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미술이야기] 영화 , , 을 통해 본 인간 렘브란트와 화가 렘브란트명암법 대가의 인생 굴곡, 작품 속 빛과 그림자와 닮아

렘브란트 '야경' 1642년
화가를 소재로 만든 영화의 최초 주인공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이다.

미술사에서 가장 극적인 빛과 그림자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신비감 넘치는 화면을 구사했던 그의 화풍을 떠올려 본다면 빛의 예술이라 할 영화가 그를 화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의 최초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 화가를 두고 4편의 영화가 만들어 진 경우는 렘브란트와 고흐(Vincent van Gogh, 1853~ 1890) 뿐이다. 고흐의 경우 삶 자체가 드라마틱했기 때문이겠지만 렘브란트는 회화적 특성이 영화감독들의 구미를 당겼을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자본주의 화가'라고도 불리는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의 라이든에서 태어나 학교공부에 적응하지 못해 야콥 판 스바넨뷔르흐(Jacob van Swanenburgh,1571~1638)의 문하에서 미술수업을 받았다. 1625년 개인 아틀리에를 열고 피테르 라스트만(Pieter Lastman)을 사사하다 1632년 드디어 암스테르담으로 옮기면서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634년 28세 때 지방도시의 시장이자 판사의 딸인 사스키아(Saskia)와 결혼하면서 넓은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33세에 대저택을 구입해서 미술품과 골동품을 사서 장식할 정도의 호화스러운 삶을 영위한다.

영화 '렘브란트'(1936년) 한 장면
그러나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연이어 태어난 아이들 중 4째만 남기고 모두 죽고 만다. 또 36세에는 부인과 사별한다. 이런 불상사들이 연이을 즈음 주문을 받는 작품이 <야간 순찰대>(1642년)이다. 본래 이 작품의 원제는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의 민방위대>(The Militia Company of Captain Frans Banning Cocq)이다.

그는 <야경>(1942년)에서 세부의 정교한 묘사보다 대담한 붓놀림과 어두운 배경에 나타나는 그림자를 보다 명확하게 그리고자했다. 이로 인해 그는 혹평과 함께 초상화가로서 생명이 끊긴다. 이즈음 사건들은 그의 인생의 빛과 그림자가 되었다.

이미 1630년 대 말, 궁정과의 거래가 끊겼고 새로운 상인들로부터 근근이 주문을 받아 연명할 수 있었지만 그는 실망과 곤궁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종교적 믿음으로 작품에 정열을 기울인다.

특히 아들에게 남긴 유산 4,575프로린의 절반을 잃게 된다는 사스키아의 유언 때문에 그의 가정부이자 모델이었던 헨드리케와 정식 결혼을 하지는 못하지만 1645년경 맞은 마음씨 착한 둘째 부인 헨드리케의 내조 덕에 그의 예술은 어려운 가운데 원숙미를 더해간다.

하지만 1953년 사치와 과도한 미술품 구입 및 미술품 투자 실패로 경제적 곤란에 빠지고 그 결과 1656년 파산을 선고받아 저택과 미술품등을 모두 잃고 유대인 지구(Ghetto)로 밀려난다.

영화 '렘브란트의 심판'의 한 장면
이곳에서 그는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결코 붓을 놓지 않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독창적이며 좋은 작품을 계속 제작한다.

1662년 헨드리케가, 1668년 유일한 아들 티투스마저 죽자, 그도 이듬해 10월 초라한 집에서 임종을 지켜보는 사람도 없이 쓸쓸히 눈을 감았다. 따라서 그의 인생도 명암이 교차한다는 점에서 영화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그의 삶은 처음 1936년 흑백영화로 제작되었다. <렘브란트>로 국제적인 감독이 된 알렉산더 코르다가 메가폰을 잡고 명배우 찰스 로튼과 엘자 란체스터가 출연한 이 영화는 찰스 로튼의 뛰어난 연기와 알렉산더 코르다의 치밀하고 탄탄한 연출력이 도드라진 영화이다.

