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의 선물-우리만화 다시 느끼기' 전예술성 높은 사이로의 카툰, 신동헌의 드로잉 섹션 재조명

▲ 사이로의 달리. 사이로. 2004
한국만화 100주년의 해 전시가 피날레를 맞이했다. 13~22일 경기 가평군 청평면 가일미술관에서는 '100년의 선물 – 우리만화 다시 느끼기'전이 열렸다. 이 전시는 올해 벌어졌던 다양한 우리 만화 전시의 대미를 장식했다.

상수(上壽)를 축하하는 의미 있는 만화 전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6~8월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만화 – 한국만화 100년'전, 7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한국만화 100년 기념 특별 전시회, 9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열린 '한국 시사만화 100년전' 등이 손에 꼽힌다.

100주년 전시는 대중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만화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귀중한 만화 자료와 전시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100년을 정리하고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그러나 전시를 통해 남긴 과제도 만만치 않다. 제대로 보관되지 않은 자료가 많아 후학들이 그림을 재창작 해 전시하는 일도 있었다. 만화의 역사나 장르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와 학문적 연구의 빈약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해와 같이 다양한 만화 전시를 만나기는 당분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박제된 기억은 만화의 본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전격 만화도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실생활 속 대중예술의 자리로 돌아오는 게 더 합당하다.

박인하 만화평론가는 "만화 100주년을 맞아 열린 다양한 전시는 자료와 기억으로만 남아 있던 작품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면서도 "만화를 수집•전시의 대상으로서만 박제화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은 재출간 해 세대를 뛰어넘어 일상 속에서 독자와 만나도록 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만화 100년, 카툰도 있다

이번 전시는 예술성은 높지만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만화 장르를 재조명하는 보론 형태를 띠었다. 사이로(69)의 카툰, 신동헌(82)의 드로잉 섹션이 대표적 내용이다.

100년의 선물 - 우리만화 다시 느끼기'전에서는 70년대 데뷔 이후 일관되게 카툰의 외길만 걸은 사이로의 작품을 재조명했다. 카툰은 보통 1~4컷의 그림에 다양한 생각을 담아 표현한 것이다. 보는이에 따라 다양한 정서를 일으키는 순수미술에 가까운 그림 형식이다.

사이로는 특히 명화의 이미지를 재해석해 카툰의 대부로서 자리매김 했다. 그의 작품 <사이로의 달리>(2004)는 초현실주의 작가인 달리의 <시계>를 패러디한 것이다. '시간을 먹는다, 보내다'라는 개념을 우화적으로 표현했다.

사이로의 자연재해 시리즈 (2003)는 나무를 의인화 해 삼림훼손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단계임을 시사했다. 뗏목 위의 인간을 통해 한 포기의 식물도 생명은 소중하다는 의미를 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한국만화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그는 데뷔 이후 낯설었던 카툰 형식을 국내에 소개했다. 순수예술과 가까운 카툰을 통해 만화의 예술성을 증명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만화를 통한 유머도 얼마든지 깊이가 있고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청강문화산업대학은 예술성 높은 카툰만 따로 모아 11~12월 '한국만화 100년, 카툰 100년년, 그들 카툰의 길을 걷다'전을 열기도 했다.

▲ 순수예술에 가까운 드로잉

신동헌의 드로잉 작업은 순수예술로서 만화의 가치와 한 거장의 예술적 기본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신동헌은 60년대 어린이만화의 거두였으며, 형 신동우(1936~94) 화백의 원작을 바탕으로 최초의 애니메이션인 <홍길동>(1968)을 내놓기도 했다.

▲ 무제. 사이로. 2003
그의 드로잉은 만화가로서 기본기와 필력, 상상력을 보여준다. 한 인물을 설정하고 다양한 표정과 동작을 담은 드로잉도 눈에 띈다. 이는 예술로서 만화 작업의 정교함을 보여준다.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그린 습작(1993) 62점은 목탄으로 흰 종이에 그린 것이다. 해변 그 자체와 리조트 호텔 등을 소재로 삼았다.

음악(공연)을 드로잉 40여점 역시 이채롭다. '클라리넷 창립 연주회'는 2000년 예술에 전당에 있었던 실제 공연에서 클라리넷 연주자의 연주 모습을 정교하게 표현했다.

이번에 전시된 신동헌의 드로잉 200여 점은 그의 드로잉 집 3200여권 중에 가려 뽑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초기시절 드로잉 일부는 소실돼 만화 자료 정리와 보존의 부박한 현실을 보여주기도 했다.

신동헌은 <너털주사>(1954)라는 순수만화에서 시작해 애니메이션을 거쳤다. 그의 작업은자신만의 드로잉과 음악만화라는 독특한 작품세계에까지 이르렀다. 음악공연의 해설을 맡을 정도의 깊이 있는 지식으로 만화의 크로스오버를 이룬 셈이다.

▲ 클라리넷 협회 창립 연주회(예술의 전당). 신동헌. 2000
손기환 상명대 만화•디지털콘텐츠학부 교수는 "이번 전시는 일반대중이 만화 100년사에 이런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도 있었구나라고 느낄만한 콘셉트였다"라며 "올해 잇따른 전시들은 그동안 저평가돼왔던 만화의 문화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뉴미디어로서의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 자료제공=홍성미 가일미술관 수석큐레이터


▲ waikiki resort hotel(왼). 신동헌. 1993 / waikiki beach(오른). 신동헌. 1993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