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세계적 건축사 주제로 건축인·영화인 그리고 관객과의 만남을 주선

1-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2-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
3-영화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
4-영화 '마천루'
5-프랭크 게리
도시에서의 삶에서 건축만큼 견고하면서도 일상적인 스펙터클이 또 있을까. 그것은 자연을 대체한 문명, 인류가 스스로 삶을 개척한 역사, 이성과 기술의 가능성을 증언하는 이미지이자 체험이었다.

역시 도시의 상징적 문화인 영화가 건축에 느끼는 매혹은 어쩌면 당연하다. 카메라에 담아 큰 스크린에 펼치는 것만으로도 건축은 도시에서의 삶이 어떤 것이고 어떤 꿈으로 지탱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으므로.

건축과 영화의 어울림을 조명하는 영화제가 열린다. 1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광화문 미로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제1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다. 건축의 출발점이자 그 과정에 있어서는 '조물주'인 '건축사(The Architect)'를 주제로 건축인과 영화인, 그리고 관객의 만남을 주선한다. 영화제에서 소개하는 상영작과 그 주인공인 건축사들은 다음과 같다.

미국 자본주의의 이상 <마천루>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영화제의 개막작은 킹 비더 감독의 1949년작 <마천루 The Fountainhead >다. 아인 랜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건축 영화의 고전이다. 하워드 로크라는 천재 건축사가 기존의 건축적 관행, 대중적 취향에 맞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나간다는 내용.

1-영화 '렘 콜하스: 도전과 혁신'
2-렘 콜하스의 카사 다 무지카
3-렘 콜하스
4-영화 '노먼 포스터와 거킨 빌딩'
5-노먼 포스터
6-루이스 칸
7-영화 '마이 아키텍트'
하워드 로크는 단지 고집스러운 건축사가 아닌, 미국식 자본주의가 상정하는 이상적 개인이다. 단순한 쾌락에는 좀처럼 현혹되지 않으며 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인간 이성이 극대화된 인물. 소설 <마천루>의 한 구절은 그의 건축적 이상을 잘 드러낸다.

"저의 규칙은 이렇습니다. 하나의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다른 재료로 결코 만들 수 없다. 두 개의 재료가 똑같은 것은 없다. 지구상에 두 개의 장소가 똑같은 곳은 없다. 두 개의 건물이 똑같은 용도를 가진 것은 없다. 용도와 장소와 재료는 형태를 결정한다. 중심이 되는 하나의 아이디어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으면 합리적이거나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모든 세부 사항을 결정한다. 건축물은 인간처럼 살아 있다. 건물은 그 자체의 진실과 그 자체의 유일한 주제를 추구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자체의 유일한 용도에 맞게 사용된다. 사람은 자기 육체의 조각을 빌리지 않는다. 건물은 혼을 빌리지 않는다. 건물을 만든 사람이 건물에 혼을 주고, 그 혼을 표현할 모든 벽과 창문과 계단을 결정해 준다는 것입니다."

철학자이기도 한 작가 아인 랜드는 <마천루>가 출간된 지 25년이 지난 후 덧붙인 서문에서 자신의 소설의 목적은 "이상적인 사람과 그런 사람이 가능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밝히며 주인공인 하워드 로크의 "의지의 힘"을 찬양하고 있다.

나아가 이런 사람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외부적 조건으로서의 "자유롭고 생산적이며 합리적인 체제, 무간섭주의인 자본주의 사회"를 옹호한다. '건축'이라는 행동이자 산물은 이런 이상향의 메타포인 셈이다. 소설 <마천루>가 일종의 미국사회의 철학적 토대로서 논의되어 온 배경이다.

