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미술의 하모니] (20) 쿠르베와 무소르그스키눈으로 확인한 진실 그대로 그리고 그림보고 음악으로 표현

1- 쿠르베 2- 무소르그스키 3- '오르낭의 매장'
"난 한번도 천사를 본 적이 없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달라. 그러면 그리겠다."

천사를 그려달라는 주문에 이와 같이 대답했던 화가.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한 것만을 믿었던 쿠르베는 '진실'만을 그린 사실주의 화가다. 음악에서는 러시아의 무소르그스키가 사실주의에 근거한 음악을 작곡했다.

무소르그스키의 대표작 <전람회의 그림>은 그의 친구 빅토르 하르트만이 죽고 난 후 개최된 전시회를 묘사한 작품이다. 이 중 <프롬나드>는 전람회를 거니는 발자국 소리를 묘사한 것이고 나머지 <옛 성>, <병아리들의 춤>, <키에프의 대성문> 등 총 10개의 곡은 같은 제목의 그림을 보고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음악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그림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실적인 묘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한번도 받아보지 않았던 무소르그스키는 이렇듯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눈으로 본 사실을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했던 무소르그스키처럼 쿠르베 역시 그가 본 것을 왜곡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화폭에 담았다.

4- '샘' 5- Boris Godunov 6- '전람회의 그림' CD
가장 물의를 일으킨 그의 작품 <세상의 기원>은 여자의 음부를 그리고 있는데 한치의 꾸밈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충격을 주는 작품이다. 전통적 그림에서는 금기시 되어왔던 음모를 그대로 표현한 이 작품에서는 누드임에도 불구하고 에로틱함을 찾을 수 없다.

이 그림은 마치 '이것이 바로 여자의 숨겨진 진실된 모습이다' 라고 외치는 듯하다. 같은 맥락에서 쿠르베는 <샘>과 <목욕하는 여인들>에서 살찌고 다듬어지지 않은 대다수의 평범한 여성의 몸을 모델로 그리고 있다. 이는 우아하고 관능적인 여성을 표현한 전통적 그림에 대항하고 있다.

쿠르베의 이러한 '사실적' 묘사는 여성의 누드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신분이 높은 귀족들이 아닌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 흙을 묻히고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돌 깨는 사람들>이나 <오르낭의 매장>과 같은 작품들은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오르낭의 매장>은 일반 시민의 장례식장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 그림은 가로 6.66미터, 세로 3.14미터의 대형화로 역사화와 같은 크기와 구도로 그려졌다. 중요한 역사적 영웅이나 성경, 신화의 이야기 등이 주제였던 역사화에 평범한 시민의 장례식장을 등장시킨 것이다.

노동자의 가치를 끌어올린 이 그림은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를 연상시킨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평범한 시민이었던 가짜 드미트리어스가 러시아의 황제 보리스를 밀어내고 권력을 장악한다는 내용으로 민중의 숨결을 불어넣은 오페라다.

무소르그스키는 이 밖에도 농민을 위한 <농민의 자장가>를 작곡했으며 권력에 벌벌 떠는 관료들을 풍자한 괴테의 파우스트 중 <벼룩의 노래>에 곡을 붙여 작곡했다.

옛날 옛적에 한 임금님은 벼룩을 길렀습니다.

임금님은 벼룩을 왕자처럼 귀여워했죠.

벼룩이래, 하하하하하

임금님은 재단사를 부르시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벼룩에게 외투를 지어주거라."

벼룩에게 외투를 지으라고? 하하하

벼룩에게 벨벳으로 만든 옷을 맞춰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벼룩은 거드름을 피우네요. 하하하하

벼룩이 우쭐합니다.

벼룩은 나이든 장관이나 아름다운 여자관리인도 상관없이 마구 물어대지만

임금님의 귀염둥이이니

함부로 손도 못 대고 찍 눌러 죽이지도 못하네요. 하하하하하

–<벼룩의 노래> 가사-

사실을 그린 예술가. 쿠르베가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던 걸까. 그는 여러 장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이 그림들에서 쿠르베의 자신감에 찬 얼굴에서부터 절망적인 얼굴까지 여러 표정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파리 코뮌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나폴레옹 석주를 파괴한 죄로 감옥살이를 하며 그린 <송어>라는 그림은 자화상은 아니지만 마치 쿠르베의 또 다른 모습을 그린 것 같다.

낚시바늘에 걸린 피 흘리는 송어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얽매임과 절망감에 빠진 쿠르베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 앞의 사건으로 인해 스위스로 망명한 쿠르베는 과음으로 인한 간암으로 4년 만에 생을 마쳤다.

혁명을 꿈꿨으나 쉽게 바뀌지 않는 사회분위기를 애석해하던 무소르그스키 또한 술에 빠져 살았다. 그는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사회주의 사실주의 화가 레핀이 그의 초상화를 완성한 지 약 일주일 후에 생을 마감한다. 죽음을 앞둔 초상화 속 무소르그스키의 모습에서 가난과 병마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그의 강인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의 사실주의 예술은 이후 '눈에 보이는 인상 그대로를 담겠다' 라는 사상으로 발전된 마네, 모네, 드뷔시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와 음악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다.

"한 세기의 화가는 기본적으로 과거나 미래를 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살아있는 예술을 위해 단 한가지 가능한 원천은 화가의 실제 경험뿐이다." –쿠르베-

"그 어떤 곳에서도 지속되는 삶, 지독히 쓰고 힘들어도 변하지 않는 진실, 사람들을 향해 진지하게 내뱉을 수 있는 담대함, 이것들이 나를 깨우고, 내가 원하며, 내가 결코 놓치고 싶지 않는 것들이다." –무소르그스키-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 칼럼니스트 violinoell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