서정미가 특색인 <그리운 금강산>이 떠오른다. 이렇게 미술, 문학, 음악의 거장들에게서 탄생한 가곡 <사랑>은 내년 마산에서 열리는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 행사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에 앞서 11월 18일에는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에서 미술, 문학, 음악이 어우러진 '문신가곡의 밤' 행사가 펼쳐진다. 중견 시인인 황금찬, 허영자, 오세영, 이건청, 고창수, 이명수, 노향림 등이 문신 작품을 소재로 지은 시를 황철익, 임금수, 신귀복, 허방자, 오숙자 등 작곡가들이 곡을 쓰고, 국제적 성악가 박정원을 비롯 고성진, 김영환 등이 성악으로 풀어낸다. 서울아버지합창단은 이중의 시, 임긍수 작곡의 '문신 선생'을 합창한다.

이날 음악제와 함께 문신의 미공개 사인펜 드로잉 특별전이 열리고 김종해, 이건청 시인은 문신을 노래한 신작시를 발표한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