특히 촬영기사 조지 페리날가 그 유명한 '렘브란트 조명(Rembrandt lighting)'을 영화 속에서 완벽하게 구현함으로써 성가를 높였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찰스 로튼에게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안겨주었다. 그리고 1930년대 영국 영화산업의 시원인 알렉산더 코르다 감독은 이런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영화 '야경'의 한 장면
이 영화에서 렘브란트는 최고의 명성과 아내가 동시에 떠나면서 점점 어둡고 냉소적으로 그림이 바뀌고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되어간다. 그렇지만 헨드리케에게 외롭고 쓸쓸한 영혼을 위안받으며 자신을 태워 그림을 그린다. 영화의 마지막은 쇠약해진 육체에도 영혼만은 분명했던 쓸쓸한 화가의 말년을 끝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이후 60여년이 지난 1999년 <렘브란트>라는 영화가 제작된다. 이 영화는 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가 렘브란트를, 로만 브링거가 헨드리지 역을, 찰스 마통이 감독을 맡아 렘브란트의 28세 때부터 63세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를 일대기 형식으로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냉혹해서 르몽드지는 화가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행동인가를 이 영화가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하지만 17세기 네덜란드의 삶과 사회 그리고 렘브란트를 괴롭혔던 돈의 위력을 실감하게 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2007년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에 의해 영화 <야경>(Night watching, 2007)이 제작된다. 마틴 프리먼과 에밀리 홈즈 등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경>을 토대로 그 작품의 도발적인 이면을 드러낸다.

소박하면서도 거만하고 솔직한 렘브란트가 아내를 여윈 슬픔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민병대 본부의 벽을 장식 할 그림을 주문받는다. 이 작품으은 총 6점의 민방위대 단체초상화 중 하나이다.

나머지 단체초상화 가운데 2점은 렘브란트의 제자인 플링크가 그렸고, 3번째 초상화는 플링크의 경쟁자인 바커가 맡아서 그렸다고 전해진다. 이 영화는 이전 영화와는 달리 <야경>이라는 집단 초상화를 그리면서 보게 되는 암스테르담 황금기의 권력과 부에 얽힌 추악한 음모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암스테르담 머스캣 민병대의 초상화주문을 받으면서 민병대원 중 하나의 오발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은폐하고자하는 음모를 밝힌다.

렘브란트는 그림 속에 많은 단서와 기호를 숨겨 살인사건과 민병대의 관계, 민병대원 중 게이가 있다는 사실, 고아원을 매음굴로 알고 있는 민병대의 위선을 담아 밝힌다. 물론 민병대는 렘브란트에게 그들의 악행을 감추어 줄 것을 강요했지만.

그로 인해 이 그림을 완성시킨 후 부인과 아들 그리고 부를 잃고 곤경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피터 그리웨이의 독창적인 귀족과 권력자들의 위선을 고발하는 전개방식과 연극을 그대로 촬영한 듯 한 방식이 도드라진다.

이듬해 피터는 <야경>의 해설판이라 할 수 있는 <렘브란트의 심판>(Rembrandt's J'Accuse, 2008)을 제작한다. 이 영화는 매우 독특하게도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영화 속에서 감독이 직접 작은 사각형 안에 나와 영화를 설명하는 내레이터로 등장한다.

영화는 미술사적인 수직적 흐름과 당시라는 수평적 구조가 교차하면서 관객들을 시대의 한 복판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면서 영화 이상의 메시지인 이미지와 기호에 대해 논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사진과 연극 그리고 영화와 현실사이를 오가면서 그림과 이미지의 진실에 대해 묻는 셈이다.

그림 속 음모 때문인지 모르지만 <야경>은 3번의 습격을 받는다. 1911년 해군에서 해고된 요리사가 칼로, 1975년 은퇴한 교사가 다시 칼로 그림의 중간을 벤다. 그리고 1990년 무직의 범인이 이번에는 그림에 황산을 끼얹는다. 아직도 민병대의 위선을 감추려는 음모는 살아있는 것이다.



글 정준모(문화정책, 국민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