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시티 네트워크 : 한국현대건축 서울>전면적 재개발 아닌 소박하고 창의적 건축이 네트워크 이뤄야

벽면 영상에 흩어진 붉은 점이 가지를 뻗친다. 점과 점이 그물망과 같이 연결된다. 세계 곳곳의 거대도시 인구수가 나열된다. 전시장 한켠에 있는 알루미늄 패널에는 소규모지만 공간 활용도가 높은 건축 모형과 설명이 있다. 한쪽 벽면에는 재개발이 한창인 어느 도시의 단면이 대형화면에 시차를 두고 음악과 함께 흐른다.

인구 1000만의 메가시티 서울. 비균질하고 불규칙한 이 대도시를 제대로 쓰는 길은 전면적인 재개발이 아니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소박하고 창의적인 건축이 네트워크를 이뤄 우리 도시공간을 재창조 해 문화도시로 가는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이래 10번째, 4년여 만에 건축 전시가 열렸다. 2007년 말 프랑크푸르트 독일건축박물관에서 처음 열린 이래 2년여 동안 유럽순회 전을 마치고 돌아온 '메가시티 네트워크'전이 그것이다. '메가시티 네트워크: 한국현대건축 서울'전은 12월 23일부터 2010년 3월 7일까지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벌어진다. 초청기관이 정한 주제가 아니라 우리 건축가 스스로 기획한 내용을 순회 전시했다는 점도 뜻깊다.

전시회로서의 의미뿐만이 아니다. 이 전시는 거대도시에 적합한 대안 건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서울의 대규모 재개발 방식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점, 우리 전통 양식과 서양 기법을 절충한 건축 양식을 세계에 알렸다는 것, 공공성이 건축의 주변 기능이 아니라 본질이라는 점을 밝혔다는 면에서 건축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메가시티전은 한국의 초고밀도 도시에서 건설자본에 의한 대규모 전면개발 방식만이 대안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라며 "중소규모의 창의적인 건축으로 문화 거점을 만들어 네트워킹 하는 게 아파트 공화국을 탈피하면서도 메가 시티 공간을 조화롭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메가시티' 전 전경
조건을 디자인하는 건축

이번 전시는 기술이 아니라 조건을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도시공간의 한계를 벗어난 건축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16명의 참여 건축가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소박한 건축을 대규모 건물이 꽉 들어찬 밀도 높은 도시 재활용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거대 도시의 포화상태를 고려하면서도 공간활용을 최대화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조민석(43) 건축가가 내놓은 매트릭스 건축방식이 대표적이다. 조민석 씨가 내놓은 서울 서초동 부티크 모나코(2008)는 먼저 면적을 자유롭게 설계했다. 후에 용적율에 맞추기 위해 일부를 절제해 나가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놀이감인 큐브에서 한 칸씩을 빼내면 전체 면적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부티크 모나코 내부 거실과 방 사이에 다리가 포함되기도 한 이유다.

정기용(64) 건축가가 내놓은 서울 신사동 코리아나 아트센터 스페이스*C(2003) 설계도 매트릭스 방식으로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예술성을 발휘했다.

조민석. 부티크 모나코. 2008 (사진제공=새로운건축사협의회)
유럽인들에게 이런 도시환경과 건축양식은 낯설다. 그들의 대륙은 넓고 땅값은 싸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독일 언론, 라인 마인 차이퉁은 2007년 12월께 메가시티 네트워크 전을 놓고 "한국 건축가들은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도시와 밀집된 공간에 대한 해답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우리 구법이 건축의 미래다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달린, 바르셀로나가 이들에 열광한 이유는 또 있다. 일제 식민 이후 단절된 한국 전통 건축법, 이른바 구법을 서양 건축기법과 절충한 독특한 건축미학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한국 전통 구조봉을 서양식 목구조와 절충한 건축미학은 크로스 오버가 우리 건축의 미래이자 경쟁력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공동 기획한 황두진(46)과 조남호(46)의 건축 설계는 각각 뿌리를 달리하지만 컨버전스(융•복합)로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

한옥구조에 서양식 공간개념을 도입한 디자인이 두드러진다. 황씨가 설계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서울 북촌 가회헌(2006)은 양옥으로 본채를 새로 지었지만 한옥인 별채는 리모델링 한 것이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지하를 서로 연결해 전통과 현대가 서로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서양식 목구조에 한옥 공간 개념과 질감을 도입한 시도도 있다. 조남호 씨가 설계한 충남 아산시 교원도고연수원(2000)은 서양식 목구조에 한옥의 공간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자연스러운 나무 질감과 색채도 우리의 전통 건축양식을 연상케 한다.

공공성은 선택 아니라 필수

대형 건설사에 속하지 않은 소장 건축가의 '착한' 생각도 읽힌다. 공공성은 건축의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라는 의식이다. 건물주는 가도 건물은 남는다. 어떤 건축이든 대개는 사람들이 왕래한다.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를 염두에 둔 공공성 확보가 건축의 필수인 이유다.

이들의 작업은 상업성을 벗어날 수 없는 건축가가 건물주에게 공공성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배가 불러도 철들지 않는' 대형 건설자본에 비하면, 조금은 학구적이고 본질에 집착하는 이들의 건축철학은 고등하다. 대형 건설사의 태반은 대규모의 재개발을 할 때 최소한의 공간을 공공예술 영역으로 확보하라는 강제 규정인 '1%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주대관(51) 건축가의 철암프로젝트(2004)는 소외자를 감싸 안는 재개발 건축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씨는 10여 년 전부터 폐광촌인 강원 철암 지역에 들어가 조사를 시작했다. 주씨는 동료 건축가와 학생을 동원해 무료로 집을 지어주는 자원봉사 활동을 펼쳤다.

황두진, 가회헌. 2006 (사진=박영채)
건축이 소외 지역•계층에 개입해 사회 복지와 문화 개선의 중심에 선 것이다. 주씨는 이후 강원 양구, 충남 서천 등지에서도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으로 독거노인을 위한 뜰, 마을 도서관 짓기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건축을 넘어 예술로

주 건축가의 작업은 예술의 단계까지 나아간다. 그는 이번 서울전에서 재건축 지역에서 나온 잔해(파이프, 녹음기 등)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크로스 오버는 건축과 사진의 만남으로도 이뤄진다. 20여 년 동안 도시 사진에만 집중해 온 안세권 영상작가는 '서울 침묵의 풍경(1987-2009)'이라는 주제로 사진을 출품했다. 창의적 건설 디자인 전시의 벽면에 투사되는 그의 사진은 주로 재개발 지역을 찍은 것이다.

언덕배기의 신축 집과 재개발을 눈앞에 둔 집이 둘 다 비어 있는 가운데 눈이 수북이 쌓여있는 작품 등이다. 그의 카메라 앵글은 인간이 배제된 우리의 도시공간을 동화적으로 인식하게 하지만, 도시환경과 건축을 차분하게 응시하고 관조하도록 한다. 감상자 스스로의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주대관, 철암프로젝트. 2004 (사진제공=새로운건축사협의회)
전시회 성과를 국내외에서 책(도시건축의 새로운 상상력. 김성홍. 2009/ 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 김성홍, Peter C. Schmal 독일건축박물관 관장. 2009)으로 펴내 학술자료로 축적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가 처음 열린 독일건축박물관을 비롯한 문화강국 대부분은 건축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다. 건축이 그냥 건축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 공공성의 중심으로 기능하는 것을 이미 경험하고 그 중요성을 깊이 인정한 덕분이다.

17인의 고뇌와 그 산물이 쓸모 있는 이유다.



김청환기자 chk@hk.co.kr