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임 개인전] 전통민화와 현대적 재해석한 작품, 500폭 넘는 대작도 선보여

'사람은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귀한 사람으로 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호랑이는 유난히 인연이 깊다. <아큐정전>을 쓴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한국인만 만나면 호랑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을 정도로, 한국은 호랑이의 나라로 통했다고 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산마다 야생 호랑이가 서식해 피해자가 적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호랑이가 상징하던 신성성 때문에 정초 궁궐이나 대가집 대문에 벽사(僻邪)와 복을 기원하며 호랑이 그림을 걸었던 풍습도 있었다.

'양가감정(兩價感情)'을 불러 일으키는 호랑이에 대해 최인학 교수(인하대학교 면예교수)는 <十二支神 호랑이>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숭배의 대상에서 차차 신성성이 쇠퇴하자 용맹성과 민첩성과 같은 생태적인 면이 부각되면서 문학의 각 분야에서는 다양하게 상징되었다. 두려움과 수렵의 대상이 된 호랑이, 산군으로 군림하는 호랑이의 늠름한 자태, 공포와 외경의 대상이었던 호랑이가 문학에 이르러서는 해학과 질타, 비유, 은유 등으로 다양하게 상징되었다."

호랑이가 해학적이고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경우는 민화에서 특히 그렇다. 민화는 18~19세기 조선 사회에서 대두하던 중간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예술이었다. 조선시대 호랑이 민화에서 보이던 해학과 풍자성은 지배계층을 향한 중간계층의 조용한 외침이었다고 한다.

2010년, 호랑이해를 맞아 민화를 그려온 서공임 작가가 호랑이 100마리와 함께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는다. 올 12월 29일부터 2010년 2월 28일까지 롯데갤러리와 애비뉴엘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해서다. 서공임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전통 민화를 재현하고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에 몰두해오며 패션과 디자인으로까지 민화의 영역을 확장시켜온 독보적인 인물이다.

'토끼와 호랑이'
그런 그녀에게 호랑이는 각별한 존재다. 1998년, 전통민화만 그려오던 그녀가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호랑이 민화를 10년간 그려 전시한 적이 있다. 그간 외면받던 민화에 언론과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호랑이 민화가 서 작가에게 티핑포인트가 되어준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민화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호랑이 민화가 등장하며 500폭이 넘는 대작도 선보인다. 조선시대 전통민화기법을 확립했던 무명 화가들에 대한 서 작가의 오마주와 그녀의 혁신적 실험성을 선보이는 자리인 것.

지금도 민화를 그리기 위해 색가루를 빻고 다시 체로 걸러내며 최대한 고운 분말을 만들어 내고 이를 아교와 섞어서 직접 손으로 개는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스테인레스 스틸을 재료로 사용해 민화에 입체감을 불어넣는가 하면, 기존 작품을 캔버스에 인화하고 그 위에 다시 그림을 그려 넣는 회화적 기법을 사용하는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녀가 가장 찬사받는 대목이 바로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민화에 대한 이 같은 대담한 시도다. 강렬한 한국의 전통 오방색을 바탕색으로 하고 한국인의 얼굴과 가장 닮은 전통 호랑이의 얼굴들만 클로즈업한 호랑이 초상화 시리즈 <한국인의 얼굴>, 호랑이 가족화 등이 서 작가의 기발함을 잘 담아내고 있다.

붉은색 바탕의 황금색 호랑이가 섬세한 붓 터치로 살아난 530폭의 대작은 중국 베이징올림픽 당시 소개되면서 굉장한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다. 규모뿐 아니라 호랑이의 형형하면서도 부드러운 눈빛이 보는 이를 매료시키는 작품이다.

'한국인의 얼굴'
까치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파안대소하는 호랑이, 토끼에게 속아 약이 바짝 오른 백수의 왕, 곰방대 빠는 천연덕스러운 맹호, 산신 옆에 배를 깔고 엎드려 능청스럽게 웃고 있는 호랑이 등 31점은 전통민화를 모사한 작품이다. 전통민화의 원형은 유지한 채 그녀의 재치와 해학적인 시선은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2010년 한 해의 복을 기원하며, 각자의 마음 속에 호랑이 그림 한 점씩 그려보는 건 어떨까 싶다.


'한 남자가 가슴에 별을 품고 앉아 있습니다'
'까치와 호랑이'
'효녀설화도'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