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아트페어, 갤러리 기존 미술계 한계와 위기 넘으려는 시도

홍대 앞 젊은 공간의 연합인 '홍벨트'에서 마련한 <작가와의 대화>
미술관과 아트페어, 갤러리가 새삼스럽게 '작가 중심'을 외치고 나섰다. 미술 담론과 시장, 제도가 커진 후 오히려 작가들, 특히 젊은 작가들의 제 몫 찾기가 어려워졌음을 반증하는 것일까. 작가가 살아야 미술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작가 중심' 선언의 둘레에는 기존 미술계의 한계와 위기가 있다.

작가를 통해 전국을 포괄하는 '공공' 프로젝트 <2009 작가-중심 네트워크: DECENTERED>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미술관에서는 지난 24일부터 <2009 작가-중심 네트워크: DECENTERED> 가 열리고 있다. 아르코미술관과 광주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이 각각 추천한 후, 논의를 거쳐 추린 신진작가들의 작업을 모은 전시다. 세 지역 작가들이 고루 포진했으며 서울 일정이 끝난 후에는 광주, 부산에서 전시된다.

이는 아르코미술관이 앞으로 2년마다 한 번씩 진행할 '지역네트워크전'의 첫 산물이다. '지역네트워크전'은 지역미술관과의 협업을 통해 신진작가를 발굴, 소개하는 프로젝트. 서울 중심의 작가 지원, 담론 생산 구조를 전국으로 분산하려는 시도다. 그만큼 전시를 꾸리는 과정에서 지역미술관의 발언권을 존중했다.

그 결과 전시 내용은 제목처럼 '작가 중심'으로 채워졌다. 작가들이야말로 특정 테마와 이슈, 미술관 자체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서울이 아닌 '한국' 미술의 현재를 드러낼 수 있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전시 구성도 지역과 상관 없이 '인식', '존재' 등의 소주제를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아르코미술관 <2009 작가-중심 네트워크 : DECENTERED>에 전시된 작가 박용선의 '방'
이는 미술 담론에서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지역 작가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작가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역성이 제기되는 효과도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별다비 큐레이터는 "탈중심화를 꾀하고 지역들이 평등하게 보여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간 기계적인 평등 관계가 이 프로젝트의 지향은 아니다. 지역성을 살리면서, 지역 간 차이를 다원적으로 연결해내는 것이 목표다. 예를 들면 이번 전시에서는 "동시대적이고 미디어 작업이 많은" 서울 작가들과 "전통적이고 힘 있는" 광주 작가들, "제3세계와 이주민에 관심이 많은"부산 작가들 간 관계를 입체적으로 설명해내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기관인 아르코미술관의 '공공적' 정체성과 관련한 것이기도 하다. 김별다비 큐레이터는 "아르코미술관이 서울만을 대상으로 삼는 미술관이 아닌 만큼 전국 미술을 반영하는 것이 공공성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내후년 두 번째 '지역네트워크전'에는 새로운 파트너로 대구시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이 참여할 예정이다.

홍대 앞 문화생태환경을 조성하는 <서교난장 2009>와 '홍벨트'

지난 17일부터 서울 홍대 앞에서 열리고 있는 <서교난장 2009>는 대안적 아트페어다. KT&G 상상마당갤러리, 갤러리 킹, 아트스페이스 휴, 그문화, 텔레비전12 갤러리가 의기투합해 제도화된 미술시장에서 접하기 어려운 젊은 미술을 소개한다. 참여 공간들이 발굴한 신진 작가 116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기획자인 상상마당갤러리 김노암 아트디렉터는 "미술현장의 최전방을 확인하고 젊은 작가들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아르코미술관 <2009 작가-중심 네트워크 : DECENTERED>에 전시된 작가 이예린의 '34번가'
이 행사의 의미는 작품을 매매하는 한 차례 장터에 그치지 않는다. 홍대 앞에서 미술이 계속 생산될 수 있는 환경을 모색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즉 작가들이 작업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유통 구조를 마련하는 동시에 갤러리의 활동을 알리고, 현대 미술의 역동적 근거지로서의 홍대 앞 문화를 유지시키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위기 대응책의 속성이 있다. 홍대 앞 지가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작업실과 문화공간, 갤러리들이 감당하기 벅찬 수준이 됐다. 주 수익원인 작품 판매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문화의 김남균 대표는 "카페만큼 수익이 나지 않으면 공간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서교난장 2009>는 작품 소비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갤러리킹의 바이홍 디렉터는 "이전에 홍대 앞 문화를 대표했던 대안공간이 전시를 만드는 데에만 힘썼다면, 이후 세대에 생긴 공간들의 관심은 '먹고 살 수 있는' 문화생태환경을 조성하는 것에까지 미친다"고 말했다.