아인 랜드 자신은 소설 속 어떤 인물이나 에피소드도 실재와 관련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하워드 로크의 엄격하고 간명한 캐릭터는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사"라고 칭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와 엮여 이야기되어 왔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2000년 미국건축가협회에서 선정한 '20세기 10대 건축물' 중 넷이 그의 작품일 정도로 미국 건축사를 대표하는 인물. 독창적인 풍모로 여전히 세계를 매혹시키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대자연과의 유기적인 어우러짐을 구현한 낙수장 등이 대표작이다. 기하학적이면서도 유기적인 그의 건축 형태와 철학은 창조자를 꿈꾸는 많은 건축사들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가장 화려한 현대 건축사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는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건축사 중 한 명인 프랭크 게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절친한 친구였던 시드니 폴락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프랭크 게리의 작품 세계와 작업 환경을 밀착 취재했다.

그의 스튜디오와 작업 과정을 담아내는 동시에 대표작 중 하나인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뒷이야기 등 당대 건축을 둘러싼 사회문화적인 영향관계까지 엿보았다. 유명 인사로서의 프랭크 게리의 인간관계도 흥미로운 볼거리인데 에드 루샤, 줄리앙 슈나벨, 데니스 호퍼 등 미국 현대 미술계의 주요 인물들이 특별 출연한다. 2005년작으로 작년에 유명을 달리한 시드니 폴락 감독의 유작이기도 하다.

프랭크 게리(1929~)는 늘 자유롭고 대담한 작품으로 이목을 끌며 해체주의 건축의 선구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의 역동적이고도 유려한 몸체는 그에게 최고의 명성을 안겨 주었다. 미국 LA 산타모니카의 게리 하우스는 해체주의 건축 양식을 명백하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슈에 목마른 현대 미술계와 패션계에서도 사랑 받는 건축가.

렘 콜하스의 실험적 건축 세계 <렘 콜하스: 도전과 혁신>

최근 서울 경희궁에 들어섰던 '프라다 트랜스포머'를 비롯해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대 미술관 등 국내에서도 여러 유명 건축물을 설계한 렘 콜하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상영된다. 마커스 하이딩스펠더, 민 테쉬 감독의 <렘 콜하스: 도전과 혁신>은 그의 연대기를 축으로 건축 세계를 담은 작품.

렘 콜하스의 건축 작업뿐 아니라 네덜란드에서 저널리스트이자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 청년 시절부터 "비밀스럽고 탐욕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뉴욕 맨하탄의 마천루를 분석 비판한 <정신착란증의 뉴욕>(1978) 등의 저서를 꼼꼼히 훑는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최근 렘 콜하스가 아시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이 언급되는데 한국의 도곡 타워, 송도 뉴타운 등도 포함되었다.

렘 콜하스(1944~)의 실험성은 일률적인 도시 계획에서 포섭되지 않는 독자적인 건축 프로젝트들로 나타난다. 미국 시애틀 공공도서관, 포르투갈 포르토의 콘서트홀인 카사 다 무지카, 중국 베이징의 CCTV 사옥 등의 최근작은 주변과의 연관을 꾀하면서도 주변에 끌려가기보다 주변을 건물 자체의 에너지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보여준다. 이는 대도시에서의 건축물들이 흔히 꾀하는, 극대화된 위용을 내세운 '정복' 전략과는 다른 방향성으로 구심점을 만들어내는 시도다.

건축은 어떻게 도시, 시대, 사회와 조응하나 <노먼 포스터와 거킨 빌딩>

<노먼 포스터와 거킨 빌딩>은 건축사 자체를 조명하기보다 건축사의 구상과 기획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물리적인 변화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다.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미리엄 폰 악스는 9.11 이후 영국 런던에 세워진 새로운 랜드 마크 거킨 빌딩(원래 명칭은 '30 세인트 메리 액스'지만 긴 타원형 모양 때문에 '오이지'란 뜻의 '거킨Gherki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이 건축되는 과정을 좇았다.

