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미술이야기] 영화 와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화가, 무대 미술가 등 다양한 활동으로 생전에 '살아 있는 전설'로 등극

달리, '리틀 애쉬스'. (1927)
'달러에 굶주린 화가'라는 별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무대미술가, 영화감독, 보석디자이너, 판화가, 삽화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력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이미 생전에 '살아있는 전설'로 등극한 살바르도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는 그 자체가 한편의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화가이자 인간이다.

달리는 편집광적인 집착과 광기 그리고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삶과 행동으로 스캔들을 몰고 다닌 사람이었다.

그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기행을 일삼았던 사람으로 영화화하기에 모자랄 것 없는 삶을 살았다. 이와 함께 생전에 미술시장의 중심작가로 부와 명예를 동시에 향유한 몇 안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선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기행을 일삼았는데 오늘 날 데미안 허스트나 제프 쿤스 같은 작가들에게 한 수 가르쳐 준 원조에 속한다.

그의 이런 기행의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1955년 파리에서 열린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흰 롤스로이스에 약 500Kg의 꽃양배추를 싣고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가 이런 스캔들만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든 것은 아니었다.

(좌) 영화 '리틀 애쉬스' 한 장면 (중) 살바도르 달리 '갈라리나' (1944) (우) 영화 '달리와 나, 초현실적 이야기'
그는 S.프로이트(1856~1939)의 정신분석학에 공감해서 의식 속의 꿈이나 환상의 세계를 세밀하고 정교하면서도 자상하게 표현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것이지만 마치 어디선가 보았던 또는 어느 곳에선가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이런 방식의 그림을 스스로 '편집광적. 비판적 방법'이라고 불렀는데 그의 기법은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환각을 객관적이며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20세기 미술사에 그리고 초현실주의 미술운동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매우 조숙했던 그의 이런 행동은 어려서부터 시작되었는데 특히 청소년기부터 인상파나 점묘파, 미래파의 특징을 터득하고 입체파나 키리코(1888~1978)의 형이상회화에 몰입하면서 다양한 화풍을 섭렵하였고 이후 마드리드의 미술학교에 진학한다. 하지만 본인이 채점할 선생보다 미술사에 정통하다는 이유로 답안지 제출을 거부해서 퇴학을 당한다.

1928년 파리로 나가 초현실주의 화가나 시인들과 교유하였고 이듬해 최초의 개인전을 열고, 이때 A.브르통(1896~1966)에 의해 초현주의 그룹의 정식회원이 된다.

한차례 분열위기를 맞았던 초현실주의는 달리와 그의 친구 루이스 부뉴엘(1900~1983)의 합세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특히 달리 특유의 댄디즘과 센세이셔널리즘은 그를 단박에 초현실주의의 대표작가로 만들어준다.

특히 그는 하나의 대상을 2중 3중의 다른 이미지로 보는 병적인 착각을 이용해서 말이 여인의 나체로 보인다거나 하나의 풍경이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것 같은 중복상을 교묘하게 표현했다.

그 후 1937년 이탈리아 여행 후 점차 고전주의에 경도되면서 1939년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되기에 이른다. 그 뒤 연극무대장치와 고급상점의 실내장식, 보석디자인 등의 일을, 1940~55년에는 미국에서 살면서 독특하고 기묘한 행위미술에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종교적인 그림에 손을 대기도하지만 초기 그의 회화적 성과에는 미치지 못했다. 아무튼 20C 미술의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던 그가 84세로 세상을 뜨기 직전 스페인의 시인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와의 관계를 처음으로 밝힌다.

청년시절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했던 달리와 로르카가 서로를 천재라고 인정하며 우정을 넘는 사랑을 나눈 사이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젊은 날의 방황과 도를 넘는 사랑이야기는 영화로 완성되는데 이것이 영화 <리틀 애쉬스, Little Ashes,2008>이다.

달리의 1927년 작품 <리틀 애쉬스>(1927)에서 제목을 따 온 이 영화는 달리의 청년시절 범상치 않았던 삶의 단면을 다루고 있지만 한편 그의 친구인 로르카의 삶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는 18세의 나이에 마드리드 왕립학교에 도착한 달리가 학교에서 로르카와 루이스 부뉴엘을 만나 예술과 사랑을 이야기하며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을 격정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이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담은 청색 빛 물 속 신은 신선한 동시에 상징적이다.

폴 모리슨이 감독한 이 영화에서 달리 역은 영화 <트와일라잇, Twilight>(2008)에 출연해서 10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로버트 패틴슨이, 그리고 자비에 벨트란이 로르카역을 그리고 후에 달리와 함께 영화를 만드는 부뉴엘 역에 매튜 멕널티가 열연했다.

그의 악명 높은 기행은 양쪽 끝으로 틀어 올린 철판을 자른 듯 한 콧수염과 검은 정장에 빨간 넥타이, 황금 손잡이가 달린 지팡이, 살기 번득이는 눈빛 등 독특한 생김새와 옷차림, 행동 그리고 말로 대중들의 관심과 매스컴의 조명을 이끌어냈는데 그의 이런 삶은 영화화하기에 매우 알맞은 소재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 <리틀 애쉬스>이후 달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두 편이나 제작되고 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달리 역을 맡고 사이몬 웨스트가 연출하는 영화 <달리>가 그 중 하나이다.

이 영화는 달리가 미국에 이주한 후의 성공과 스캔들을 다루는데 영원한 동반자이자 모델이며 뮤즈와도 같은 갈라 달리(Gala Dali,1894~1982)와의 관계에 중점을 둘 것이라 한다. 갈라 역은 캐서린 제타 존스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달리에 관한 세 번째 영화는 <달리와 나, 초현실적 이야기>(Dali & I, The Surreal Story)이다. 이 영화에서는 알 파치노가 달리 역을 맡는다.

이 영화는 달리의 후반기 작품들은 대부분 가짜, 엉터리라고 주장하면서 달리는 사기꾼이라고 하는 벨기에 작가 스탄 라우리센스가 쓴 전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렇게 한 작가의 이야기가 거의 동시에 세편이나 제작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렇게 달리의 삶과 예술이 최근 영화화되고 있지만 실은 그와 영화와의 인연은 의외로 깊다.

달리가 꿈속에서 섬광처럼 스쳐가듯 보았다는 축 늘어져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시계를 비롯해서 많은 그림 속 이미지들이 스릴러 영화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히치콕(1899~1980)감독과 협력해서 만든 영화 <스펠바운드, Spellbound, 1954>에서 꿈의 장면에 차용되어 나타난다.

그는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실은 1928년 그의 친구 부뉴엘과 함께 만든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 17분)라는 매우 독특한 초현실주의 기법의 영화를 제작 감독한 영화인이기도하다.

특히 이 영화에서 소녀의 눈을 면도칼로 베는 장면은 여전히 섬뜩한 느낌을 주는데 리틀 애쉬스에서도 이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런 독창적인 생각으로 달리는 새로운 영화미학의 출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또 부뉴엘과 함께 한 <황금시대>(L'age D'or, 1930)는 당시 파리의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들춰낸 영화로 영화가 끝나자 관객들이 화면을 향해 잉크를 던지고 좌석을 찢는 등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항상 초현실의 세계를 거닐면서도 현실에서 모든 것을 구할 줄 알았던 달리는 어쩌면 초현실주의를 파는 장사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글/ 정준모(문화정책, 국민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