갤러리킹과 그문화, 프레파라트연구소 등의 젊은 공간들이 연합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펼치는 '홍벨트'도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지난 8월 작가 50명의 전시와 관객과의 대화, 강좌, 공간 투어와 체험 프로그램 등을 엮은 <작가와의 대회> 를 마련했고, 12월 초에도 다양한 전시와 문화 행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홍벨트 페스티벌> 을 열었다.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작가 친화적인 홍대 앞 공간들의 특성상, 이런 시도는 작가에 대한 전방위적 지원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작가와의 대회> 에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재테크 강좌가 포함되어 있었다. 작가들의 자생력 강화 프로그램이었다.

<서교난장 2009>가 열리고 있는 서울 홍대 앞 KT&G 상상마당갤러리
"공존관계 이루는 문화 생태계 만들어야"

<서교난장 2009>에 참가했고 주도적으로 '홍벨트'를 추진한 갤러리킹은 홍대 앞 3년차다. 어떻게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 것인가를 화두로 여러 방식을 시도하는 중이다. <서교난장 2009>는 KT&G 상상마당과, 얼마전 막을 내린 <홍벨트 페스티벌>은 서울시 창작공간 중 하나인 서교예술실험센터와 함께 했다. 외부와 적절히 소통하면서 작가와, 작업 문화 공간이 생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도정에 있는 셈이다.

갤러리킹의 바이홍 디렉터를 만나 이에 대한 고민을 들었다.

-<서교난장 2009>는 아트페어 형식의 행사인데 갤러리킹은 이를 또 하나의 전시 기회로 활용하는 인상이다.

아트페어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 공간의 내용을 어떻게 가져갈까도 중요했다. 그래서 '자화상'이라는 컨셉트로 지난 3년간 이곳에서 전시한 작가들의 근작을 모아 봤다. 공간 자체를 돌아보는 기회도 됐다.

<서교난장 2009>에서 진행되는 도슨트 프로그램
-<서교난장 2009>같은 프로젝트가 갤러리킹에 많이 도움이 되나.

실질적인 작품 매매 효과보다는, 공간 홍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다른 공간과 함께 도록도 만들고.

-올해 홍대 앞 다른 공간과 연합한 프로젝트가 많았다. '홍벨트'도 그렇고.

지금 젊은 갤러리들은 내부 전시에 대해서뿐 아니라 외부로 확장하려는 고민을 많이 한다. 공연을 하거나, 작가 관객이 함께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달라진 관객의 인식에 부응하면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연합하는 공간 중 기업이나 정부 주도 공간도 있다.

갤러리킹 바이홍 디렉터
그런 공간이 들어오면 논의해서 상생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다양하게 활용해보는 중이다. 하지만 그 공간들의 논리에 무작정 긍정하는 것은 아니고, 따라가지도 않을 것이다. 공존관계를 이루어 문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결국 이 공간이 지키고자 하는 핵심은 뭔가.

그 자신의 역량으로 오래 갈 수 있는 작가를 만나 함께 가는 것이다. 홍대 앞 문화 속에서는 작가가 생존할 수 있도록 케어하는 공간이 중요하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