영국의 대표 건축사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이 건물은 착공 당시 논란에 휩싸였다. 런던의 고전적인 도시 이미지를 변혁시킬 만한 시도였던 데다, 9.11 이후의 상황에서 새로운 건축적 상징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지 테러리스트의 위협에서 안전할 수 있는지 등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건물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3년여 동안 건축의 궤적을 담았다. 그 결과 영화는 당대 건축사의 고민과 역량이 건축주, 도시계획, 나아가 사회 상황과 대중적 여론과의 경합 속에서 어떻게 갈등 조율되며 마침내 실현되는지를 밝히는 하나의 연구가 되었다.

노먼 포스터(1935~)는 영국이 자랑하는 건축사로 런던시청과 대영박물관, 카나리워크 지하철역 등 런던의 주요 랜드마크를 설계했으며 그 업적을 인정받아 귀족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미국 뉴욕 맨하튼의 '허스트 빌딩', 카자흐스탄의 '평화와 화해의 궁전', 일본의 '밀레니엄 타워' 등이 주요 작품.

노먼 포스터의 건축에는 미래지향적인 비전이 담겨 있는데, 이는 단순히 새로운 형태를 꾀하는 것을 넘어 친환경적인 패러다임을 구현하는 것에까지 이른다. 최근에는 리비아에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관광도시를 세우는 '그린마운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루이스 칸의 미스터리를 밝히다 <마이 아키텍트>

<마이 아키텍트>는 나다니엘 칸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인 건축사 루이스 칸을 '탐구'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루이스 칸은 모더니즘 건축의 강건함과 정직함에 반영하면서도 그것의 물질성을 초월한 사색적 분위기를 불어넣은 건축물의 창안자다. 그는 복잡한 가족사와 73세의 나이에 거리에서 객사한 최후로도 유명하다.

루이스 칸의 사생아인 나다니엘 칸 감독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출발, 인간으로서의 루이스 칸과 건축사로서의 루이스 칸을 동시에 추적한다. 아버지의 주변 사람들, 그와 사랑했고 머리를 맞댔던 사람들을 만나는 길고 긴 여정을 통해 죽음의 진실에까지 다다른다.

루이스 칸(1901~1974)은 가장 '동양적'인 서구 건축사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미국 예일 대학 아트갤러리, 솔크생물학연구소, 킴벨미술관 등의 건축물은 현대라는 시간성과 고적한 역사적 공기를 엮어낸 공간들로 평가받는다.

이런 건축의 근간에는 공간의 질서를 이루는 철학에 대한 고뇌가 깔려 있는데, 책으로 나온 루이스 칸의 강의록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공간의 '빛'과 '침묵'에 대한 그의 사색은 건축에 적용하기 이전에 그 자체로, 개념적으로도 음미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답다.

건축사와 영화인, 관객을 만나다

제1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의 또 하나의, 특별한 점은 국내 대표 건축사들이 관객을 직접 만나는 기회가 마련된다는 것. 서울남산국악당으로 올해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용미를 비롯해 한강예술섬 서울공연예술센터를 건축한 문진호, 서울시립대학교 캠퍼스 복합단지 설계로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한 신창훈 등이 '호스트 아키텍트 포럼'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한다.

영화 상영 후 건축계 인사들이 건축을 주제로 하는 '관객과의 대화'도 흥미롭다. 20일 <마이 아키텍트> 상영 후에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이상준 교수가 루이스 칸의 건축 세계에 대해 강연하고, <노먼 포스터와 거킨 빌딩> 상영 후에는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정재용 교수가 런던의 도시계획을 한국적 상황에 결부해 설명한다.

소설 <마천루>를 번역한 건축사 김원이 건축적 이미지를 영화의 주요 모티프로 삼아 온 영화 감독 이현승과 대담을 나누고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그림자 살인>의 박대민, <불신지옥>의 이용주 등 건축을 전공한 영화 감독이 건축과 영화의 교집합에 대해 대화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자세한 일정은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사이트( http://cafe.naver.com/siaff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